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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라<김명수 칼럼>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5.07.15 11:21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3.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요14:1-3;새번역)

"Do not let your heart be troubled; believe in God, believe also in Me. 2."In My Father's house are many dwelling places;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for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3."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again and receive you to Myself, that where I am, there you may be also.(John14:1-3; NASB)

예수께서 서른 살 쯤 되어서입니다. 그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갈릴리 농촌마을에 돌아다니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셨어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의 천국복음 소식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어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열두명의 제자들을 뽑아 특별히 훈련시키고, 그들과 함께 갈릴리 전역을 돌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는데요. 예수님의 천국복음 소식이 유대 전 지역에 퍼지자, 전국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요. 특히 예수께서 병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천국복음 전파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 주변으로 몰려들자, 바리새인들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어요. 하루는 바리새인들이 트집을 잡으려고 예수께 와서 물었어요. “우리 유대는 지금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는데, 로마에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않아야 합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바리새인을 향하여 동전 한 닢 가지고 있으면 내 보이라고 했습니다. 데나리온 동전 한 닢을 내놓자, 예수께서 “이 동전에는 누구 그림이 새겨져 있느냐?”하고 물으셨어요. “로마 황제 디베리우스의 얼굴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황제에 속한 것은 황제에게 바치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라.” 

이 말을 듣자마자 바리새인들은 곧장 로마관청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예수를 고발했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선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로마관청은 예수를 체포했어요. 예수를 그냥 놓아두었다가는,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세금 거부운동을 벌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세금납부 반대운동의 싹을 아예 근절하기 위하여 예수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빌라도는 예수에게 로마의 국가보안법을 어긴 죄를 뒤집어씌워 사형언도를 내렸던 것이지요.

그러자 가정을 버리고 3년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예수를 따라 나섰던 제자들 사이에 걱정근심이 태산같이 많았습니다. 예수가 정권을 잡으면, 한 자리 얻어 팔자를 고쳐볼까 은근히 기대하면서 모든 것 다 팽개치고 예수를 따라다녔는데요. 예수의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은 슬픔과 절망 속에 빠져 있었어요.

   
 
처형되기 전날 밤, 예수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어요. “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3.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걱정근심에 싸여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무슨 유언을 남기셨나요? “걱정하지 말라”는 유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유언입니다.”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걱정한다고 해서 상황이 변할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걱정을 없애주는 비경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우리로 하여금 온갖 걱정근심에서 해방시켜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세상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쉬지 않고 우주만물을 굴리고 계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토기의 운명은 전적으로 토기를 만든 장인에게 달려있지요. 우주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삼라만상입니다. 온갖 피조물의 생사生死는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일일이 세고 계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지요. 내게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 신앙이지요. 나 개인의 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서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이 하나님 신앙의 요체입니다.

빌라도의 손에 의해서 예수는 죽임을 당하지만, 그런 일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인간이 죽으면 그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반드시 우리를 세상에 보낸 창조주 아버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와서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은데, 예수님은 너희가 머물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거처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그곳으로 데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아버지께로 회귀回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창조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영원한 안식처인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지요. 그러니 죽는다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걱정하게 되나요? 죽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지無知하기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에요.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나요? 무지無知를 깨쳐야 해요.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수 천 년 동안 어둠에 쌓인 동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도통 알 수 없죠. 어둡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데, 전깃불을 켜는 순간, 동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 눈에 다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빛이 밝으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지요. 하나님 신앙이 곧 동굴을 밝히는 빛입니다. 예수님 신앙이 곧 어둔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하나님 신앙과 예수님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무지無知라는 어둠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온갖 걱정은 어디에서 오나요? 무지無知에서 옵니다. 모르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지요.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지無知에서 벗어나면 되지요. 사물을 바르게 알면 됩니다. 죽음이 왜 두려운가요? 죽음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이지요. 죽음에 대해 바로 알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죽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왜 걱정근심에 떨고 있었나요? 죽음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이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무어라고 하나요? 기우杞憂라고 합니다.

옛날 중국의 기杞 나라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사람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새우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도 먹지 못하였습니다.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니 이 사람이 쇠꼬챙이처럼 말랐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이 와서 이 사람을 위로했습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필 시에 무슨 걱정근심이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걱정이 있기에,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오? 

기杞 나라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만약 하늘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되겠소. 문득 이런 생각이 미치니, 밤에 잠이 오지 않고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지 않소이다.”
그러자 이웃이 말했어요. “예끼, 이 사람. 걱정도 팔자지. 저렇게 텅 비어있는 것이 하늘인데, 어떻게 하늘이 무너질 수 있단 말이오?”

