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또한 이번 '청문회' 편은 분량상의 이유로 두번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주-

이어서 민정당의 신재기의원의 질문과 신민주공화당(자민련)의 정일영의원의 질문이 있었고 통일민주당의 강신옥의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들의 질문들은 삼청교육대에의 내무반 생활과 관련된 평이한 질문들을 주로 얘기했다. 그리고 내가 써낸 <정화작전>책 내용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기도 하였다. 그들이 노력하여 취재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질문이란 것이 내 책만 보고 만든 것들이라 싱겁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민정당의원 한사람이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질문 하나가 발생했다. 그 질문을 한 안모의원은 각본을 치밀하게 짜고 나를 구렁텅이로 빠져 들게 만들려는 의도를 다분하게 가져 있는 듯 보였다. 그도 여전히 내 책 내용과 내 개인적 신상의 비리만 부각시키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안모의원：증인의 책을 보니까 증인이 있는 부대에서 찝차로 사람을 끌어죽어는 장면이 나오던데 실제 목격했던 사건입니까？

나는 속으로 <아뿔싸>했다. 그 사건은 ××공수부대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었다. 나는 청송감호소에서 당시 생존 폭동을 일으켰던 그 부대 출신의 여러 명의 피해자들로부터 그 사건의 정황을 정확하게 취재를 해놓고 있었던 터였고 그것을 내 책에다 리얼리티를 위하여 내가 본 목격담처럼 쓴 것이었다.

안의원은 속 내용은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목격담에서 쓴 겉 부분 내용만 부각시켜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난감했지만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로 판단 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의원은 기세등등해 있었다.

이적：말씀 잘 하셨습니다. 의원님께서는 찝차로 사람을 끌어다 죽였다는 사실에는 거짓이 아님을 알고 계십니까？

나의 느닷없는 이 질문에 안의원은 훔찔 뜨는 것 같은 직감력이 와 닿았다.

안모의원：…
이적：네 맞습니다. 저는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저 자신 또한 진저리를 쳤습니다. 어떻게 찝차로 사람을 끌어 죽일 수 있는가를… 맞습니다. 이 사건은 저희 부대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웃부대 ××공수부대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으로서 저는 취재를 하여 쓴 글입니다.

청송감호소에서 그 부대에서 직접 경험했던 목격자들을 만나 그들의 증언에 의하여 씌여진 실제 사건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내가 있던 부대에서 터진 목격담이라고 썼던 것은 삼청을 좀 더 리얼리티하게 폭로하기 위하여 1인칭 시점으로 인용한 것입니다. 삼청폭로를 위하여 작가적 시점에서 쓰는 것이 절박했으니까요.

안모의원은 나의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음 말을 이었다.

안모의원：그렇다고 어떻게 목격하지도 않은 사건을 본 것처럼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적：말씀 잘 하셨습니다. 저는 이글을 쓰는 데는 삼청의 인권유린을 폭로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글을 쓰는 데는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폭로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이제 제가 이 사건을 말씀드렸으니까 이런 사건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국회에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여 조사를 해보시면 알 것 아닙니까? 저가 쓴 글 형식을 가지고 말씀하시지 마시고 이 사건의 존재여부를 국회에서 가려내십시오. 아직 피해자들이 많이 살아 있으니까 찝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자 안모의원은 질문의 내용을 슬쩍 다른 데로 돌려버리는 교묘함을 보였다.

안모의원：혹시 이적씨는 오모대위를 아시지요
이적：네 압니다
안모의원：오모 대위는 증인이 쓴 책 내용이 군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악의적인 모함이라고 하며 상당히 분개해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령이 되어 근무하고 있는데 혹시 우리 5공특위에서 오모대위와 대질신문을 요청한다면 응할 용의가 있습니까？
이적：네 있습니다.

