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웃종교 칼럼 연재
구름기둥과 불기둥(출 13:17-22)<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21>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6.25 11:34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교훈이 주어진 다음부터 이스라엘 자손에게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첫마디는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 (= 봐예히) 이다. 이제부터는 출애굽 그 자체가 아니라, 출애굽 여정에 주요 관심이 쏠려 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은 흔히 왕도(The Kings way)였다. 전체 길이가 16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길은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까지 통하였다.

17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운 길로 가지 않고 홍해 바다(얌 수프 = 갈대 바다)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를 알려주었다. 나일강 텔타지역의 동쪽에서 가나안 남서쪽 평야지대를 거쳐 그곳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가자를 통해 가나안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은 그 당시 상업 및 군사도로로 익숙하게 사용되었다. (M. Noth, 84쪽; U. Cassuto, 155-156쪽) 물론 블레셋 쪽으로 지나가는 길에는 한편으로 이집트의 국경수비대가 지키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그 지역을 통치하는 도시국가 군대가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블레셋은 주전 12세기 초에 그곳에 정착하였으며, 아직 그곳에 국가를 형성하거나 다스리지 않았다)

성경은 그 길이 가깝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본문은 “그 길은 이러하였다, 곧 가까운 곳이었다.” (키 카로브 후: 명사문장)로 표현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던 곳에서부터 가나안 중심부까지 가려면, 여유있게 걸어서 일주일 정도 걸렸다)

그들 앞길에는 하나의 장애물(블레셋)을 피하는 대신에 다른 것(홍해 바다)가 가로놓여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히 이스라엘 자손이 이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을 가까운(비교적 평탄한?) 길이 아니라 험난한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이러하였다: “그 백성이, 전쟁을 볼 때, 스스로 후회하여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도록.” (17b 직역) 여기에는 히브리 동사에서 주요하게 쓰이는 두 낱말이 등장하였다: 나캄과 슈브. 특히 되돌린(슈브 = 돌아가다)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같은 어근에 다른 뜻을 지닌 낱말(나카ㅎ - 나캄)이 쓰였다. (브로-나카 ... 펜 인나켐 = 그리고 그 백성을 인도하지 않으셨다 ... 그 백성이 후회하지 않게 하시려고 ...).

본문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전쟁을 보고 후회하여 발길을 이집트로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직 출애굽의 첫 발을 내딛은 단계라 이스라엘 자손이 전쟁을 치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순식간에 목숨이 달아나는 전쟁의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비록 고되더라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는 노예생활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광야생활 중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가나안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이 그곳 사정을 보고하자 백성은 다음과 같이 반응하였다: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 (민 14:2-3)

더 나아가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쟁만이 가장 큰 방해거리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출애굽기 15장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부분을 살펴보면,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적은 전쟁보다 훨씬 더 크고 많았다. 다시 말해 17b의 언급은 장애물의 회피를 가리키기보다는 유형무형의 더 많은 방해거리를 만나고, 그것들을 겪어내며 극복하게 하는 훈련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돌다는 말(싸바브) 말이 등장하는 18절은 (이집트로) 되돌아가지 않게 하시려고 (이집트 쪽으로 길을) 되돌리셨다고 하였다. (word play: 브샤부 .. 봐얏쎄브)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일단 블레셋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가, 다시 길을 이집트 방향으로 일정한 거리만큼 되돌아갔다가 홍해바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은 대열(카무쉼← 카마쉬)을 지어 행진하였다. 13:18b에서 이것은 첫 번째 낱말이다. 그만큼 강조된 말인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배열한다는 말에서 나와 흔히 부대편성이라 부르는(수 1:14 공개) 이것은 출 12:17에 이스라엘 자손을 군대라 부른 것과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올라갔다. (알라) 이 동사는 출애굽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이는 3개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은 다른 나라(지역)에서 가나안으로 향할 때(창 44:17; 스 2:1), 어느 마을에서 성소를 향해 갈 때(출 34:24) 쓰이곤 하였다. 17-18절에는 출애굽 - 광야생활 -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

흔히 홍해바다로 번역되는 히브리말 얌-수프(yam-sûf)은 홍해로 읽을 것이냐, 갈대바다로 읽을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많이 일었다.(18절) 이 말은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에 12 차례 쓰였다.(출 10:19; 13:18; 15:4, 22; 23:31; 민 14:25; 21:4; 33:10-11; 신 1:40; 2:1; 11:4) 바다를 가리키는 앞의 낱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뒤에 나오는 낱말은 흔히 갈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어졌다.(Hamilton, 207)

