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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그 다시 시작되는 생명장정 5<함석헌·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7.03 17:21

중국 서안서(西安)에서 한국의 서울로

다시 제2지대장 비서실의 민영주(閔永珠)가 장준하를 찾아왔다. “철기장군께서 김신철(金信鐵) 대위님을 오후 3시 장군님의 막사에서 뵙자하십니다.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장준하도 민영주도 철기장군의 하명의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민영주는 철기의 명을 전하고는 지체 없이 장준하를 떠났다. 장준하는 정확하게 철기가 명한 그 시간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의 막사에 나타났다.

정각 3시, 이범석은 이미 막사 앞에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준하는 크게 송구스러웠다. “김 대위, 참 반갑구먼. 우리 정원을 좀 걸을까?” 영내에 참 아름다운 숲길이 있었다. 장준하는 몇 걸음 뒤떨어져 장군을 따랐다. “아니야, 김 대위, 같이 걷자고.” 장군의 말을 따라 발걸음을 나란히 했다.

“김 대위, 「제단」 2호는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철기의 물음은 장준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고맙고 감격스러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토교에 주둔해 있던 때 “張俊河 君에게”라는 김구주석의 사신(私信)을 받았을 때의 감격에 깊이 겨웠던 그때의 가슴을 다시 경험하는 것 같았다.

장준하는 중경에 있을 때나 토교에 있을 때나 기독교의 예배모임을 주도했는데, 때마침 세계기독교연차대회(世界基督敎年次大會)에 한국에서도 실태보고서를 제출 할 필요가 있어 이 보고서의 작성을 장준하에게 위임하는 내용의 김구의 친필 서신을 받았던 것이다. “김대위, 「제단」 2호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하는 장군의 문의는 일상 있는 수식어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장준하의 답이 있기도 전에 “「제단」 1호 아주 잘 읽었어. 참 좋은 글들이 많았고, 이제 조국이 광복이 되고, 우리들 조국에 돌아가게 되면 큰 나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야.” 장군의 맘 담은 격려에 장준하는 쏟아지는 눈물을 장군 앞에서라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 광복군 제2지대장직을 수행한 철기 이범석 장군.(출처: 국가보훈처)
장준하는 지금 장군과 잡지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또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해 장군께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게 해서도 안 된다고 확신해 자신이 먼저 본론을 열었다.

“대장님, 김신일 대위로부터 대장님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고마우신 뜻을 전해 받았습니다. 대장님께서 조국 광복을 말씀하시고, 광복 후의 조국재건까지 구상하시면서 이후에 야기될 사태에 대비할 세력의 구축을 위해 김신일 대위와 저를 이선에 남게 하려 하신다는 대장님의 뜻을 김 대위를 통해 잘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장님, 제게는 스까다를 탈출할 때부터 하늘에 한 맹세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느 때든가 나 김신철은 조국탈환을 위한 상륙전의 최일선에 설 것이며, 그 전선에서 내 생을 장렬히 끝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김신일 대위는 대장님의 명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김신일 대위라면 제 몫의 갑절을 해낼 수 있는 투사요, 재사입니다. 대장님, 저는 처음의 계획대로 조국상륙침투작전의 일선에 서게 해 주십시오. 또 해방이 될 때는 상상 이상의 많은 능력 있는 일꾼들을 찾게 될 것입니다.”

장준하의 본론은 간단명료했다. 또 이미 결사(決死)를 이룬 만큼 어조 또한 지고의 결기를 띄고 있었다. 그러나 철기 역시 그의 지론을 쉽게 거두려하지 않았다. 장준하를 죽는 자리에 내어준다는 것 자체가 죄 짓는 것 아니냐 해서였다. 이 지극한 젊은이를 어떻게 사지에 보낼 수 있단 말이냐? 해서였다.

“신철 동지의 기개를 내가 어찌 모르겠나. 사실은 나도 북평(北平:지금의 북경)이나 천진(天津) 등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진지에 폭탄을 안고 유탄으로 내던져지고 싶은 충동을 늘 느끼고 있소.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냉정한 자세로 국제정세를 주시할 때라고 믿소. 지금 세계정세를 보면 일본의 패망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소. 그래서 이곳의 유능한 동지들을 좀 아껴두려는 것이오. 그래서 신일, 신철 동지를 이선에 남게 하려는 거야.”

“대장님.” 장준하는 힘주어 철기를 부르더니 철기가 궁금해 하리만큼 철기를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장준하는 무언중에 조용히 모자를 벗어보였다. 삭발해버린 머리였다. 이발기계로 깎은 머리가 아니었다. 면도(面刀)로 깨끗이 밀어버린 머리였다.

“저런! 언제, 어제 본대에 다녀갔었다더니, 어제 돌아가면서 깎은 거구먼...” 그리곤 철기도 장준하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쥐 죽은 듯이 계속되던 고요가 철기의 강고한 한 목소리에 깨졌다. “알았어. 김 대위의 그 큰 뜻 기어이 성취되길 바라네.” 돌아서는 철기의 가슴이 뿌듯했다. 성큼 대한민국의 해방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 1927년 9월 30일, O.S.S 요원들과 찍은 사진, 맨 앞줄 가운데가 이범석 장군.

