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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이적의 민통선 예수 22>
이적 목사 | 승인 2015.06.29 10:37

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나는 주위의 권유에 의하여 몇 달간을 피신해 있기로 하였다. 부산의 동광동 뒷골목에 가면 <계림><다락방><양산박>등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문인 사랑방이 있었다. 안주를 저렴하게 팔면서도 예술인 특유의 서정성과 예술적 끼가  넘치는 술집이었으므로 많은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곳에서 몇몇 지인들에 의하여 당분간은 피신해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권유를 받았다. 88올림픽이 진행되는 나라이긴 했지만 아직까진 서슬 퍼런 5공 쿠데타 세력들이 그대로 날개를 단 채 엄존해 있었으므로 안심할 처지는 못 되었던 것이다. 나는 계림에서 괴짜승려 한사람을 소개 받게 되었다. 그가 함양의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절을 하나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나이가 같아 금방 친구가 되었으나 생각과 사관은 판이하게 달랐다. 단지 그는 사판승이었으므로 내가 대하기가 좋았고 절이 세속적 분위기를 그대로 닮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하기에 편할 것 같아 선택 한 것 뿐 이었다.

   
 
실제 그는 아이와 아내도 숨겨놓고 있는 중 이었다. 나는 그가 준 주소를 따라 길을 떠났다. 그의 절은 함양군의 꽤 깊은 골짜기 마을에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마침 그는 어느 신도와 마주 앉아 점을 치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그가 말하는 점괘를 조용히 듣기만 했다. <보살님은 올해 살이 낀 운세야, 올해를 못 넘기면 자식들 해가 있겠어. 가만 있자, 벌써 아들 한사람이 사고를 냈구먼>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신도를 내려 보며 간 떨어지는 소리를 해댔다. 신도는 그 소릴 듣고 <에구머니 시님, 우야몬 좋겠능교. 시님 이일을 우짜몬 좋겠는교, 맞아예 둘째 놈이 결혼도 안하고 애를 낳지 않았능교.>

혜신스님은 내게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이고 여자신도에게 계속 엄포용 나팔을 불다가 결국 닭 피로 쓴 부적 한 장을 팔고 신도가 나가고 나서야 아는 체 했다.
<하이고, 연락이나 좀 하고 오시지>
그는 내 손을 잡고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런데 그 절에 숨어 지내는 동안 참으로 곤란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속세에서 내 소문을 듣고 친한 여류시인들이 지나가다 어쩌다 안부 차 봉원사에 들리곤 했는데… 한번은 주지 혜신스님이 날 좀 보자고 은밀하게 손짓을 했다. 나는 아무 말 않고 그가 오라는 법당 뒤뜰에 따라 갔는데, <헤이, 이처사 부탁하나만 합시다.> 한다.

<뭔데요> 하고 내가 정색을 하자 <햐, 오늘 온 그 처자 말이오. 그 처자 내 좀 소개 해 주시오, 내 맘에 꼭 들어. 어이쿠 미치겠어.>하고 몸까지 부르르 떨면서 부탁을 한다. 나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판승이니 이해가 되기도 해서 <그렇게 해 보지요>하고 뒤뜰로 걸어 나왔다.

혜신은 나의 승낙에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나는 얼른 여류시인한테 가서 얼굴 봤으니 빨리 떠나라고 말했다. 여류시인은 뜨악해진 얼굴로 내게 묻는다. 온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왜 떠나라고 종용 하냐는 것이다. 나는 이유는 자세히 묻지 말고 떠나라고만 했다. 그리고 배웅도 못하니 쥐도 새도 모르게 떠나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쫓겨나다시피 한 여류시인은 꽤 불쾌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류시인이 떠나고 난 뒤, 혜신이 찾아와 보살님 데리고 자기 방으로 오란다. 그러면 나는 <함께 가봅시다>하고 여류시인이 머물고 있는 마당으로 함께 간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여류시인이 없다. 나는 모르는 척 하고 여류시인의 이름을 부른다. 산에서 메아리가 되어 대답을 한다. 완전히 쇼를 하는 것이다. 한참 너스레를 떨다가 <어휴, 갔나봐, 간다는 말은 없었는데….>하고 넋 나간 표정을 지으면 주지는 <좋다 말았네>하고 금방 포기를 한다. 주지는 엉큼한 만큼 포기도 빨리 한다. 어릴 적부터 산에서 살아서 그런지 순진함도 몸에 묻어있고 무척이나 단순한 사람이었다. 또 한 번은 그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고생 독자 두 명이 찾아왔는데, 주지가 부곡 하와이에 함께 막걸리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통에 혼이 되게 난적도 있었다.