나는 당당하게 답했다. 그와의 대질 신문이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오 대위와 같은 자리에 앉지는 못했다. 청문회장에서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살인교사자 오기택은 드디어 역사의 심판대에 불려 나왔다. 양민 이백여명을 고통과 지옥 속에 밀어 넣은 그는 현역 소령으로 진급이 되어 있었으나 역사의 진실은 피해 나가지를 못했다. 비록 당시 검찰 법망은 교묘히 피해 나갔지만 역사의 진실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오기택이 나온  청문회장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국회의원들과 취재진들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오기택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이 청문회장이 임근실의 한을 푸는 마지막 심판대라고 생각되었다. 많은 국회의원들 중에 최낙도의원은 오기택에게 비수를 찌르는 것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오기택은 대부분 <그런 일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로 일관했지만 최낙도의원은 정확한 자료를 요지로 오기택을 포위 해 나갔다.

최낙도의원：증인은 임근실을 알지요？
오기택：예
최낙도의원：자료에 의하면 오기택 대위가 조교들에게 임근실을 포박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오기택：없습니다.
최낙도의원：그럼 당시 검찰 조서가 거짓말이란 말입니까？
오기택：제가 아니고 소대장이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기택은 임근실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임근실의 죽음에 대해서는 부하들에게 미루거나 철저히도 자신은 모른다고 일관하는 이중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를 느낀 최낙도 의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최낙도의원：그럼 포박한 것은 봤어요？ 못봤어요？
오기택：못봤습니다.
최낙도 의원：그러면 허위사실을 검찰이 조사해서 군법회의를 했다 이 말이군요. 그렇게 주장하시겠어요？
오기택：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최낙도의원：여기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증인이 지시해서 직경 0.7㎝ 길이 2m가량 되는 포승으로 임근실을 포박하고 입까지 봉한 것으로 되어있어요.

며칠 동안 임근실을 부하들이 감금 폭행 한뒤 80년 12월 15일 8시 30분경에 마지막 결산이라며 임근실의 사지를 들어 3소대에 내무반에 들고 들어가 채왕지 조교가 빼치카 철근을 들고 들어와 임근실을 엎드려놓고 내려쳤습니다. 그리고 임근실이 꺼져가는 신음소리로 <살려주십시요> 하고 말하며 몸을 꿈틀 할 뿐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반듯하게 뉘여 놓고 무릎과 낭심 사이를 철근으로 힘껏 2번을 내리쳤습니다. 그때 수련생 김철환을 시켜 바로 앉히라고 지시하자 임근실은 앉지 못하고 옆으로 픽 쓰러졌습니다.

이때 위험을 느낀 김남수 하사가 자기 어깨에 임근실의 좌측 팔을 얹어 좌측 손으로 잡고 우측 손으로 허리를 감싸 쥐어 침상 밑으로 내려 왔으나 이때 두발이 질질 끌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즈음 당신이 임근실의 모습을 보고 행정반으로 옮기라고 지시를 하고 의무대 지대장을 불러 검진을 하고 부탁했고 의무대 지대장은 <상태가 안 좋다고>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근실이 죽기 전에는 쓰러져 있는 임근실을 눕혀놓고 군홧발로 누르며 짐승 취급한 사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임근실이 하도 고통스러워 개집 속으로 기어 들어가자 개집을 밀어 넘어뜨린 뒤 개집 속으로 바케스로 물을 퍼부어 밖으로 끌어내고 또 그 다음엔 세면대 틀에 임근실을 묶은 뒤 은사시나무로 가격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래도 모른다라고 잡아떼시겠습니까？ 꺼져가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사람을 죽도록 살인교사 한 잘못을 모르시겠습니까？

오기택：저는 다만 뺨만 몇 대 때린 것 외엔….
최낙도의원：좋습니다. 중대장하고 더 이상 입씨름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록은 영구히 보존됩니다. 자꾸 부인만 하는 증인을 상대로 더 이상 심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죽는 당일 날도 중대장은 폭행하라고 시킨 일도 없고 맞는 것도 본 일도 없다고 하고 임근실이 단순히 아파서 후송시켜 버렸다. 죽음에 도저히 아는바가 없고 책임도 없다 했습니다.
오기택：책임이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겁니다. 왜 제 부하가 한 일인데 책임을 안지겠습니까 책임을 집니다.

오기택은 궁지에 몰리자 <책임론>으로 궁색한 답변을 늘어놨다. 그러나 최낙도 의원은 오기택의 말을 전혀 인정 하지 않았다.

