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쓰나미, 전쟁과 테러, 알지 못하는 미생물들로 인한 유행병의 창궐, 거대자본들의 횡포와 매스 미디어들의 보수화, 환경파괴와 생태계의 변화 등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암담해져서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어떻게 지냅니까? 건강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는 거리낌 없이 “은혜로 삽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받았다. 내 몸을 덮어주고 있는 하늘과 받아 주는 땅,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 푸르른 산과 드넓은 들, 흐르는 시내와 강과 바다 또한 은혜로 받았다. 살면서 사랑으로 만난 부모, 형제자매, 선생님들, 친구들, 마을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배려하심이요 선물이다. 나를 이끌어준 목회자들, 교회와 성도들, 베다니집에서 인도 선교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도록 축복으로 주신 후원자들 또한 은혜로 거저 받았다. 복음도, 구원도, 사랑도, 사명도, 평화도 값없이 받았다. 생명과 삶이 은혜임을 알기에 나는 비자 문제로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도 인도선교 18년의 삶이 축복 중의 축복, 은혜 중의 은혜였음을 뜨겁게 고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비자문제로 봄 내내 가슴앓이를 하면서 자꾸 의기소침해지는 나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에 빚진 자인가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만드셨다.

일터를 강제로 빼앗긴 자의 슬픔과 고뇌를 아무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교보고와 기타 일들로 방문한 교회와 기관에서 뜻밖의 많은 분들이 조용히 손잡고 자신들의 선교사 기도 순서에서 내가 가장 먼저라는 말씀을 해주시며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해주셨다. 최 장로님은 ‘선교사 하면 내가 절로 떠올라서 가장 먼저 기도를 드리게 된다’고 하셨다. 어느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은퇴하신 권사님께서 권사기도회 모임 때 사용하는 기도 제목을 적은 노트를 보여주셨다. 내 이름이 가장 위에 적혀 있었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뵙게 된 신 장로님 내외분께서 “오랫동안 뵙지 못했어도 목사님은 우리 기도 속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특별히 어떤 지우들은 나의 의사요, 약사요, 영양사, 요리사, 권면자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나는 그 분들의 음식과 건강식품과 영양제와 약들을 먹고 마시며 새 힘과 용기를 내곤 한다. 특별히 인도 선교 현장으로 돌아갈 일정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목사님, 넘어진 김에 쉬어가세요. 건강도 살피시고요.”, “쉬라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정신없이 달려 왔으니 이제 쉬세요.”라는 말을 하면 그 말이 위로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짜하게 아파온다. 그리고 돌아서면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내 건강을 살펴주는 친구들과 교우님들이 “지금은 고난을 이해할 수 없어도 멀지 않아서 고난이 유익했다는 말을 하게 될거요.”라며 손을 잡아 주었을 때, 그 분들의 마음이 기도처럼 편안하게 나를 싸고돌았다.

몇 년 전에 소천하신 이 권사님은 “내 동생이 목사고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 계시는데도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 맨 먼저 이 목사님 기도가 나와요. 순서를 바꾸려고 해도 억지로 안되네요.”라며 나를 울리곤 하셨다. 돌아가신 이 권사님을 대신해서 기도하는 가족들의 기도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된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대로 나는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 제주도에서 서울, 경상도에서 전라도, 충청도에서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회, 많은 분들에게 기도와 사랑에 빚진 자임을 하나님께서 보게 해주셨다. 아무리 받고자 해도 내 힘과 노력과 의지로는 받을 수 없는 기도의 빚을 지게 해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기도의 빚과 사랑의 빚을 주신 수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의 신비에 감동이 되어서 가슴이 눈물에 잠겨 버렸다. 나를 빚진 자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에게 빚을 주는 하나님 자녀들의 마음을 받으며, 해이해지고 나른해진 나 자신을 추스르며, 은혜의 바다에서 목욕을 한다. 다시 처음처럼 초라하고 단순하게 그냥 사람들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쓰실 것이다.

선교사로 사역을 하면서 나는 기도의 빚과 동시에 수많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 또한 거저 받았다. 자신들의 노동의 대가를 기 천원에서 기 만원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의식주에 매이지 않고 선교사로 살 수 있었다. 또한 몇 십 만원에서 몇 천 만원에 이르기 까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쾌척해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150여 개가 넘는 다양한 건물들을 후원하여 교회와 학교들을 세우며 나누며 섬길 수 있었다.

꿈 때문에 겁 없이 선교지로 나갔지만 나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선교사여서 정말 인간적으로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17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내 힘과 지식, 능력과 열정, 관계와 노력으로 불가능한 사역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많은 성도들의 기도, 물질, 정성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나님을 향한 목회자들의 사랑과 섬김이 우리 현장에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내렸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교우들과 교회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 왔고 크고 작은 사역의 문을 열어 주었다. 실로 나의 사역은 나의 사역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도와 교회들의 사역이었다.

