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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張俊河), 그 다시 시작되는 생명장정(生命長程) 4토교(土穚)에서 서안(西安)으로 2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6.25 14:19

장준하를 비롯한 토교대원들 30명은 미군이 제공하는 군용기편으로 서안에 착륙했다. 이미 미 육군의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O.S.S 대원후보들이 가야할 곳인 이곳 서안 비행장으로부터 서북방 16km 지점의 두산(杜山)이라는 곳이다. 병영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불교사원의 영역이었다. 여기저기 몇 동의 건물들이 있었지만 중국 군부의 군사전략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사찰은 이전해 가게 됐고, 그 이후 비어있던 건물을 필요한대로 수리해서 사용하게 되어 철기 장군의 광복군 제일 지대의 본부가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한국광복군과 미육군특전단(美陸軍特戰團)이 연합으로 추진하는 O.S.S 훈련단과 그 훈련대원들의 병사역시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장준하에게 또 하나 주어진 기쁨이 잡지 <제단>(祭壇)의 창간이었다. 이 <제단>의 창간에 대해서는 「인간(人間) 장준하의 유산」에서 자세히 언급이 되겠지만 장준하의 이 <제단>이 그의 O.S.S 훈련과 동시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화기독청년회」 간사였던 ‘뻰스’ 박사의 큰 지원을 힘입어서였다. 뺀스 박사의 후의로 아직도 비어있는 사찰소유의 건물 한 동을 더 매입해 「교회」를 세우면서 동시에 일부를 할애해 잡지 <제단>을 창간한 것이다.

그것은 임천에서, 중경에서, 토교에서의 잡지 <등불>과는 그 내용이나 규모에서 확연히 달랐다. <제단> 제1호는 300부를 발간하여 서안 두곡의 광복군 제2대원은 물론 중경의 전 임정요원들, 토교의 부대원들, 임천의 한광반, 멀리 미주까지 발송, 그 수령자들로부터 뜨거운 지지와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 「제단사」(祭壇社)의 창간에 철기 장군의 음양의 격려와 지원이 배후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광복군 장준하 중위
O.S.S 특수훈련에 임하면서 광복군 소위 장준하는 중위로 진급한다. 그는 잡지 <제단>의 대표이면서 동시에 O.S.S 특수훈련을, O.S.S 특수훈련원이면서 동시에 <제단>의 발행을 수행해야 했다. 그 두 가지 과제 중 어느 하나도 보통 과제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장준하의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추진해 가는데 지칠 줄을 몰랐다. 이 두 가지 대사를 양견(兩肩)에 지고 전진해 가는 장준하의 보무(步武)는 한 짐만을 지고 가는 동료들을 오히려 앞서고 있었다.

온 종일 특수훈련이 계속된다. 엄청난 보람과 감격 속에 진액을 쏟아간다. “왜적을 고국산천에서 몰아내는 방법은 무력 밖에 없다. 이제 연합군이 총공격을 개시했고, 이에 발맞춰 우리 광복군 제2지대에서는 지금 곤명(昆明)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 전구미군사령부(中國全區美軍司令部)와 합작으로 우리의 본국 침투를 위한 특수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일선에 O.S.S 대원 여러분이 있다. 그 위대한 사명을 결코 잊지말라.”

아슬한 거암 절벽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 오르내리기, 낙하산 투하, 도강(渡江), 몸 전체로 이루어 내는 상륙작전에 이어지는 총검술 훈련, 그리고 적을 정확히 조준해 제거하는 투검(投劍) 훈련, 뿐만이 아니었다. 수중에서의 단호흡으로 견디기, 피하기, 공격하기 적진 격파를 위한 폭약 매설 및 투척 등 이런 모든 훈련이 마치 실전처럼 계속되는 나날에도 “왜적을 고국산천에서 몰아내는 방법은 무력밖엔 없다. 그 최일선에 O.S.S 대원 여러분이 있다.”는 장군의 격려는 장준하로 하여금 지칠 줄을 모르게 했다.

훈련의 격렬함은 한계가 없었다. 장준하의 돌베게는 O.S.S 훈련 중 상당부분을 기밀로 묻어두고 있었다. 장준하 뿐만 아니다. 당시 함께 특수훈련에 참여했던 상당수의 인사들이 「장준하의 사상계 시대」에까지 활동을 같이 했거나 살아있으면서도 약속이나 한 듯이 그 「기밀」은 기밀대로 묻어 두고 있었다. O.S.S 훈련의 격렬함을 증거해 주는 부분이다. 전쟁의 반인륜(反人倫)을 암시해 주는 것일까?

장준하 중위는 이같은 몸 전체로 하는 훈련을 정확하게 3개월 동안 수행해 냈다. 이 훈련의 교관들은 미 육군에서도 베테랑으로 인정된 미 육군특전단의 전술 사관들이었다. 생사를 묻지도, 개의치도 않는 훈련이었다. 이제 곧 일군 점령 하의 한반도에 상륙침공을 하게 된다. 이 O.S.S를 지원하면서도 느낀 것이었지만, 수료하면서는 더했다. 「죽음의 실감」 말이다.

죽음의 신비, 그리고 그 아름다움
죽음이 목전에 놓여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런데 장준하 중위는 토교를 떠날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죽음, 그것이 신비로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더할 수 없이 거룩의 지경에 드는 느낌이었다.