① 히브리 낱말 수프가 이집트말 ‰wf(y) (= 파피루스)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② 수프란 말 자체가 그대로 갈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3, 5에 이 낱말이 나왔다. 이사야서 19:6과 요나서 2:6에도 이 낱말이 쓰였다. 그런 곳에 이것은 파피루스 또는 갈대 등 늪지에서 자생하는 수생식물로 묘사되었다.
③ 갈대가 습지와 맑은 물에서만 생장하기에 이것을 홍해라고 옮기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 있다.(갈대가 이런 곳에서만 생장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 그것은 물이 맑지 않은 강가나 해변가에 많이 있다)
④ 홍해라는 번역은 칠십인역(evruqroa, qa,lassa)과 라틴어 불가타(mare rubrum) 번역에 따랐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 중에는 그 위치를 갈대가 많이 자라는 멘짤레(Menzaleh) 호수 또는 발라(Ballah) 호수로 추측하는 이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홍해바다를 건넌 이야기는 설 자리가 없다. 이 밖에도 지금의 홍해바다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의 진행방향보다 훨씬 남쪽에 있다는 점도 제기되었다. 이는 주전 1250년경의 토지지형이 지금과 비슷하다는 전제 아래 주장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홍해바다가 지금보다 훨씬 북서쪽, 앞서 언급한 호수 지대를 포함하여 시나이반도 서쪽 끝까지 펼쳐져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신 1:1; 왕상 9:26 참조)

물론 수프라는 낱말은 파피루스 또는 갈대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이 바다라는 말과 결합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의문점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지만, 이것이 홍해바다의 어느 지점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는 요셉의 뼈들(에쳄 → 아챠밈 복수형!)이 들려 있었다.(19절) 이는 요셉이 후손들에게 유언하며, 맹세하게 시킨 일에 따른 것이다.(창 50:25 참조) 히브리 본문은 여기서 맹세하다는 말(샤바ㅇ 히필형)을 두 번 되풀이 사용하였다.(하쉬뻬아으 하쉬뻬아으 = 맹세하게 하고 또 맹세하게 시켰다 = 정녕코 맹세하게 시켰다) 야곱도, 그 아들 요셉도 자신의 몸이 이집트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였던 그 날 밤, 다른 생각을 여유가 전혀 없을 듯한 그 순간에도 그 옛날 그 맹세를 챙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다음 구절에는 ‘하나님이 반드시(정녕코, 필연코) 너희를 찾아오시리니’에는 파카드란 말이 미완료형과 부정사 절대형으로 나란히 쓰였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자손을 찾아오신다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유골을 수습하여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은 나중에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 세겜에 고이 안장하였다.(수 24:32 행 7:16; 히 11:22 참조)

이스라엘 자손은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탐]에 장막을 쳤다.(20절; 출 12:37; 민 33:5-6 참조) 오늘날 그 위치를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이 말은 아마 이집트의 지명 비돔(Pithom = pr Itom = 아텀[신]의 집)을 히브리식으로 표기한 것이지도 모른다.(출 1:11 참조; Redford, 142쪽;  Hamilton, 208쪽)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에 얼마 동안 머물면서 유월절 및 무교절 규례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들은 뒤, 새로운 야영지로 향해 떠난 것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숙곳에서 에담까지 걸어서 하룻길이라 한다. 그리고 광야란 낱말에 정관사가 붙어 있다.(함미드빠르 = 그 광야) 이는 에담이 숙곳 지방의 끝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여기 나오는 '...을 떠나 ...에 장막을 치니' 라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광야생활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정형(定型)이다.

   
▲ 구름기둥과 불기둥.
21절에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자손의 광야 생활을 특징짓는 표징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i)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가셨다는 것과 ii) 구름기둥(아무드 아난 ±ammûd ±­nan) 및 불기둥(아무드 에쉬 ±ammûd °¢š)이다. ‘가다’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우선 분사형(홀레크 ← 할라크)으로 쓰였다. 이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리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의 앞에서 그들을 이끌어 가셨다. 이를 나타내는 낱말로 나카ㅎ가 다시 쓰였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 (시 16:8, 11)

