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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조선에 돌아오다 2<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07.30 17:14

김구의 귀국성명

저녁 8시 정각(1945.11.23.), 장준하가 기초하고 김구 자신이 약간의 수정을 가한 김구의 귀국 성명이 발표되었다. 방송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한반도는 38선을 기점으로 그 분단이 양대국 사이에 내정되어 있는 터, 그것은 해방국도, 독립국도 아닌 피점령국이었다. 점령국인 미국엔, 더군다나 점령군 사령관에게 김구란 별개 아니었다. 임정주석이라니? 아니, 감시의 대상이었다.

한독당 선전부장 엄항섭(嚴恒燮)이 대독한 김구의 귀국성명은 앞으로 김구의 공무처로 사용될 경교장(京橋莊)에 모여든 국내외의 기자들 앞에서였다.

“27년간 꿈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강산을 다시 밟을 때, 나의 흥분되는 정서는 형용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경건한 마음으로서 우리 조국의 독립을 전취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유명무명의 무수한 선열과 아울러, 우리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피를 흘린 연합국 용사들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다음으로는 충성을 다하여 3천만 부모, 형제, 자매 및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소 등 우방군에게 감사의 뜻을 보냅니다.

나와 나의 동사(同事)들은 과거 2,30년간을 중국의 원조 하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우리의 공작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더욱 금번에 귀국하게 되는 데에 중국의 장개석(張介石) 총통이하 각계 각층의 덕택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나의 동사는 중·미 양국에 대하여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금번 전쟁은 ‘민주를 옹호하기 위하여 「파시스트」를 타도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 승리를 얻은 원인은 연합이라는 약속을 통하여 호상단결 협조함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금번 전쟁을 영도하였으며, 따라서 큰 공을 세운 미국으로도 승리의 공로를 독점하려 하지 않고, 연합국 전체에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허한 미국을 찬양하거니와 동심륙력(同心戮力)한 연합국에 대해서도 사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작풍(作風)은 다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라고 확신합니다. 나와 나의 동사는 각각 일개의 시민 자격으로 입국하였습니다. 동포 여러분의 부탁을 맡아 가지고 27년을 노력하다가 결국 이와 같이 여러분과 대면하게 되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저에게 벌을 주시지 아니하고, 도리어 열렬하게 환영해 주시니 감격의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나와 나의 동사는 오직 완전 통일된 독립 자주의 민주국가를 완수하기 위하여 여생을 바칠 결심을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가림없이 심부름을 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유익한 일이라면 불 속이라도 들어가려 합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기쁨으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에, 또 소련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북쪽의 동포도 기쁘게 대면할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그 날을 기다립시다. 그리고 완전히 독립자주하는 통일된 신민주국가(新民主國家)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분투 합시다.”

입추의 여지없이 경교장의 기자회견장은 물론 안팎으로 빽빽이 들어찬 인파는 신비스러우리만큼 조용했다. 김구의 입국성명을 엄 부장이 낭독한 10여분 동안 운집한 회중 가운데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환영의 박수 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당면 정책(大韓民國 臨時政府 當面 政策)

장준하는 중경에서부터 전달된 또 다른 문서 한통을 엄 부장에게 건냈다. 중경의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한달여간 수차례 연석회의를 거쳐 마련된 「임시정부의 당면 정책」(大韓民國 臨時政府 當面 政策)이라는 이름의 문서였다. 문건을 받아든 엄항섭은 당면 문서의 귀중성을 간단히 밝히고 「당면 정책」을 읽어내렸다. 14개항으로 되어있는 정책서였다.

