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1970년~1979년)~(4)

3) <서울제일교회> 대학생회
- 사회과학 공부하는 교회 대학생들(1)

위수령(衛戍令)이 내려져 서울 시내 10개 대학의 각종 서클이 해체되고(10월 15일), 각 대학 시위주동학생(주로 학생회 간부 및 대의원들) 174명이 제적(除籍)되었으며( 10월 17일), 그들 중 30명이 강제 입영되었다.(10월 26일)

그리고 당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산하의 <민주수호전국학생청년연맹> 위원장인 심재권(<새정련> 국회의원, 상학과 3년), 장기표 (<전태일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당시 법학과 3년), 조영래(작고, 변호사, 「전태일평전」 저자, 당시 사법연수원 1년), 이신범(당시 「자유의 종」 편집인, 법학과 4년) 등 4명이 ‘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11월 12일)

이와 같이 각 대학의 학생대표들을 학생대중으로부터 격리시키고, 무장군인들을 학내에 투입시키는(10월 12일 보안사의 고대 침입) 등, 가중(加重)된 박정희 독재정권의 대학 내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말미암아, 전국의 대학생들의 시위는 점점 약화(弱化)되어갔다.

그런 분위기는 1972년 새 학기에 들어서도 회복될 기미(氣味)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해 5월 어느 날, 나병식(작고, <도서출판 풀빛> 대표, 당시 국사학과 3년)이 도서관으로 나를 찾아 왔다.

그는 이념서클들이 해산(解散)된 후, 그동안 <후사연>의 사정(事情)을 전해주었다. ‘서울대생내란예비음모사건’으로 구속된 심재권 회장 말고도, 상대 김상곤 회원(당시 상대학생회장, 경영학과 4년), 이호웅 회원(당시 문리대 학생 회장, 정치학과 4년), 김문수 회원(상대 경제학과 2년)이 제적(除籍)되고 이들 중 김상곤, 이호웅은 강제 입영, 김문수(전 <경기도> 지사, 당시 경제학과 3년)는 하방(下方, 신분을 감추고 노동 또는 빈민현장에 들어가는 것)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리대의 강철구 회원(국사학과 3년)과 진홍순 회원(국사학과 3년)은 그해에 새로 결성된 <가면극 연구회> 회원으로서 탈춤 연습으로 여념(餘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심 끝에 선배의 도움으로 을지로 5가에 위치한 <서울제일교회> 회의실을 빌어 <후사연> 회원들 중 일부가 일요일이면 모여 세미나를 계속하고 있으니 필자도 동참해주기를 독려(督勵)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나병식의 독려에 따라 1972년 5월 어느 일요일, <서울제일교회>를 찾아가게 되었다.

중구 오장동에 있는 중부시장 부근에 자리 잡은 <서울제일교회>는 건축 도중 중단된, 볼썽사나운 4층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1층과 3층, 4층은 사무실들이고, 2층은 입구에서 안쪽의 3분의 2정도를 교회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3분의 1의 절반(折半)은 교회 유치원으로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을 또 나누어 그 반은 목회실 겸 교회 사무실로, 그리고 그 사무실로 통하는 앞부분 절반은 회의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회의실은 주일 오전 예배시작 전에는 성가대 연습실로 사용되거나, 각종 회의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후사연>의 망명(亡命) 집단(集團)들은 주일예배가 끝난 후 오후 2시에, 10여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이 사무실을 빌어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참석자 수가 증가한 후에는 유치원실에서 유치원생용 작은 의자에 앉아 모임을 했다.

내가 출석한 그날에는 나병식 외에, 강영원(전<대우 인터내셔날> 사장, 문리대), 황인성(전<청와대> 시민사회 수석, 당시 문리대), 임상택(전<현대 모비스> 근무, 중국어강사, 당시 상대)등 1970년 이후 드문드문 대면(對面)했거나 전혀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후사연> 동지들을 포함하여 9~10명이 암실(暗室)과 같은 비좁은 그 회의실에서 나를 환영해주다.

▲ 남산부활절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박형규 목사.(왼쪽 한승헌 변호사, 가운데 고 조정하 사모)

그 자리에는 필자의 생의 전환(轉換)시킨 두 분의 목사님도 함께 하고 계셨다. 그중 한 분은 그때로부터 40여년의 필자의 삶을 움직여 온 “나의 신앙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박형규 목사님(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당시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이셨다.

박 목사님은 <CBS> 상무로 재임 중, 1971년 4월에 결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사무총장으로 반정부·민주화 운동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CBS에서 강제 사직을 당하였다.

그 후 설립자인 함흥 출신 이기병 목사가, 자신을 따르던 월남(越南)출신 신자 30여명과 4층짜리 미완성 콘크리트 건물, 그리고 상당한 액수의 빚을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대책(對策)없는 <서울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박형규 목사님이 부임(赴任)하여, 불과 1년이 채 안된 때였다.

