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뭄 끝에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은 눈치다
그래도 우산을 털며 지하계단으로 내려서는 교인들은 걱정이다
비는 많이 오더라도 한꺼번에 쏟아지진 말아라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집중호우 때 교회 문 앞 하수구가 역류하는 바람에
지하로 물이 넘쳐 교회가 잠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기도 덕분인가 비는 차분하게 자분자분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연진이가 대표기도를 했다
3년 전 내가 교회학교 교사로 고등학교 반사일 때
유일한 우리 반 학생이었다
교회 나오는 고등학생은 연진이 혼자여서
분반공부 할 땐 방 없다 핑계로 둘이 찻집에 가서
커피 마시면서 노닥거리곤 했다
그렇게 보낸 1년이 어제 같은데 벌써 대학생이 되어
대예배에 대표기도를 하는구나
성가대 기둥이신 부모님을 닮아 노래를 아주 잘 불러
대중음악에 꿈을 두고 열심히도 공부하더니
아직도 그 꿈 버리지 않았겠지?
 
예배 끝나고 맛있는 점심밥 먹고
석 달에 한 번하는 제직회의를 했다
수입과 지출이 얼추 맞아 교인들은 안도의 숨을 쉬는데
그래도 1/10은 더 낮고 그늘진 곳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더 쪼갤 수도 없는 적은 숫자의 액수를 보며
교인들은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지상에는 가난의 축복처럼 비가 내리고
집사님이 가져다 준 노란 세월호 열쇠고리가
손바닥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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