신학교 졸업 후, 준목으로 시무했던 교회에서 사찰집사로 섬기셨던 김 집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아주 명랑한 음성이었다. “목사님, 보답을 못해서 늘 죄송합니다. 후원금을 1만원 올려서 매월 2만원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솟아올랐다. 노점상으로 생계가 어렵지만 나를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로 엎드려 큰 절을 드리고 싶었다. 나는 뜻 있는 노점상인들과 함께 하루 1000원씩 회비로 걷어서 청소년가장 돕기를 오랫동안 해오신 그 분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며 많은 도전과 위로를 받곤 했었다.

주변에 과일가게가 많이 들어섰다는 말을 들어서 집사님의 생업에 많은 차질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 어느 날 노점을 방문하였다. 예상대로 타격이 커보였다. 작년에 전립선암 수술을 하신 이후로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서인지 힘겨워 보였다.

“집사님, 하시던 후원도 중단해야 될 것 같아요.”
집사님이 씨익 웃으시면서 대답하였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살라고요.”
“목사님, 실상은 마음으로 작정한 것을 못해서 마음은 아프고 장사는 영 안 되고 해서 어찌할까 했는데 제가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로서 보상을 받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돈이라고 믿고, 그 돈으로 후원하기로 하였어요. 두 가지 방법으로 후원하기로 했는데 몫돈은 목사님께 직접 드리는 것이고 하나는 예전대로 매월 후원하는 것이요.”

고엽제 피해보상금으로 선교후원금을 올렸다는 집사님의 말이 귓전을 울리자마자 말문이 막혔고 눈물이 솟구쳐 흐르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핏 값을 후원금으로 주시다니요. 제가 무엇이 관대 집사님의 생명을 받습니까? 하나님, 제가 무엇이 관대 집사님의 핏 값을 받습니까?“

나도 울고 집사님도 울고 하나님도 함께 우셨다. 고엽제 때문에 평생 동안 겪은 집사님의 고통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고엽제 후원금이 준 충격이 너무 커서 내가 빚진 자 중의 빚진 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갚을 길이 없는 빚을 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 권사님 또한 말없이 나를  목자의 뜰로 마굿간으로 인도하신다. 그 분 또한 나에게 감동 그 자체이다. 그는 현재 파출부로서 하루에 두 세집에 가서 일을 하고 있다. 일찍이 성경학교를 졸업했지만 기도한 대로 교회에서 일하지 못한 아픔과 남편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여 평생 동안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온 고통이 있으시다. 그런 분이 해마다 선교비를 모아서 한 명의 신학생 장학금을 보내주신다. 그것도 남을 시켜서 조용히 전달해주신다.

전화로 “권사님, 너무 귀하고 큰돈입니다.”라고 말하며 죄송해하면 권사님은 “목사님, 부족해요. 더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서 죄송해요.”하며 정말로 미안해하신다. “저는 편안히 사는데 목사님은 복음 때문에 인도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의 겸손과 사모하는 마음이 나를 찔렀다.

동북인도에서 남인도의 케랄라에 이르기까지 전인도 선교여행을 함께 하신 몇 분 안 되는 분 중에 송 집사님과 이 권사님이 계시다. 이 권사님은 20년 동안 아침 금식한 성미를 모아서 교회 건축 후원을 하신 분이시고, 아들이 믿음으로 잘 성장한 것을 기뻐하여 감사헌금을 드려 뉴델리 뿌렘담 애슈람의 처음 건물을 완성시켜 주신 분이기도 하다.

마드라스 크리스챤 칼리지 학생 팀과 함께 새만금을 방문하는 날, 아침 일찍 이 권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못 뵈어서 꼭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방문 일정이 계속 늦어지는 바람에 따로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뵙는 것을 포기해야 했는데, 오후 늦게 걸려온 전화기를 통해서 들리는 음성이 너무 간절하였다. 결국 저녁식사를 하지 않고 그 분들을 뵈러 갔다.

집사님은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거동이 조금 불편한 상태였지만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일날 광고시간에 내가 인도팀과 함께 교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난 그 때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아침부터는 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고 하였다. 순간 가슴이 울컥거렸다. 내가 무엇이기에 이 귀한 분들의 사랑을 받는가! 내가 무엇이기에 이 분들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는가! 내가 무엇이기에 귀한 분들의 섬김을 받는가!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우리는 그 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함께 주고받으며 울고 웃었다. 송 집사님은 거듭 “인도에서 돌아올 때 마음먹은 대로 돕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여전히 기도하며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부디 건강을 살피세요.”, “우리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크고 아름다운 마음의 선물을 주셨다.

“목사님과 함께 한 선교여행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었습니다. 덕분에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저희들도 행복합니다.” 두 분의 꾸밈없는 말이 주님의 손과 마음이 되어서 나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때에 집중적으로 많은 위로자를 보내주시며 내가 성령님과 교회와 교우들에게 빚진 자임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빚진 자로 사는 선교사의 축복을 끝 까지 잘 감당하기로 다짐한다. 처음처럼 초라하고 단순하게 사람들 속에 있기로!

이옥희 선교사  yiso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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