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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민통선안에서 민통선평화교회를 개척해 18년간 목회를 해온 이적 목사의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 <민통선 예수>를 매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나의 수배는 거의 의도적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군사정부는 오기택 소령을 내세워 나를 고발토록 한 후 나의 손과 발, 입을 묶어두자는 의도가 명백하였다. 겉으로는 한 개인이 고발한 평범한 사건임을 국민에게 보여 주면서 군부는 이사건과 연관이 없는 듯 교묘한 수법을 내세우고 있었다.
내가 검찰로부터 석방된 후 정확히 3일 뒤에 다시 출두 요구서가 발부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김대중 총재실에 자문을 구하였다. 그리고 기타 재야 쪽과 문단 쪽 어른들에게도 자문을 구하였다. 출두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나 모두의 의견은 출두를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즉 시기를 저울질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가게 되면 삼청의 증거가 전부 인멸 된 현재로서는 100%당하게 될 것이라는 게 주변의 충고였다. 노태우 정권도 지나가고 그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 쯤 출석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들을 하였다. 군사정권 관계자들도 삼청의 대표작가가 구속이 되어서 법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증언하고 그것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하면 자신들에게도 별 이득이 안 될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정보기관은 나를 체포할 생각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삼청의 나팔수인 작가를 입만 묶어두면 그만이라는 의도가 충분히 점쳐 졌다. 왜냐하면 정보 기관원들이 내가 어디에서 강연을 하고 어디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훤히 꿰고 있다는 사실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파출소에서 우리 집으로 임검을 와도 내 신이 있음을 보고도, 어떨 때는 나와 정면으로 마주쳐도 경찰이 다녀갔다는 싸인만 받은 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의도대로 집에만 눌려 있지를 않았다. 끊임없이 집필 활동을 통해서 민주화를 외쳤고 군사정권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또 시를 통해서도 군인정권의 부당함을 독자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때 나온 책들이 시집<바스티유의 땅> (88년 도서출판 한겨레 )과 장편 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89년 전예원)였다. 이땅의 지배세력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시집이었고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는 청송감호소를 최초로 고발한 책이었다. 청송감호소는 책이 말자 국정감사가 터지기도 했다. 그해 봄 청송감호소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을 당했다. 10여 년만에 인권 사각지대의 현장이 국민들에게 공개 된 것이다. 나는 청송감호소에 숨어들다 시피 하여 면회장 바깥에서 사진촬영을 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청송감호소의 일부의 모습이었지만 청송을 고발하는 최초의 사진을 한국기자협회보에 글과 함께 게재하기도 하였다. 비록 수배를 받고 있기는 하였지만 나의 활동은 예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할게 없었다. 그들이 나의 입을 묶으려 하면 할수록 나는 더 치열하게 싸울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삼청학살사건은 묻힐 것이고 또 이 사건을 통하여 이 땅에 민주주의를 앞당기기는 구실을 만듦과 동시에 정권까지도 바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므로 개인의 수배에서 멈추어야 할 성질의 것이 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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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남녘 - 7월 창간호(권경현 편 월간 남녘사). | ||
요산 김정한 선생은 일제 때부터 참여문학의 거두로 활동을 하였고 소설가 윤정규 선생, 시인 임수생 부산일보기자, 평론가 민병욱 교수(당시는 교사), 류명선 시인, 평론가 남송우 교수, 조해훈 시인, 이 정도가 부산 경남 지방의 문학적 양심을 대표하고 있을 수준이었다. 대통령 직선제 호헌철폐를 요구하는 서명자가 15명이 안되었으니 그 지역의 정서를 읽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었다. 대개가 낭만파 문학을 선호하거나 모더니즘 계열의 문학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나 서울은 달랐다. 서울은 고은, 신경림, 박태순, 양성우, 김지하, 채광석, 김창규, 도종환, 정규화, 강형철, 이승철, 박선욱 이경자 ,윤정모 ,차정미, 이소리 , 정수리 ,공광규 등 우리 또래의 문인들이 선배문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왕성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이나마 시대를 고민하는 문학을 하였기에 후일 민주화를 이룬 조국이 왔을 때는 문단이 체면을 살릴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었다.