그분은 6·25 전 <부산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경에 주둔하던 미8군 통역장교로 제대(除隊)했고, <동경신학대학>을 거쳐 미국<유니온 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는 동안 1960년대에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총무와 <대한기독교서회>의 월간 <기독교사상> 주간(主幹)을 역임한 바가 있던 박 목사님은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 경제학, 역사 등 사회과학 전반에 능통하신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목사님은 70년대 이후 민중 의식화 운동, 민주화 운동에 앞장을 섰고, 그 때문에 5차례의 옥고(獄苦)를 치르신 명실상부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대부(代父)이시다.

그분은 필자에게, 하나님은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라”고 하시고 인간을 속박(束縛)하고 금지(禁止)하는 분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며 나의 목덜미를 잡아 그 역사의 현장(現場)으로 끌어가시는 역사적(歷史的)이고 역동적(力動的)인 분”이시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셨다. 필자는 1994년 2월에 제출한 <한국신학대학>의 편입시험을 위한 신앙고백서에 그런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편입을 하고자 한다는 고백하였다.

장남(長男)인 박종렬(목사<KSCF> 이사장, 당시 서울대 대학원 재학)의 친구 유초하(<충북대>교수, 당시 서울대 대학원 2년)의 소개를 받아 나병식 등 우리들 <후사연>회원들을 위해 교회에 장소를 마련해 주신 박형규 목사님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소문을 전해 듣고 <서울제일교회>를 찾아 온 여러 대학 운동권 학생들의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지도교수 역할을 하였다. 세미나를 마친 후에도 저녁예배시간이 될 때까지 우리는 부근 찻집에 둘러 앉아, 박형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그의 사상과 삶을 전수(傳受)받았다.

또한 지난 40여 년 동안, 필자를 이끌어주고 ‘실천(實踐)의 멘토’가 되어준 권호경 목사님(전 <KNCC> 총무, <CBS> 사장, 당시 같은 교회 전도사)도 그 자리에서 만났다.

권 목사님은 70년대에는 <수도권> 간사(幹事)로, 1980년대 전반에는, <사선>의 간사로, 후반에는 <민주동지회> 동경자료센터 관장으로, 그리고 1990년대는 <KNCC>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 와서는 <기사연> 실무자로, 필자의 고비고비 때마다 실천의 장으로 필자를 이끌어 준 큰 형님이었다.

이후, 때로는 참가한 <후사연> 회원들의 독려 때문에, 때로는 박형규 목사님의 명망(名望)과 인품(人品) 때문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운동권 학생들이 동참(同參)하기 시작하였다.

<후사연>의 박원표(당시 법대 3년), 김희곤(개인사업, 당시 공대 3년), 최준영(전<부산양서조합> 이사, 당시 공대 2년), 이영우 (공대 2년) 등 서울공대의 <산사연> 회원들과, 신혜수(<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당시 이대 3년), 김은혜(전<부천 아이쿱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당시 이대 3년) 등 이화여대 <새얼> 회원들, 차옥숭(<전주장신대> 교수, 당시 이대 3년), 박혜숙(작고, <민중약국> 경영, 당시 이대 2년) 등 이화여대 <파워> 회원 등이 연이어 동참(同參)하였다.

우리는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 조용범 교수의 “후진국 경제론”, 유인호 “민족경제론”, 등을 공부하여, 민족과 민중의 아픈 현실을 알게 되었고, 안병무 교수의 “역사와 증언” 등을 공부하면서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하게 되었다.

필자(筆者)를 비롯하여 김은혜, 차옥숭 등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고 성가대원으로 활동도 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진철상(당시 연대 4년), 이옥혜(당시 연대 3년), 조수영(당시 연대 2년) 등 <서울제일교회>의 기존(旣存) 청년들도 합세(合勢)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연말에는 자연스럽게 정식 대학생회로 발족(發足)할 수 있게 되었고, 필자는 <후사연> 회원과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초대 회장에 선임(選任)되었다.

그해 성탄절에 우리는 노사분쟁을 다룬 사회극 “어느 노동자의 크리스마스”를 공연하기도 하였다. 이 시도는 성탄절이면 으레 예수의 탄생을 다룬 성극(聖劇)에 국한되어있던 한국교회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으며, 노사분쟁의 문제도 아직은 사회적 쟁점이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이 사회극에 반발을 하던 기존 교인들마저도, 노동자들을 핍박하는 남 부장이라는 악역을 맡았던 나에게 곱지 않은 눈총을 보내어 <서울제일교회>를 출석하던 기간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필자 소개> 김경남 목사 1949년 (66세) 전남 완도 생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법대, 한국신학대학 졸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 <한국민주화기독교민주동지회> 동경자료센터 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무주<푸른꿈고등학교> 교장,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본부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김경남 목사  gisoo9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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