1. 본 임시정부는 조속한 기일 안에 곧 입국할 것.
2. 우리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혈전한 중·미·소·영 등 우방 민족으로 더불어 절실히 제휴하고 연합국 헌장에 의하여 세계일가(世界一家)의 안전 및 평화를 실현함에 협조할 것.
3. 연합국의 주요 국가인 중·미·소·영 등 강국에 향하여 먼저 우호협저을 체결하고 외교도경(外交途經, 영역: 필자주)을 여벽(呂闢, 개척: 필자주)할 것.
4. 연합군 주재 기간에 일체 필요한 사이(事宜)를 적극 협조할 것.
5. 평화회의 및 각급 국제집회에 참가하여 한국의 광유(廣有)한 발언권을 행사할 것.
6. 국외 업무의 결속과 국내 임무의 전개가 서로 접촉됨에 필요한 과도 조치를 집행하되, 전국적 보선에 의한 정식 정권이 수립되기까지의 국내 과도 정권을 수립하기 위하여 국내의 각 계층, 각 혁명당파, 각 종교집단, 각 지방대표의 저명한 민주 영수회의를 소집하도록 적극 노력할 것.
7. 국내 과도정권이 수립된 즉시에 본부의 임무는 완료된 것으로 인(認)하고, 본 정부의 일체 직능 및 소유물건은 과도 정권에 교환할 것.
8. 국내에서 건립된 정식 정권은 반드시 독립국가, 민주정부, 균등사회를 원칙으로 한 신 헌장에 의해 조직할 것.
9. 국내의 과도정권이 성립되기 전에는 국내 일체 질서와 대외 일체 관계를 본 정부 부책(負責) 유지할 것.
10. 교포의 안전 및 귀국과 국내에 거주하는 동포의 구제를 신속 처리할 것.
11. 적의 일체법령의 무효와 신 법령의 유효를 선포하는 동시에 적의 통치하에 발생된 일체 처벌범을 사면할 것.
12. 적산(敵産)을 몰수하고, 철교(撤僑)를 처리하되 맹군과 협상처리 할 것
13. 적군에게 피박 출전한 한적군인을 국군으로 편입하되 맹군과 협상 진행할 것.
14.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와 매국 적에 대하여서는 공개적으로 엄중히 처벌할 것.

대한민국 27년 9월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주석 김구

김구의 귀국방송

   
▲ 지금은 사라진 경교장 동측 연못에서의 김구 주석과 독립운동가 정영국 (제공 : 백범기념관)
민중의 소리는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23일 임정의 귀국 기자회견 기사가 24일 여러 일간지에 보도 되자마자 경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로 서대문 네거리에 이르기까지 밀려드는 인파로 마치 전쟁을 방불케 했다.

“백범선생의 얼굴이라도 보아야 겠오”, “백범선생의 말씀이라도 들어봐야 할게 아니요”, “아니, 세상에 해방이 되었는데 우리 어른의 레디오 방송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니요” 현장을 관리하는 미군 헌병들은 현장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군정청에 보고했다. 곧 이어 군정청의 한 메시지가 경교장에 전해졌다.

“오늘 저녁 여덟시, 김구(Mr. Kim Ku)의 귀국 성명을 레디오 발표할 수 있게 하겠다. 그러나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방송시간이 2분이 넘어서는 안되며, 다른 하나는 김구가 ‘개인자격’으로 왔다는 사실을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군령이었다. 그리고 그 군령을 내리는 이는 「조선점령군사령관」이었다.

김구는 곧 바로 엄항섭과 장준하를 불렀다. 직위상 대담 대상은 선전부장 엄항섭이었지만 김구의 대담은 장준하를 향한 것이었다.

“장 목사.” 김구의 장준하 호칭이 목사였다. 중경에서 임정요인들의 파쟁을 투시한 장준하가 “임정 청사를 폭격해버리고 싶다”는 선언을 하고, 서북방으로 12km쯤 상거의 토교로 옮겨, 한국광복군 토교부대를 창설하게 되는데, 이 토교 지역의 한인회(土橋 韓人會)의 요청으로 토교 한인교회를 시작, 해(該)교회의 전담 목회자로 사역했던 데서 비롯된 호칭이었다.

“장 목사, 별 수 없지 않나. 군정청의 명령(?)인데...” 엄항섭도, 장준하도 간장(肝臟)의 녹아듦은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서 지은 죄 때문일까?”
“하늘에 지은 죄가 얼마나 크기에 이 같은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장준하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장 목사, 괜찮아. 긴소리 할 것 없어. ‘나, 여기 이렇게 왔습니다’하면 되는 거야. 무슨 긴소리 필요 없잖아. 그뿐이라니까. 어디 초안한번 잡아보게나. ‘개인자격으로 왔다’는 그 말 담아서 말야.”

김구도, 엄항섭도, 장준하도 말없이 울어야 했다. 장준하는 “개인자격으로 왔다”는 내용을 담아 2분용의 원고를 지체없이 작성하여 김구 앞에 내어놓았다.

“친애하는 동포여러분! 27년간이나 꿈에서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3일까지 머물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나와 각 원 일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독립 완성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동포가 하나기 되어 우리의 국가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사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만을 전합니다.”

“됐어~! 잘 됐구먼.” 김구는 흡족해했다. 단숨에 장준하의 원고를 내려읽은 김구는 엄 부장과 수행 비서를 대동해 바로 건너편 정동 방송국으로 출발했다. 장준하는 경교장에 남았다. 그리고 온 신경을 라디오에 집중했다.

8시, “친해하는 동포 여러분!” 김구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장준하는 그 라디오 앞에 엎드려 버렸다.

<필자 소개>

   
 
문대골

*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상임고문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교회 원로목사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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