기杞 나라 사람이 말을 받았습니다. “텅 빈 하늘에 저렇게 해와 달과 별이 달려있지 않소? 저것들이 떨어지면 세상이 어찌 남아날 수 있겠소? 그래서 걱정이 많아 잠을 잘 수 없다오.” 

이웃이 말했습니다. “해나 달, 별은 공기 속에 빛나고 있는 물질이요. 그것들이 떨어져도 우리가 부딪혀 죽지는 않으니 걱정 마시오.” 

기杞 나라 사람이 말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땅은 어찌되겠소? 땅이 무너지면 온 세상이 아수라장이 될 터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려...”

그러자 이웃이 말했습니다. “흙이 쌓여서 땅이 되었는데요. 흙이 이렇게 사방에 꽉 차 있는데 어찌 땅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오? 우리가 아무리 뛰고 밟고 다니며 살아도 땅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모르시오?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요?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시오.”

기杞 나라 사람의 걱정이 무엇인가요? 하늘이 무너지면 어찌하나? 땅이 꺼지면 어찌하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한 것이지요. 그는 하늘에 대해 무지無知했습니다. 땅에 대해 무지無知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한 것이지요.

무지無知에서 행방되어 사물의 본성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앎에서 옵니다. 바른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믿음이지요. 바르게 믿어야 바로 알게 됩니다. 바로 알아야 바로 믿게 됩니다. 모든 앎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지요. 예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예수에 대해 바른 믿음이 온갖 무지無知에서 해방되는 비결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을 때, 내게 일어나는 생사화복이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을 때, 우리는 근심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을 겪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걱정하거나 근심에 쌓이게 됩니다. 헌데,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을 가만히 살펴보면요. 걱정하는 것들 중 상당수가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들임을 알 수 있어요. 걱정한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데, 그런 일들을 가지고 공연히 걱정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지요. 무지無知 때문이지요. 

사람이 산다는 것은 현재를 사는 것인데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입니다. 한 시간 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서 앞일을 가지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에게 가까운 친구 목사가 있었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요, 아침마다 나와 같이 자전거를 탔어요. 평소에 아주 건강했습니다. 헌데, 이 친구의 장인이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어요. 앞으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이 친구는 장인이 입원하고 있는 복음병원에 갔어요. 부산은 전쟁 때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길이 좁고 꼬불꼬불하여 교통이 불편한 곳이지요. 거기에다가 차도 많이 다니지요. 제 친구는 장인을 병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콘테이너 차량과 부딪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어요. 자기가 1시간 뒤에 죽을 줄 모르고, 6개월 뒤에 죽을 장인 문병 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지요. 이게 인생입니다.

한 시간 뒤, 하루 뒤, 한 달 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살이지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4가지 모르는 것이 있어요. 첫째, 어디서 온지를 모릅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을 보면 어디에서 온 것은 분명한데요. 그곳이 어딘지 모릅니다. 둘째,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요. 한번 태어나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요. 셋째로, 왜 살아야하는지 모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해답을 모르기 때문에 허무를 느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넷째, 언제 갈지 모르고 삽니다. 가는 것은 분명한데 그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언제 갈지 모르고, 왜 사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를 놓고 보면, 사실 대책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요.

산다는 것은 현재입니다. 과거를 사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지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을 뿐이지요. 헌데 우리는 어떤가요? 현재를 사는데, 과거의 일에 집착하여 괴로워하거나 후회하기도 하지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은 ‘여기’있는데요, 생각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은 눈뜬 맹인인 경우가 많지요. 차를 운전하면서 생각은 딴 데 가 있는 사람인 경우,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크지요. 사는 것은 현재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생각은 항상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사람 중에 망상가가 많아요. 몸이 있는 곳에 생각이 있어야 해요. 생각이 있는 곳에 몸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과 몸은 떨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항상 같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지나친 걱정은 몸을 해칩니다. 특히 심장과 폐에 치명적이지요. 걱정이 많은 사람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고요. 살이 안찌고 허약체질인 사람들 중에 근심걱정이 많이 하는 사람이 많지요. 사람이 생각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허나, 생각은 단순하게 해야 합니다. 복잡한 생각이나 잡다한 생각에 매이게 되면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그만큼 신원이 고달프게 되지요. 

하루 세 끼 굶지 않는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하고요.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집 한 칸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법정스님이 말씀한 무소유의 삶이지요. 그 나머지는 다 욕심입니다. 바라고 구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걱정근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바라고 구하는 마음 내려놓고, 지금 여기 있는 것으로써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지족知足의 삶을 사시길 빕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kmsi@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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