장준하(張俊河) 죽음을 노래하다

이제 ‘죽으러가는 일’만 남았다. 1945년 8월 20일, 국내침투일 날이 결정된 것이다.

함경도: 김용주(金容株)
평안도: 강정선(康揁善)
황해도: 송면수(宋冕秀)
전라도: 박  훈(朴勳)
강  원: 김준엽(金俊燁)(후에 변동)

그 핵심지역 경인(京仁)책은 물론 장준하였다. “내가 지원한 것은 국내공작이다. 목표는 죽음이다. 죽음의 대가는 조국에 지불될 것이다. 나의 각오는 정수표(正手票)이다. 발행인은 장준하이고, 결재자는 누구도 아닌 조국이다”

“내 영혼 저 노을처럼 번지리
겨레의 가슴 마다 핏빛으로
내 영혼 영원히 헤엄치리
조국의 역사 속에 핏빛으로“

「제단(祭壇)」 2호는 아직 제본에 들기 전이었다. 장준하는 정성스럽게 등사원지를 꺼내 철기장군과의 회담을 기록해 깨끗이 등사하여 맨 뒷자리에 실었다. 보안에 문제되는 부분들이 많아 훗날의 기록에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은 그 자신의 가슴에 묻은 채....

5개 지구의 상륙침공작전 반구성이 완료되었고, 그 구체안까지 완성되었다. 이제 권명 전구사령부로부터 무전을 통한 출동명령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O.S.S 수료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 출동무전명령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준하에게는 아직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가 있다. 자신의 죽음이 미래의 조선 자손들에게 이상으로 남아야할 중천금(重千金)같은 과제이다. 자신의 유산(遺産)을 정리하는 일 말이다.

장준하(張俊河)의 유산

- 일곱 권의 잡지(등불 5권, 제단 2권)
- 일곱 권의 일기노트
- 백범의 친필 서신 1통

우선해야할 일은 도중에 중단한 채, 전선으로 달려야 할런지도 모르는 긴급 상황에 처해있다해도 숨이 있는 한 이 일은 계속해야 하는 일이다. 「제단」 제2호의 제본을 완성하는 일이다. 장준하의 돌베개는 그 마지막 때의 일을 이렇게 전해준다.

“나는 대장님과 헤어져 가벼운 몸으로 숙소로 돌아와 우선 「제단」 제 2호의 제본을 다시 손대기 시작했다. 눈물로서...”

장준하는 이 마지막 호에 그 정성을 배가했다.

“이 「제단」이 마지막 잡지가 될 것 같아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나는 나의 마지막 정성을 잡지 한 권 한 권에 쏟았다. 이것이 나의 젊음을 바칠 제단인 것만 같아 더욱 곱고 단정하게 만들어 남기고 싶었다.”

항일전선에서 마지막으로 발행한 잡지 일곱 권, 그리고 1944년 1월 20일 일군에 입대한 이후 임천, 중경, 토교를 거쳐 1945년 4월 29일부터 7월 30일 서안에서의 그 특수훈련을 수료하기까지의 일기 대학노트 7권, 거기 깊이 보존되고 있는 백범 김구 주석의 친필 사신 1통이 장준하가 생명을 불사르면서 남기려는 유산이었다.

이미 등불 1호와 일기 노트 한 권은 그의 가슴 속에 깊이 안긴 로-자(김희숙, 장준하의 아내)에게 우송한 터여서 여섯 권의 잡지, 여섯 권의 일기가 남아있었다. 이 유산은 이미 O.S.S 참여를 위해 토교를 떠날 때 잘 포장해 보관 중이었는데, 서안에 온 이후 써온 또 한 권의 일기가 더해져 다시 풀어 재포장을 해야 했다. 장준하는 이 하루를 종일토록 울어 살았다. 감격과 설움이, 뿌듯함과 억울함이, 광명과 흑암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겹겹이 꾸려 싼 유산을 다시 이전의 군용 백에 담아 침대 머리 켠에 놓았다. “민영주 씨에게 맡겨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고국에 전달해야지.” 다시 장준하에겐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로-자의 얼굴이 빛처럼 솟아오고 있었다.

다음날(1945. 8. 7), 백범 김구주석과 광복군사령관 이청천 장군이 O.S.S 본부를 찾아왔다. 침투작전에 임할 O.S.S 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대들은 결코 죽을 수 없는 사람들이요. 여러분들의 육체적 생명이 죽음을 당한다 해도 역사는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면류관을 씌워줄 것이요. 나는 여러분들이 실로 자랑스럽소. 내 인생 70평생에 이보다 더 감격스런 날은 없었소.” 굵은 테 안경을 벗어든 백범은 감격에 겨워 울며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철기가 단으로 올랐다. 백범은 하단했고 철기는 “한반도 상륙작전 및 서울입성”을 주제로 하는 여흥으로 순식간에 전체의 분위기를 일변시켰다. 박수와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백범과 이청천은 종남산 O.S.S 훈련장으로 시찰 차 떠났고, 다시 침공전야의 특수요원들에겐 대침묵(大沈黙)의 무거움이 덮쳐오고 있었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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