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수유리 대학원시절 이야기이다. 바울을 강의하던 K교수님은 수업 도중 황급히 강의실을 나갔다 오시더니 사택 연탄불을 갈고 왔다고 하신다. 실상은 탄불을 꺼뜨리지 않았다는 것보다 사모님의 질책을 면했다는 것이 교수님께 더 큰 위안이며 기쁨이었으리라. 나른한 강의가 웃음바다가 되면서 졸음은 달아나고 우리는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연탄불 사택에 기거하시는 스승이나, 검정 물들인 군복바지를 입고 다니는 제자들이나 가난했지만 모두 행복했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전설 같은 미담도 있다. 몇몇 교수님은 명절날 고향 내려갈 여비가 없는 제자들에게 가난한 당신의 주머니를 털어 적지 않은 쌈짓돈을 손에 쥐어 주곤 했었단다. 그렇게 한신의 교정에는 가르침과 배움 이상의 그 무엇이 살아 존재했다. 관제가 평가하는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는 정신과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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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의 정신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내가 가난해짐으로서 세상을 부요하게 하는 것이다. 그 가난함의 정신이 비틀어진 역사를 바로잡고자 고난의 길을 걷게 했고, 아픔과 고통의 눈물이 있는 현장을 찾아가 저들의 삶을 껴안는 위로의 연대가 있게 했다. 종합대학이 되어서도 한신의 정신은 유효하다. 신학은 물론이거니와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응용학문 모두가 가난함이란 정신적 사유 위에 세워진다.
그런데 최근 가난함의 미학이 위기에 처했다.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말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오는 2023년에는 대학모집정원보다 고교졸업생이 16만명 줄어든다. 산술적으로는 국내 400개 대학 가운데 100개 이상의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최상위권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평균적으로 현재의 입학정원을 3분의 1로 감축해야 하는 상황인데, 물론 퇴출명단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교육부는 2023년까지 대학입학정원을 단계적으로 3차에 걸쳐 4만명(2015-2017학년), 5만명(2018-2020학년) 그리고 7만명(2021-2023학년)으로 줄인다는 계획 아래 1차 구조조정을 위한 현장방문평가를 금년 7월중 실시하고 그 결과는 8월에 발표한다고 한다.
이 절박한 현실 속에서 75년 풍상의 세월을 이겨낸 임마누엘 동산과 양산리 오월광장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시 ‘가난함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 자유, 사랑이라는 건학이념은 자신을 버리고 비우는 이타적 행위 속에서 빛을 발한다. 민주와 진보라는 가치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적 기반 위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의 위기극복 방식은 달라야 한다. 학교 내에는 ‘4자 협의회’라는 논의 구조가 있고, 밖으로는 3만 동문과 1500기장교회와 30만 성도들이 있다. 이들이 사랑하는 모교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저 이사야의 예언처럼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대로가 열리는 역사’(이사야 43:19)가 일어날 것이다.
평소 애송하는 시 한편을 올리면서 위기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고자 한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성수 목사 hans7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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