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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의 새로운 항해<이원돈 칼럼 - 예수 르네상스와 마을 르네상스>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 승인 2015.07.10 20:02

인류 역사상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외침 중에 하나는 서구의 르네상스 운동에서 일어났다. 이 르네상스는 문화 개혁만이 아닌 인간개혁, 사회개혁, 자연개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전통 종교가 강요한 정신의 억압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탐구 및 비판의식을 자극하고, 인간 사고와 창의력의 가능성에 새로운 자신감을 부여 했다.

   
 
그래서 르네상스인은 한없는 모색과 탐구의 자유정신을 갖고, 르네상스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으며, 어떤 고정된 위치나 자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첫째로, 이 자유는 인간의 이성을 해방시켜 우선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시작된다. 신대륙의 탐험, 종이, 인쇄술, 항해술, 화약 등 신기술이 눈부시게 발전을 한다. 둘째로, 이 르네상스의 자유는 자치 운동으로 연결되면서 메디치가를 비롯한 유력 가문의 독재정치를 비판하고 시민 자치의 도시국가를 옹호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정치사상은 정치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민 자치의 유토피아를 추구하게 되면서 르네상스 유토피아 사상의 정점을 보여준다. 셋째로, 당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무엇보다 부패한 교회에 저항한다. 그리고 이 시기 성서가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종교 개혁까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르네상스의 꽃은 바로 예술과 바로 미술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의 천재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박홍규 교수님은 그들은 바로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동네사람들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는 바로 이탈리아의 피렌체라는 도시에서 시작되는데, 그 문화 현상에서 주목할 것은 인구 한 20만 명되는 지금으로 보면 한 마을이나 도시에 자유가 주어지자 거기에 천재들이 탄생하기 시작하고, 거기서  전 인류의 문예부흥의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렌체라는 도시에 바로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했을 때, 이 작고 자유로운 도시는 활기찬 자치의 도시, 저마다 개성을 갖는 수많은 천재들을 탄생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말속에서 오늘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정신 가운데 다시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어마 어마한 인류의 진보를 가져온 르네상스가 바로 한마을에 자유가 주어졌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오늘 한국 사회에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작하기 시작하자 세계 최고의 문화적 역량의 잠재력을 보이면서 한국 사회에서 바로 문화 르네상스 즉, 한류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서 오늘의 우리 시대를 르네상스적 의미로 다시 읽어 본다면, 오늘 이 시대는 예수 르네상스와 마을 르네상스의 시대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이 시대에 이 예수 르네상스와 마을 르네상스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는 성서의 예수님의 항해 기사에서 유의해서 볼 것이 있겠다.

예수님은 마을 선교를 하던 중 종종 갈릴리 호수길을 횡단하여 이방 땅으로 건너가는 횡단 여행을 감행하셨다(마가 4; 35-39). 갈릴리의 호수 저편은 저 이방인이 살고 있는 게라사, 그리고 두로, 시돈 등 이방 땅으로 친숙한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 아닌 바로 낯선 땅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그리로 가자고 재촉하고 계신 것이다. 이처럼 바다를 건너 이방 땅으로 넘어갈 때 거기에는 반드시 풍랑을 만난다는 것이다. 성서는 그 풍랑이 배가 뒤집어질 정도라고 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포와 당황함을 주는 이러한 횡단 여행을 시도하셨을까? 예수와 제자들의 갈릴리 항해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이방 땅으로의 선교 여행은 제자들의 불안과 공포로 자주 좌초 위기에 놓였던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방 땅에 복음과 선교의 문을 열려고 하지만 제자들은 불신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이 이방선교의 뱃길을 잘 열지 못한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항해 여행에서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 또다시 계속 부딪혔는데, 이것은 그 배안에서의 제자들의 고립주의와 폐쇄성이 바로 예수님의 열린 항해와 부딪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이방을 향한 횡단 여행의 의미란 무엇일까? 예수님의 느닷없는 이방 땅으로의 항해 선언과 제자들을 당황케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횡단여행의 핵심은 예수님은 당시 제자들과 마을 공동체들의 안주성과 정태성과 폐쇄성을 휘젓고 흔들고, 이방 땅에서 새 길을 찾기 위한 의도된 방향 흔들기와 길 잃기의 시도가 바로 이 횡단 여행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을 안으로 정태화 되거나 고립되는 것의 위험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이 정태적이고 고립된 마을을 역동화 시키기 위하여 중간, 중간 이 횡단 항해라는 여행 수업을 넣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예수님의 갈릴리 마을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은
1. 안으로는 밖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영입 환대하셔서 새로운 에너지를 순환시키셨고,
2. 밖으로는 새로운 땅으로 모험을 떠나는 일이 끊임없이 일으키셔서
3, 공동체가 정체되거나 부패되지 않도록 마을 공동체를 역동화 시키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의 배후에는 어떠한 믿음이 있었을까? 그 배후에는 이 풍파를 잠잠케 하실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믿음의 힘이 있으셨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횡단 선교로 공동체를 안팎으로 뒤집고 휘저어 새롭게 하신 이유는 그 배후 예수님께서 그 풍파를 잠잠케 하실 믿음의 힘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풍랑의 변화 후에 우리가 그 풍파를 잠잠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저 건너 새로운 땅을 향하여 횡단 항해를 할 수 있어야 할 줄 믿는다. 그러기에 건강한 공동체는 예수님처럼 늘 밖으로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고, 안으로는 새로운 에너지를 흡수하여 자기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공동체 안에 소통, 교통, 개혁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믿음의 힘으로 자신을 늘 새롭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힘이 바로 믿음인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한 예수 르네상스와 마을 르네상스를 원한다면 우리는 낯선 곳으로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자기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끊임없이 하여 안으로 자페되어 가는 마을과 교회 공동체 안에 소통, 교통, 개혁의 공간을 확보하는 새로운 횡단 여행의 준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wewinw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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