우선 그 임정에 대한 혐오감이 거짓말처럼 씻겨 나가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여기 중경을 찾아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다시, 일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항공대를 지원하겠다. 항공대를 지원하게 된다면 일본 항공기를 몰고와 이 임정청사를 폭격해 버리고 싶다.”던 그 임정이 더 할 수 없이 사랑스러워 지는 것이었다. “중경에 더 이상 머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학과 모욕”이라 했던 그 중경이 아름다워 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신비했다. “세상이, 천상천하 모든 것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생명을 내놓으면서, 죽음을 순히 받아들이면서 체험한 정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죽음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 장준하와 김준엽.
한국 광복군 장준하 대위
1945년 7월 30일, O.S.S 특수요원 훈련을 마치면서 장준하 중위는 대위로 진급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위 장준하! O.S.S에 참여할 때부터 그의 꿈은 국내공작이었다. 그는 O.S.S 훈련 도중 미국 전술교관들을 통해 한국의 잠입 및 상륙작전이 얼마나 중요한 전략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미국방전략의 핵심은 일본의 상륙 점령에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수행해야 할 것이 일본 군부의 일본 사수 결의를 꺾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전의의 상실이야말로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최선의 비결이기 때문에.

따라서 장준하는 미 국방의 지도부에서 수립한 대일본점령의 최우선 전략으로서 일본 군부의 일본 본토 사수 결의의 기(氣)를 꺾는데 1차 작전이 한반도 상륙작전이며, 한반도 상륙 작전은 서해안에서 서울까지를 연장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작전은 자신의 몫이라고 다짐 또 다짐하고 있었다. “나는 인천, 경기, 서울 상륙공작을 맡는다!”

바로 그 때, 그 같은 조국해방의 거대한 꿈을 그리고 있는 장준하 대위를 찾아온 한 전령이 있었다. 민영주(閔泳珠)였다. 민영주는 김구 주석의 비서실장 민필호(閔弼鎬)의 딸이었다. 장준하의 개입으로 김준엽의 아내가 되었고, 지금은 김준엽과 함께 철기장군의 비서로 있는 여성이었다.

“김준엽 실장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장준하는 의외의 방문객을 맞아 방문의 내역을 물었다. “김 실장이 보내서 왔다고요? 무슨 일이요? 대장이 부르시는 거요? 실장이 부르는 거요?”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빨리 모셔오라는 전갈이었습니다.”

장준하 대위는 자신을 찾아온 민영주와 본대로 달려갔다. 김준엽 대위가 대장실 앞에 나와 있었다. “아니, 신일 동지, 웬일이야? 무슨 일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화급히 사람을 호출하는 거야?” 김준엽 대위는 무겁게 입을 닫은 채, 자신의 방으로 장준하 대위를 안내했다. 전령은 돌아갔고, 둘은 조용히 마주앉았다.

“신철 동지, 언짢아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신철(信鐵)은 O.S.S에 참여하면서 개명한 이름이다. 국내 공작엔 가명이 필요하다는 명에 의해 바꾼 이름이다. 장준하는 김신철, 김준엽은 김신일(金信一)이라했다.

“아무래도 장군께서는 신철 동지가 국내 잠입하는 거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아.”
“......”

그것이 장준하였다. 어처구니없는 일, 결코 못 볼 꼴을 당하면 아예 조용해지는 것, 장준하는 멍한 표정으로 김준엽을 주시하고 있었다. 김준엽은 장준하의 그런 때의 속내, 그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냐, 신철 동지, 내 말 좀 더 들어보라고.” 장준하 대위는 아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장준하는 철기 장군이 자신의 국내 진공을 불허할 것 같다는 김준엽의 전언에 눈을 감아버렸다.

“온 땅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니……. “그 때, 종남산이 내 가슴 위에 올려진 것 같았다.”고 후일 장준하는 술회한다. 장준하는 더 이상 김준엽의 이러저러한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장준하 국내 침투 철회의 이유는 전후를 대비하려면 그럴 만한 일꾼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장준하에겐 그 말까지도 분명히 들리지가 않았다.

“신일 동지, 내가 장군님을 직접 뵙고 싶소. 오늘 당장은 어렵더라도 늦어져서는 안 되겠소. 내일이라도 좋으니 꼭 좀 뵙도록 해주시오.” 김준엽은 답답했다. 장군의 계획이나 명령이 완강한 터에 장준하 역시 한번 세운 목표를 변동하는 것을 대소사간에 이제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김준엽은 장준하가 돌아가자마자 바로 지대장을 만나 「장준하 사건」을 보고했다. 장준하 국내침공유예 절대불가! 철기가 “내일 당장 장 대위를 부르라.”는 엄명을 내리던 그때, 장준하는 부대 내의 이발소에 나타났다.

“삭발해 주시오.” 이발병이 깜짝 놀랐다. 이름 없는 광복군들이었지만 그래도 장교들은 꽤 맵시를 내려하는 풍토인데, 삭발해 달라니……. “삭발해 달라는데, 못 알아들었소?” 장준하의 언성이 날카로웠다.

이발소를 찾아들 때까지는 사실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일 철기를 만나야 하는 장준하로서는 타협이 불가능한 일답(一答)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곧 삭발이었다. 장준하는 싸워서 이기는 이가 아니었다. 이겨놓고 싸우는 이었다. 장준하는 깨끗이 삭발해 버렸다. 이발기계로 깎는 것이 아니라 면도로 밀어버렸다. 그것이 철기 장군에 대한 장준하의 답이었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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