한 두어 달 봉원사에 머무는 동안 한번쯤 속세에 내려가 보고 싶었다. 친구들도 그리웠다. 오랜만에 부산 학술단체에 근무하는 친구 이기철을 만나러 갔다. 약속을 부산일보사 옆의 단골 술집인 호프집 비잔 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비잔에 들어서니 내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비잔 사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햐이고 반갑습니다. 어디서 숨어 지냈능교…”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한참동안 터트렸다. 조금 있으니 이기철이 몇몇 친구를 거느리고 비잔에 나타났다. 우리는 비잔 사장과 함께 동석을 하여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호프도 몇 순배 돌았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취기가 금방 올랐다. 나는 친구들과 신이 나서 막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산사에서의 얘기도 하고 주지얘기도 하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런데 얘기도중에 종업원이 사장을 찾아와 귀속 말을 한다. 순간 사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황급히 사라진다. 우리는 사장이 왜 갑자기 얼굴이 사색이 되는지를 몰랐다. 그리고 볼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사장이 웬 사내 두 명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나는 지명수배자인 내 신분을 잊어버리고 그들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의 의자 뒷좌석에 앉아 사내들의 말을 엿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취기 어린 내 머릿속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오고갔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내는 청소년계 형산데 이 가게에 미성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며 사장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형사 한명은 협박을 하고 또 하나의 형사란 사람은 <좋은게 좋은것>아니냐는 투의 돈을 요구하는 폼이었다. <순간> 나의 눈에는 불꽃이 일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이 대명천지의 나라에 저런 사이비 형사들이 있단 말인가, 나는 틀림없이 저들이 가짜 형사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가짜 형사 앞에서 사장이 속고 있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명수배자인 내 신분을 온 데 간 데 없고 나는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돌변하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경찰에 대한 희망 사항이며 나의 어이없는 착각 일 뿐이었다.

<야!>내가 고함쳤다. 가짜 형사 두 명이 놀라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두 놈 중 한 놈의 뒤 허리끈을 거머쥐었다. <야 이놈들아 어디 해먹을게 없어서 가짜 형사노릇을 하나, 어디 맛 좀 봐라. 가자> 나는 한 놈을 일으켜 세웠다. 나의 이 기세 등등함 앞에서 가짜형사들은 오금이 저려 오는 듯이 <서,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하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말할 것 없다. 네놈들은 혼이 나봐야 해, 가자, 경찰서로> 나는 사색이 되어있는 그들을 강제로 끌고 비잔 옆 50m 이웃에 있는 동부경찰서로 향했다.

그런데 비잔 사장이 나의 치기어린 모습을 보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이 선생님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를 연발해댄다. 그렇지만 나는 <사장님은 가만 계슈>하며 그들을 강제로 끌다시피 하며 동부경찰서 정문까지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동부경찰서 정문을 지키고 서 있던 전경들이 사이비 형사 두 명을 보자마자 깍듯이 거수경례를 한다. <허 이놈들은 가짠데…>하며 그때서야 취기에서 돌아온 나는 등 뒤 허리끈에서 슬그머니 손을 떼었다. 놈들은 진짜 형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두 놈은 내가 허리띠를 놓고 뒤돌아 설려는 찰라 <어디 가슈, 같이 갑시다>하며 순간적으로 처지가 역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꼼짝없이 지명수배자 신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청소년계 형사실에 돌아온 형사 한 녀석이 한숨을 <포옥>쉬며 말했다. <에이 씨팔, 좃도 아니네, 난 검산 줄 알았지.> 기절초풍을 할 노릇이었다.  민간가게에 들어가 공갈을 치고도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다니, 나는 오기택과 이놈들을 동시에 떠올리며 괴로워했지만 이미 열차 떠난 정거장이었다.

“어이, 주민등록번호 대봐”
그는 아예 반말 투였다. 내가 만약 지명수배자만 아니었더라면 이놈들을 그냥 두지 않았을텐데 신세가 처량했다. 나는 친구 이기철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다녔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기철의 주민등록번호 끝 번호를 잘못대고 말았다.

<가짜야, 진짜를 대> 나는 끝내 진짜 주민등록번호를 대지 않았다. 그러자 놈들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조서를 꾸며 밑면에 <수사대상, 구류 3일 요함>이라고 빨간 글씨를 적어 넣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뒷날 판사는 진짜로 구류 3일을 때렸다. 나는 그들만의 먹이 세계에 진저리를 쳤다. 형사란 놈은 공갈을 쳐도 무죄고 그 공갈범을 신고 하러간 나는 공무집행방해 죄인인가, 그걸 신고하러 들어간 사람에게 포상은 못할지언정 구류를 때려? 나는 마음속으로 통탄을 했지만 지명수배자임을 숨기기위해서는 더 이상 일을 확대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만 해도 손가락 지문으로 현장에서 신분을 조회하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신분을 조회하려면 2~3일이 소요되던 시기였다.

