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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14>『논어13권』 자로편-공자의 정치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7.27 15:51

<명구>
『논어13권』
「子路篇 15」: 定公問 一言而可以興邦 有諸. 孔子對曰 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之言 曰 爲君難 爲臣 不易. ... 曰一言而喪邦 有諸. ... 予無樂乎爲君. 
                   唯其言而莫予違也.
 (자로편 15 : 정공문 일언이가이흥방 유저. 공자대왈 언불가이약시기기야. 
                  인지언 왈 위군난 위신불이. ... 왈일언이상방 유저. ... 여무락호위군. 
                  유기언이막여위야.)

<해석>
정공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말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와 가까운 것으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 노릇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  한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말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와 가까운 뜻을 가진 것으로 사람들의 말에) ‘나는 임금 노릇하는데 다른 즐거운 일은 없고 내가 한 말을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것이 즐거움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찰>
이 편은 공문십현의 한 사람인 자로(B.C. 542-480) 등과 더불어 공자께서 정치에 대해 논하신 이야기들이다. 자로는 이름이 중유(仲由)로서 염유와 더불어 정사에 뛰어난 제자였다고 한다.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벼슬을 했는데, 맨 앞 장에 “자로가 정치에 대해서 묻자”(子路問政)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솔선수범하고, 힘써서 일하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신 데서 이 편의 이름이 나왔다. 한마디로 정치하는 일이(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얼마나 수고롭고, 솔선수범해야 하며,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지치거나, 게으르거나, 싫증을 내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 작자미상,<과포찬정>- 자로가 재상이 되어 포(浦)지역을 다스리는 것을 보고 공자가 그의 정치를 칭찬하는 내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편의 표제어로 그러나 나는 노나라 제후였던 정공(定公)과의 대화를 뽑았다. 그는 공자께 묻기를 ‘한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고, 한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말로써 그렇게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人之言曰) 정치하는 일이란 임금이나 신하 모두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은 ‘소통부재’, 위정자가 자기 말에 찬성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멀리하고 거기에 분노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고 지적하셨다.

이 대답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것을 본다. 공자께서는 먼저 “사람들이 말하기를”이라는 표현을 들어서 나라를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 것과 같은 최고의 지혜가 그만이 알고 있는 어떤 특수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평범하게 알고 있는 ‘보편적 앎’(common sense)이라는 것을 넌지시 지시하신다. 그 보편적 앎에 따르면 임금도 신하도 정치하는 일을 참으로 “어려운 일(難/不易)”로 알고서,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고, 매사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흥하게 하는 지름길이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퇴계선생이 생각났다. 그가 “공경심”(敬)이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사람의 됨됨이뿐 아니라 정치의 일과 우주의 온 존재에 대한 참된 마음가짐을 지시하는 말로 쓰셨는데, 이 마음 씀이야말로 바로 정치의 기초가 된다는 가르침이겠다.

큰 손님을 맞이하고, 큰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정치가 어려운 이유는 그 정치란 바로 나라  안의 모든 사람과 일을 대상으로 그 위치와 역할, 진위를 판단하고 정해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즉 공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그것은 “정명”(正名), ‘이름을 정해주는 일’이고, 안연편에 나오는 말로 하면 “정치는 바로잡는 일”(政者正也)이기 때문이다. 명분과 일을 정하고, 그 중에서 잘못된 것과 거짓과 불의로 그렇게 된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바로 잡아 주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치의 일은 힘을 요구한다. 그래서 정치는 ‘권력’이고 ‘권위’이다.

정치가 권력이고 권위이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공명정대하지 못하면, 다시 말하면 한편으로 치우쳐있고, 사사로운 이익에 좌우되고, 한 사람이나 소수에게 독점되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서 한 나라의 삶에서 명분과 역할과 말과 행위의 진실성과 위대성을 보장하는 바른 정치야말로 그 공동체의 “생명줄”(lifeblood)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생명줄이 끊어지면 그 존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듯이 정치의 부패는 그래서 수많은 죽음과 죽임을 불러온다.

