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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망 목회의 영성: 사회적 기도와 심방<이원돈 칼럼>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 승인 2015.06.25 14:05

3포, 5포의 저출산 고령화의 불안 증폭 피곤 허기사회의 대안과 해법은 결국 돌봄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개인과 가정은 너무 작고 이미 해체되어 있기에 불가능하고, 국가는 너무 크고 부패해 있기에 마을이 돌봄마을이 될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오직 돌봄마을이 이 잃은 양을 찿아 어깨에 메고 벗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 수 있는 참 치유와 돌봄 공동체가 될 수 있는 줄로 믿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렇게 킬링 사회의 잃어버린 양들이 되었는가? 그동안 우리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조차 스스로와 경쟁하게 하는 체제를 낳았다. 그리고 이런 무한경쟁사회는 무수한 실패자를 낳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면의 전쟁은 모든 이들을, 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일지라도, 이 내면의 전쟁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 이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내면의 전쟁으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모두가 상처 입은 자들이고, 자신의 상처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킬링 사회를 힐링하자는 힐링을 절실히 필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힐링의 전문가들 이라는 사람들이 내놓은 힐링은 개인적 경쟁력과 스팩을 높임으로서 개인을 치유하겠다는 자기계발식 힐링상품의 일부가 되어 버린 가짜 힐링이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찿기 위해서는 우리는 쉽게 자기 개발을 통한 개인적 힐링을 찾고 있는데, 이러한 자기 스팩과 자기 계발을 통한 개인 치유가 궁극적인 치유일 수 없음은 이제 점차로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개인의 경쟁력과 스펙을 중심으로한 자기 계발식 힐링의 대안으로한 새로운 힐링을 관계적 힐링 혹은 사회적 영성이라고 이름 붙이기 시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영성은 개인적 경쟁력과 스팩을 쌓는 자기 계발식 힐링을 추구하는 힐링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온도를 높여가는 관계적 힐링만이 참 치유와 돌봄이라는 것이다. 즉 혼자 애쓰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부둥켜안아 몸을 따뜻하게 할 때만 훨씬 더 따뜻하게 몸의 면역을 높여 제대로 된 관계적 치유와 돌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체온이 1도 올라감에 따라 우리 몸의 면역력이 30배로 증감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영성과 사회적 힐링은 자기 자신의 상처를 힐링하기 위해 자기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웃, 자기가 속한 사회,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 주위의 모든 존재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자기도 힐링되는 그런 관계적 힐링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와 공동체와 사회를 골고루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궁극적 진짜 치유이고 돌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시대의 시대의 양을 돌보는 참 목자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고 오늘 이 시대의 강도당하고 상처난 이웃의 상징적 모습은 누구일까?

우리는 수십명의 노동자가 자살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을 상담하면서 의사로서의 돌봄 노동을 하다가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로 절망과 실의에 빠진 유가족들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되찾아주려고 안산에 치유센터 세우며, 거기서 살겠다고 하는 몇몇 동조자들이 5년 이상 안산에 머물 결심으로 거주할 집을 마련중이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모습에서 그러한 시대의 목자상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세월호 사건이나 제주도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사건 등에서 ‘사회적 영성’의 흔적을 찾아내고 증언하며 기억하는 일군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사회적 영성과 돌봄의 영성을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사회적 영성과 돌봄 영성을 찾아나설 때 주의 할 점은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한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한 영웅적인 한 목자를 찿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교회 전 공동체나 마을이 바로 사람을 돌보는 목양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공동체적 목양 패러다임은 목회 돌봄의 강력한 힘은 개인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가 돌봄을 제공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이제 미래 목회에서 교회 회중은 단순히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주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잃은 양을 돌보는 목양은 안수 받은 목사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가 참여해야 한다. 이처럼 목양이란 개인이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이 돌봄의 관계망을 통해 서로 돌보고 보듬으며 공동체의 온도를 높여 나가며, 결국 영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 인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평신도를 질적 공동체로 향상시켜야 한다. 이제 성도들을 교회 내의 중직이나 일꾼으로서만이 아닌 하나님나라의 제자로 길러내는 커리큘럼, 곧 하나님과 친밀하면서도 공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사회의 각처에서 자신들의 소명에 따라 하나님을 영광을 드러낼 제자들을 공동체적으로, 체계적으로 길러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제 우리는 개인적 영성을 넘어 사회적 공적 영성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사회적이고, 공적인 미션을 수행하는 이러한 공적인 영성을 실천할 때이다.

그러면 성숙한 교인들이 실천해야할 이러한 공적 영성 생활을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공적인 영성 생활의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사회적 기도와 심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영성 생활을 위해 교인들의 기도생활과 심방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도와 사회적 심방은 단순히 기도하고 방문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와 심방이라는 영적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삶과 교회의 삶, 마을의 삶이 성서적, 영적 통찰력으로 새롭게 읽혀지며 나누어지며, 가정과 교회, 지역 전체가 영적 생명망으로 짜여 나가는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공적 영성 체험은 가족과 개인과 개교회를 넘어서는 새로운 영적 생활의 체험을 요청하고, 새로운 공적 영성은 교회 공동체로 사회적 기도와 사회적 심방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요청하고, 이제 교회 교우들이 이 잃어버린 양을 돌보는 영적 돌봄망에 선교 일꾼으로 기도로, 그리고 심방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돌봄의 영적 생태계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마을로 사회적 심방을 나설 때 대체로 세가지 기준을 가지고 나간다.

우리가 심방하는 가족이나 이웃 중에는
1.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다. 그러한 분들에게는 우리는 물질적, 복지적 생태계를 만들어 드리고 도움을 드릴 필요가 있다.
2. 도움을 받으실 사회적 관계망이 부족하신 분들에게는 그러한 상담과 기관, 도우미들을 연결하여 돌봄의 관계망을 찾아 드리려 한다.
3. 신앙적 위로와 격려 그리고 기도와 같은 영적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계시면 교회로 모시고 오는 전도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목회 방향도 마을과 지역사회를 강조한 생명목회로 생명망을 짜는 목회로 전환돼야 하는데, 이 생명망 목회의 첫 번째 단계는 지역 사회를 섬기는 복지선교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는 교회학교와 마을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등을 잇는 지역 학습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회 안의 신앙적 생태계와 교회 밖 마을 생태계를 지역심방의 개념으로 묶어 영적 돌봄망을 짜며, 개인과 가족을 넘어서 지역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는 사회적 기도훈련과 사회적 심방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기도훈련과 심방제도는 궁극적으로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봄에는 교인심방, 가을에는 지역을 위한 기도와 지역심방을 연결해 지역과 마을을 심방할 수 있겠다.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wewinw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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