최낙도의원：어쨌던 증인이 오는 증인신문을 모두 마칠 때까지 그렇게 주장하면 본 위원이 기록에 의해서 허위 증언 죄로 고발하도록 동의할 것입니다.

이때 조승형의원이 다시 한번 더 오기택 대위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조승형의원：방금 최낙도 의원께서 증인에게 여러 가지 위증한 점에 대하여 검증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들어도 기록상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증인은 그에 반하는 진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를 증인도 명명백백하게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다행히 국회감정법 제 14조 1항에 보면 2월 10일 날 증언 했던 것이 허위였다 자백을 하실 경우에는 우리 특별위원회가 즉 국회에서 고발을 안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증인에게 알려드리니 양심고백을 하시든지 신앙고백을 하시든지 아니면 국회의원들에게 자백을 하시려면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증인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인 오기택대위의 단죄가 시작되었고 오기택은 역사의 진실 앞에서 무너져야 했다. 철권은 없다. 역사는 정직하며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단죄 된다. 박정희의 유신은 철권정치를 유지하려는 시도였다. 원래 유신의 참뜻은 나라의 주인을 정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는 유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에 유신은 개발독재 논리로 등장하는 왕정 정치의 부활이라고 봐야 한다. 박정희의 쿠데타나 전두환의 쿠데타는 유신적 논리를 내세워 국민을 억압하려 했으며 그의 추종자들은 백성들을 가축 다루듯 하며 백성들이 부여 해 준 고귀한 공권력으로 백성들을 학살하고 괴롭히는 국가범죄를 생산해내는데 한 시대를 써먹었던 것이다.

여기에 오기택도 국가공권력을 남용한 사례에 들어간다. 임근실이 아무리 도주를 하다 들켰고 조교에게 항명을 했다 해도 임근실은 국가폭력으로부터 탈출코자 시도 한 것이지 정당한 법집행에 저항하고 탈출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인간이 개집으로 숨어 들어들었으랴. 인간이 스스로 개가 사는 개집으로 숨어 들었을 땐 자신의 생명에 한계상황이 온 위협적 요소를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개집을 넘어뜨리고 개집 안에다 물을 퍼붓고 그 고통에 바깥으로 나온 인간을 세면장 통나무에 묶어 은사시 나무로 휘갈긴 사례는 마치 중세시대의 노예제 때나 볼 수 있는 폭압정치의 극단적 사례인 것이다.
 
나는 최낙도의원이 임근실의 죽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파헤칠 때 우리가 왕조국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왕조국가의 권력 아래 신음하는 노예는 아닌지, 국가권력의 거대한 폭압을 상상하며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오기택의 거짓은 그 뒤에 파렴치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여유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렴치한 권력도 그들의 거짓까지는 보호하지 못한 것이 1988년 청문회였다.

5공 청문회는 비록 완벽하진 못했지만 권력자들도 언제든지 역사 앞에 심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사례였다. 청문회 이후 나는 민정당과 오기택 소령으로부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당했다. 내가 고발당하던 날은 <삼청교육대 정화작전>작가인 이적 씨가 피소됐다는 기사로 TV뉴스나 신문뉴스에 도배가 되다 시피 했다.

민정당의 군사정권이 삼청을 최초로 폭로한 작가를 고소하므로서 삼청학살진상에 물 타기를 하려는 의도로 해석이 되어졌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같은 날 검찰에 피소된 사람이 또 한사람 있었다. 노무현 변호사가 현대사건에 3자 개입 혐의로 피소된 것이었다. 그날 밤 뉴스에는 노무현 변호사와 작가 이적이 피소된 사실을 전국 뉴스로 떠들어댔다.

검찰 피소 뉴스가 나온 뒷날 나는 노 변호사를 남천동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우리와 친한 모 사진작가 결혼식에 노변호사가 주례를 서는 날 이었다. <잘하면 변호사님과 함께 구속 되겠는데요. >라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노변호사는 <마지막 몸부림이니 잘 지켜봅시다, 머 겁날 것 있나요？> 노변호사는 무척 담담했다. 구속도 각오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것 같았다. 노변호사의 말처럼 놈들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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