공자는 그리하여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 정명(正名)의 일부터 하시겠다고 했다. 오늘 우리의 언어로 하면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인권위원회’, ‘진실과 화해위원회’ 등을 중시여기시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그동안 뒤틀려있던 사람들의 권한과 역할, 말과 일의 진실과 뜻을 바로 잡는 일이야말로 어떤 호구책이나 경제적 대책을 세우는 일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다.

그는 말하기를,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해지지 않고, 말이 순해지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는다.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으면 예악(禮樂)도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도 바르게 적용되지 않는다.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둘 곳이 없다.”(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 刑罰不中 刑罰不中 則 民無所措手足.)고 하였다. 즉 각자의 일이 정해지고, 무엇이 진실인지가 밝혀지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역할에 몰두할 수 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거짓말이나 폭력의 말, 미사여구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행동하고 성취할 수 있게 되고, 위대한 행위가 가능해지면서 나라 안의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법이 바로 서면서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삶이 편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물론 공자도 백성들을 부유하게 해주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다. 인구가 늘어난 나라에서 그 다음으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부유하게 하는 일”(富之)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敎之)고 하였고, 가르치지 않고 그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것”(棄之)이라고 했다. 앞의 안연편에서도 무기와 식량보다도 더 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백성들의 “믿음”(信)이라고 한 것은 모두 정치의 기본이 무엇이고, ‘정치’(政)라는 일의 참된 규정(正名)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신 것이다.

한 제자가 농사짓는 일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자 공자는 자신은 늙은 농부만도 못하고, 늙은 채소 농사꾼만도 못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만약 나라의 윗사람이 禮를 좋아하고, 義와 信을 좋아하면 뭇 백성이 사방에서 그곳으로 살려고 모여들 것인데, 왜 농사짓는 것과 같은 방법과 기술의 일을 먼저 거론하는가 라고 넌지시 비판하신 것이다. 우리가 표제문으로 뽑은 두 번째 말에 공자는 나라를 한 마디로 망하게 할 만한 말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말에 반대하지 않는 일의 기쁨이라는 한 위정자의 말을 들었다. 즉 공자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로 위정자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일, 자신의 말에 어떤 반대도 용납하지 않는 것,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 등을 들었다. 오늘 한국 정부의 대통령이 바로 이와 유사한 지적을 많이 듣는다면 이미 오래 전에 공자가 지적한 대로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말씀하기를, “군자는 섬기기는 쉬우나 그를 기쁘게 하기는 어렵고, ...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우나 기쁘게 하기는 쉽다”(君子易事而難說也.  ... 小人難事而易說也.)라고 했다. 왜냐하면 ‘군자를 기쁘게 하는 데는 道에 맞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고, 그러나 그가 사람을 쓸 때에는 그 사람의 그릇과 능력에 맞게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인은 道에 맞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맞추기만 하면 기뻐하고, 사람을 쓸 때 그가 모든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즉 소인은 자신이 쓰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주기를 바라고, 도리에 맞던 맞지 않던 자기에게 맞추어주기만 하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시사가 들어있는 말이다. 요사이 국가정보원 해킹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담당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다시 접했다. 일을 갖게 되었을 때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 삶과 정치의 상황이 아닌가 여겨진다. 참으로 비참하고 비통한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을 야기한 책임이 지금까지 30여년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나도 결코 면할 수 없음을 생각한다. 공자는 “詩를 삼백 편이나 외우면서도”(誦詩三百) 올바른 공적 인간이 되지 못하는 사람을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그 많은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힐문이시다.

공자께서 지적하신 소인의 특성으로 ‘파당은 이루지만 진정으로 화합하지 못하고’(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작은 이익이나 넘보면서 일을 빨리 이루려고만 하고’, 그래서 ‘삶에서 하지 않는 바가 있는 지조있는 사람’(狷者)나 ‘진취적인 열성의 사람’(狂者)도 되지 못하면서,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반대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가까이의 사람들을 떠나가게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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