나는 김순옥선생을 만났다. 김순옥 선생은 몇 년 사이에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애틋했지만 우리가 문학의 범주를 벗어나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가까운 사이로는 발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투사로 변신되어 있었고 그녀는 순수문학의 가날픈 여인으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항상 인연의 끈이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감옥을 가거나 그녀가 유학을 가거나 바깥에서 함께 만날 젊은 날의 시간이 전혀 고려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시대적 기형아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젊음을 소비하며 청년시절의 낭만을 구가 할 시간적 여유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순옥 과의 만남이 10년이 넘었을 무렵 어느 날 김순옥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방의 어느 대학교수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녀의 짧은 편지는 더 이상 우리가 애틋한 감정 따위나 갖고 만날 그런 인연에서 탈출하는 작은 통보이기도 했다. 이후 몇 년 후 들려온 소문으로는 웬일인지 결혼 초기에 신혼생활에 실패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즉 이혼을 했다는 소식인 것이다. 그 뒤 비 오는 날 그녀를 한번 만났지만 피차 옛날의 애틋한 감정으로 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운 사이가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문학 활동도 완전히 접고 있었으며 어느새 직장생활에 의탁하여 살아가는 일상적인 여자로 변하여 있었다. 그리고 연하의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며 세상을 적당히 살아가려는 모습이 그녀의 행동에서 묻어났다. 조신한 요조 숙녀였던 옛 모습도 문학사상을 섭렵하려던 옛날의 그 아름다운 눈매도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세월의 궁상만 그녀의 눈가에 일렁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느날 이었다.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중년의 기업인 한사람이 나를 찾아와 다짜고짜로 잡지를 만들고 싶으니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돈은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짧게 말했다. 그리고 시대정신이 없는 잡지를 만들것이면 처음부터 하나 보태는 잡지는 만들지 말라는 말도 보탰다. 그 부분에서는 자신도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여간 나는 그 분을 지켜보면서 잡지를 할수 있는 분인가를 탐색했는데 알고보니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 분과 한동안 잡지 만드는 일에 충실했다. 서울에서 시 쓰는 후배 김윤환을 불러내어 함께 편집일을 했다. 우리는 진보잡지를 원했다. 당시 서울에서는 박노해 시인을 배출한 <노동해방문학>을 김사인 시인이 만들고 있었다. 우리도 지방에서 그에 버금가는 시사 잡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특집에 단재 신채호를 조명했고, 2호에는 노태우정권의 껍질을 벗긴다는 강한 제목을 붙여 시중에 내보냈다. 일간지 한겨레신문에 5단통광고를 실어 책을 선전하기도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주변의 반응들이 왔다. 책이 좋다는 단순한 평도 있었고 너무 세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진보 진영에서는 좋은 책이니 오랫동안 발간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특히 군부정권의 허와 실을 너무 깊숙하게 다뤘으므로 정보당국에서 그냥 보고만 있을 리가 없을 터였다. 얼마 있지 않아 책을 3호 째 발간을 하고나서 그 신호가 왔다. 강정량 회장이 아무래도 분위기가 수상하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책을 내는 사무실을 두고 있었으므로 울산 기관장들이 우리 때문에 비상회의를 열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당분간 문을 닫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얼마 후 박노해 사노맹 사건이 터졌고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엮여 줄줄이 끌려갔다.
군사정권은 정권의 반대자들을 분류해놓았다가 한 가지 사건을 조작하면 전부 그 사건 관련자로 끌여 들여 구속을 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1개월 전에 미리 문을 닫고 잠적을 했다. 덕분에 사농맹 사건에서는 제외되는 행운을 얻었다.
억울하게 끌려가 죄 없이 감옥살이를 하는 비실용주의보다 실용주의를 택하겠다는 강 회장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그 후 민족자본가 강정량 회장이 교통사고로 죽고 난 뒤 그 책은 복간 되지 못했다. 남녘사건을 겪으면서 창간기념 초청 강연회 때, 김남주 시인이 말했던 것이 두고두고 기억에 떠오른다.
그때 내가 초청을 하고 사회를 봤을 땐데 강연이 끝나고 나서 A직원 임직한 스파이가 김남주 시인에게 시국에 관한 곤란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때 내가 들어봐도 그 답변은 할 수 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묘한 질문이었다. 답변에 성실히 임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도 가능한 질문이었다. A직원은 그런 점을 간파 한 것 같았다.
그때 김남주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그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답변을 하게 되면 나는 또 다시 감옥에 갑니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생산적인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면 보람이 크지만 강연회에서 답변한 것으로 감옥가면 그보다 비생산적인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답변을 못합니다." 참으로 명쾌한 답변이었다.
강연회의 수많은 청중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유신 때 남민전사건으로 장장 9년 3개월의 감옥살이를 하다 형집행정지로 나온 김남주 시인은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다 췌장암으로 이 세상을 뜬 시인이다. 나와는 형, 아우로 지냈던 절친했던 선배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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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적 목사 약력 -1957년생 경남 통영 출생. -1986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 민족문학에 <안개속으로><연작시 삼청교육대10> 등으로 신인추천. - <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3년 구금, 88년 <미주중앙일보> 정화작전 연재 91년 <대한매일 창사기념/ 장편소설 적도> 당선, 80년대 군사독재 저항문인 단체였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회원> <민예총 창립회원> 1987년 삼청교육대사건을 최초로 폭로한<삼청교육대정화작전/전예원 87>발간. 이후 <장편소설 북방산계곡의비밀/90광야> 장편실록 <청송감호소 죽음의 그림자> 정치평론<대통령의 늦바람/남풍89>등이 있으며 시집 으로 <바스티유의땅/한겨레 88><이별과절망의둔주곡/ 푸른숲91>< 바다가 된 그대에게/ 새암바다/2000>등 기타 <김대중 살리기 공저><분단과통일시 1,2집/공저><사람과문학/ 공저>등 20여권의 작품집이 있다 현재 저항문인 단체인 <분단과통일시 동인>, <우리시대의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하고 있으며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평화교회담임 목사>로 시무 하고 있음. |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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