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안내양, 가혹한 노동과 외로운 저항

1975년 유신체제를 지탱하게 한 긴급조치 9호의 발령을 몇 달 앞둔 2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은 교통부 순시에서 “버스가 아침 출근시간에 승객을 짐짝 싣듯 태우고 더욱이 운전사나 안내양이 불친절한데다가 서비스조차 좋지 않으면 아침부터 기분이 불쾌하고 직장에서도 능률이 오르지 않을 뿐더러 쓸데없는 일에 신경질이 난다”면서 “안내양의 서비스가 국민의 마음을 명랑하게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출근길에 처음 만나는 여성이 버스안내원일 수도 있으니 그 여성이 방긋 웃으며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날 하루가 명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때 남로당 비밀당원으로 ‘좌익’에 속했던 박정희였지만 버스안내원이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몰랐던 것 같다.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그의 국가 건설 전망을 담은 책 『국가와 혁명과 나』를 냈다. 이 책에는 박정희의 자작시로 알려진 시 한 편이 담겨 있는데 내용 중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땀을 흘려라.
돌아가는 기계소리를
노래로 듣고
……
이등객차에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소녀의 고운 손은 미웠으되 버스안내원의 지친 얼굴은 예쁘지 않았던 것일까? 당시의 버스안내원은 미소는커녕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운 졸음 속에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1975년 서울시의 <안내원 1일 근로형태분석>(이병태, 『자동차여성노동자연구』)에는 버스안내원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18시간 27분으로 나와 있다. 식사시간은 3회 통틀어 30분이고, 일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을 자처한 박정희였지만 대통령 생활 10년 만에, 도시로 몰려난 농민의 딸들에게는 무관심해진 것 같다. 아니, 자신이 추진한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정책으로 수출이 늘어나고 GNP가 높아져갔지만, 그것이 버스안내원처럼 여성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수탈의 대가라는 것은 몰랐던 것 같다.

앞서 서울시의 실태조사에서 버스안내원들의 가장 큰 문제로 나타난 것은 밥을 제때 먹지 못한다는 것과 몸수색이었다. 밥도 제때 먹지 못할 정도의 격무였지만 월급은 쥐꼬리만했다. 1974년 버스안내원의 월급은 최고 15,000원이었다(동아일보 1974.05.25). 같은 해 짜장면 값이 200원이었으니 월급 받아 짜장면 75그릇을 사먹으면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또 다음 해인 1975년 도시근로자 최저생계비는 78,054원이었는데, 소비자 물가지수 기준으로 1974년의 1원은 2014년의 12.39원에 해당하므로 지금으로 치면 2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을 월급으로 받았던 것이다. 버스안내원의 적은 보수는 소위 ‘삥땅’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사회문제로도 대두됐다.

1970년 4월 28일 기독교계와 한국노사문제연구소 주최로 ‘삥땅에 관한 심포지움’이 열렸다. 버스안내원을 하고 있는 어느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보내온 편지 한 통이 계기가 됐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는 올해 19세인 여차장입니다. 저는 18시간이라는 긴 시간의 노동에 허덕이고 있습니다만 굳세게 살고 있습니다. 그 힘을 저는 일하는 날 얻어지는 300원씩의 부수입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희들 세계에서는 '삥땅'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매일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만 그 '삥땅'이 없으면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영원히 교회와 등져야 합니까? 저는 정말 죄인입니까?"


▲ 알몸수색에 항의하며 음독 자살한 버스안내양 기사.

버스안내원의 삥땅은 그녀들에 대한 몸수색, 그리고 수치심에 의한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 버스안내원의 자살 이유 대개가 ‘삥땅’과 ‘몸수색’이었다. 대부분의 여차장들이 하루 18시간의 운행을 마친 뒤, 몸수색을 당해야 했다. 이유는 버스비를 ‘삥땅’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삥땅 추궁에 할복을 하고(1976.1.07), 삥땅 누명을 쓰고 억울한 마음에 버스에서 뛰어내리고(1976.08.06), 알몸 수색을 당한 뒤 승객이 많은 버스 안에서 음독자살하기도 했다(1978.10.20).

자살이 아니더라도 죽는 일이 많았다. 버스안내원은 그 자체로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만원버스의 시절,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말이 통용됐다. 문을 열어둔 채 버스가 출발한다는 말이었고, 문을 연 채 차가 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는 말이다.

개문발차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버스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는 둘 중 하나는 버스안내원이었다. 가까스로 버스 난간에 매달려 가다 승객에 떠밀려 추락사하거나, 정차 전에 문 열다 떨어져 죽거나, 노후한 버스의 발판이 떨어지는 바람에 추락사했다. 심지어 서울 구경도 제대로 못해 본 입사 첫날, 실습하다 떨어져 죽기도 했다.

스스로 죽거나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버스안내원들을 다른 여성노동자들보다 일찍 집단행동으로 내몰았다. 버스안내원들은 이미 1963년에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으며(1963.11.16), 1986년 버스안내원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몸수색과 저임금에 항의해 크고 작은 집단행동을 이어왔다.

똑같이 농촌에서 상경해 도시 노동자로 착취를 당했더라도 식모의 경우 그 저항이 사적 복수나 소극적 자살에 머물렀고, 여공의 경우에는 훗날에 가서야 집단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안내원들의 집단적 저항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됐지만 남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 건설에서 배제되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면서 그녀들만의 외로운 투쟁에 머물곤 했다.

임미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ecumenian@webmas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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