나는 유치장에 입감 되었다. 하루를 잡범들과 섞여 유치장에서 지냈다. 삼청교육대를 폭로한 공로 치고는 참으로 가혹한 조국이었다. 뒷날 아침 꽁보리밥으로 식사를 때운 뒤, 형사 두 녀석이 슬슬 나타났다. <자 시작해 볼까? 공사 좀 하지> 나는 놈들의 공사란 말에 진저리를 쳤다. 녀석들은 틀림없이 내가 잡범은 아닐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공사란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들만이 쓰는 고문이라는 은어였다.

나는 고문 받고 자백 할 바엔 미리 자백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세웠다. 언제 발각이 나도 발각은 날것이므로 당당해지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형씨, 그만 합시다 ”
형사 두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진짜 주민등록번호를 종이에 적어 내밀었다. 녀석은 재빨리 컴퓨터에 내 신분을 조회하고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두 녀석은 서서히 입가에 웃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제법 거물인데…. 왜 처음부터 자백 하지 않았소?”
“당신 같음 수배자 신세를 처음부터 털어 놓겠소?”
형사가 픽 웃었다. 그랬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매는 달라져 있었다.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시국사범으로 바라보는 눈매였다.

“함부로 말한 점 사과합니다.”
그리고 한 녀석은 담배를 한 대 권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담배를 받지 않았다. 나는 체념키로 했다. 이제 놈들에게 잡혀가면 2~3년의 징역형은 족히 받을 것이었다. 괘씸죄에 걸려 있던 요시찰이었으므로 군부에서 그냥 두지는 않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그들의 뜻대로만 이루어지진 않도록 해야 했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체포되었음을 바깥으로 면회를 통하여 알리기 시작했다. 삼청교육대 작가를 옭아 넣는 것은 삼청진상규명에 대한 탄압이라는 것을 여론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국제신문 박창희 기자가 면회를 통하여 인터뷰를 했다. 다른 신문사들에서도 다녀갔다. 그리고 며칠 후 부산역에서 서울로 압송을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역에는 친구들과 가족 모두가 잡혀가는 나를 보러 나와 있었다. 가족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부산역은 사람을 구슬프게 만들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열차 쪽으로 돌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갔지만, 갔다 하면 3년형은 족히 살 것이라는 짐작에 가슴이 저려 왔다.

서울 동부지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압송을 담당한 형사가 느닷없이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는 수갑도 채우지 않았고 포승도 묶지 않았다. <도망가면 어쩌려구요. >했더니 도망가시라고 한다. 그는 나를 절대 신뢰하는 듯 했다. 비록 형사 일은 하지만 옳은 것과 틀린 것을 구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까지 말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와 헤어질 땐, 그의 호의가 고마워 호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넣어 두었던 6만원을 꺼내어 비행기 타고 가라고 억지로 떠 맡겼다. 그는 나오시면 보자며 갔다. 나는 다시 서울 검찰청 동부 지청 지하 감방에 갇혔다.

얼마를 지났을까 철문이 덜컹 열렸다. 거의 하루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나는 검사실로 호송되었다. 그런데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내 뒤를 보던 지인이 뛰어왔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김대중 총재님을 뵙고 말씀드렸습니다. 야당의원들이 지검장에게 항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검사실로 들어섰다. 정모 검사였다. 그는 내가 그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한 무더기의 나와 관련된 서류를 잔뜩 쌓아두고 <이게 이적 씨와 관련된 서류입니다.>하고 첫인사를 내뱉었다. 그는 나를 세워 둔 채로 말했다. <그런데 이적 씨는 왜 군과 군인의 명예를 훼손시킵니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도 한 가지 묻겠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라고 총을 줬더니, 왜 지키라는 나라는 안 지키고, 자기 나라 백성을 총칼로 쏴 죽이고, 찔러 죽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

검사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가십시오. 며칠 뒤에 출석요구서 내 보낼 테니까 그때 오세요.>하며 나가라고 한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돎을 느꼈다. 3년 징역형을 각오하고 있던 나로서는 느닷없는 석방에 당황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검찰청 바깥으로 나가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미 나의 석방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김대중 총재를 비롯한 야당 국회의원들이 검찰청에 거센 항의를 하여 나의 석방이 임의로 결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김대중 총재가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조승형 의원을 시켜 나를 석방케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들었다. 후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조승형 의원은 대법관이 되었다.

나는 호프집 사건 이후 약 일주일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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