구름(아난 ±­nan)과 불(에쉬 °¢š)은 매우 평범한 것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특별한 모양으로 비범한 목적에 사용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것이다. 그것은 그냥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것은 i)이스라엘 자손이 밤이나 낮이나 가나안을 향해 걷도록 돕는 수단이었다. 민수기에 이것은 ii)출발과 정지의 신호로 활용되었다.(민 9:17-22) 여기에 두 번째 나오는 걷다(가다)는 말은 부정사 연계형으로(랄레케트) ‘... 걷게 하기 위하여(걸을 수 있도록)’ 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iii)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나타내는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광야 생활 내내 동행하였다.(출 40:36, 38; 민 10:34; 14:14; 신 1:33; 느 9:12, 19 참조) 이것은 iv)하나님의 계시와 임재 (임마누엘)의 상징이었다.(출 34:5-7) 더 나아가 이것은 v)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지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또한 vi)하나님과 모세가 의사를 소통하는 통로였다.(출 33:9-11)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 (출 3:2-6) 불의 모양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열과 빛이 있으나, 소멸시키지 않는(태워버리지 않는) 불이었다. 이제 이집트를 떠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난 불(불기둥)도 그와 같았다.

<오늘의 적용>

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방어벽을 든든히 세운 도시국가의 군사력을 피하는 대신에 이스라엘 자손은 홍해바다라는 장애물을 만났다. 한 가지 장애물(위험)을 피하려 다른 것을 선택하면, 거기에는 또 다른 장애물(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인생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이든 이루고자 하는 데에 어려움이나 난관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속담에 ‘왕도(王道)는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누구든지 목적(목표)에 도달하려면, 거쳐야(극복해야) 할 과정을 다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극복)의 관건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② 요셉의 뼈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는 이상한 것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이미 2-3백년 전에 죽은 요셉의 뼈들을 추린 보따리였다. 이것은 요셉의 유언을 따른 것이었다. 빵을 구을 시간이 없어 누룩이 들지 않을 빵을 들고 나올 만큼 아주 긴박했던 그 시간인데도 이것까지 챙긴 것을 보면, 이것은 그들에게 매우 깊은 뜻이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요셉이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던 그 믿음, 가장 억울하고 분할 수밖에 없었을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였던 그 믿음, 눈앞이 캄캄하여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던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던 그 믿음을 본받고자 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비교적 형통할 때에나 가장 형통할 때에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신앙을 지켰던 그 믿음을 뒤따르고자 함이었으리라.

③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떡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킬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런데도 이들은 너나할 것이 없이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군중의 모습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대오를 갖추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3-4)

바쁘게 긴장감 있게 돌아가는 세상 현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대오를 흩어놓거나, 우리의 마음을 산산조각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④ 앞서서 가시니
하나님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맨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 각 사람과 교회(신앙공동체), 나라와 민족들, 피조물 전체와 역사를 이끄시고 섭리하시는 분이다.

찬송가 128장은 “오 영원한 내 주 예수 앞서서 가시니 이날의 주의 승리는 영원무궁하리” 라고 시작된다. 하나님보다 앞서고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위험한 것이다.

⑤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 주목하게 하는 표지였다.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자손은 여러 가지 위험과 시련과 궁핍에 시달렸다. 이럴 때 사람은 자칫 자기 상황에 매몰되기가 쉽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밤이고 낮이고 쉽게 볼 수 있는 표지를 만들어놓으셨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라는 표시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을 든든하게 잡아주는 것이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⑥ 하나님이 쓰시니 …….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 시간이든 물질이든 현상이든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질이 달라진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쓰시면, 그것들은 순식간에 특별해진다. 그것이 평범한 것이든 비범한 것이든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사용될 때에는 다 특별한 모습으로 변모된다. 구름과 불, 그리고 그것으로 만들어낸 현상도 그러하다. 구름과 불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흔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와 동행의 표지로 삼으신 것이다. 아니 흔한 것이기에 오히려 어디서나 언제나 가까이 볼 수 있으니, 그것을 동행 및 출발정지의 신호로 삼은 것은 진정 탁월한 선택인 것이다.

⑦ 그늘로 보호하시니 …….

   
 
이것은 우선 열기에서 보호하심을 가리킨다. 광야(사막?) 지대의 낮은 유난히 뜨겁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그늘도 거의 없다. 사람은 쉽게 더위에 지친다. (욘 4:4-8 참조) 뿐만 아니라 더위를 먹거나 일사병 등 생활과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니은 구름기둥의 모양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나셨다.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7:8-9)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시 36:7)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 57:1)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 (시 121:5-6)

주는 ...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사 25:4)

⑧ 따스하게 보호하시니 …….
이것은 우선 냉기에서 보호하심을 가리킨다. 광야(사막?) 지대의 밤은 유난히 춥다. 낮의 뜨거움과 정반대이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불(온기, 따스함)로 다가오셨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