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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이 산중 결혼식이지 대농원의 잘 가꾸어진 잔디밭위에 결혼식장을 만들어 놓고 부르조아 결혼식을 올렸으니 하객수가 지천을 메우고 있었다. 뻐꾸기, 꾀꼬리, 접동새, 고라니, 토끼 등 수많은 동물들이 하객이 되어 주었고 절친한 벗들이 강원도니 어디니 하며 전국에서 3~40여명이나 와주었다.
그리고 부산지역의 원로 재야운동가이신 조창섭 목사님이 주례를 서주며 내 평생 이런 결혼식 주례는 처음 이라며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 해 주었다. 아내는 예쁜 한복을 한 벌 맞춰 입었고 머리엔 꽃 쪽두리를 썼다. 그리고 내가 시를 지어 아내에게 바치고 그 시를 장익만 화백이 아내의 한복치마에 써주었다.
아내는 그 치마저고리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우리의 결혼을 적극 반대한 처가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으므로 아내의 결혼식은 눈물 그 자체였다. 부모 배석 없이 올린 산중 결혼식. 아내의 한도 그만큼 깊었을 터였다. 아니,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그 과정도 힘든 상황 이었으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 지금도 그 때의 결혼사진을 보면 눈물과 함께 흘러내린 시꺼먼 눈물자국을 볼 수 있다.
강정량 회장의 부인은 하얀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천사 같았다. 그 집도 자식들 다 낳고 난 뒤 결혼식을 올렸고, 강 회장 역시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전과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A급 보안사범이라 우리 두 쌍의 처지가 그렇게 닮을 수가 없었다. 단지 강 회장은 기업을 다섯 업체나 거느린 부자고, 나는 가난뱅이 작가인 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신문사를 그만 두던 그해 가을, 추석대목 무렵 내가 아내에게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결별인사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 왔을 때 나는 그녀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뒷날 우리 집에 깜짝 놀랄 일이 터졌다.
아내가 나를 따라 열차편으로 곧 이어 따라 내려 왔던 것이었다. 달랑 주소 하나만 갖고 명절날 우리 집에 나타났으니 우리 가족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명절에 남자 집으로 내려왔으니 본인의 고뇌는 얼마나 깊었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그 이후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나는 임신한 아내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처가에서 죽어라 반대하며 헤어질 것을 종용했지만 임신한 아내와 아이를 외면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내의 결심도 굳어 있었고,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처음 안 나는 조용한 달빚 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약속을 했다. 결혼하여 평생을 해로 하자고, 이후 아내와 나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준 동거에 들어갔다.
살림살이라 해봤자 내가 자취하고 있던 자취방 살림이 전부였다. 그 후 자취방에서 신혼의 단꿈을 키우다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의 연산동에서 정식으로 신혼 방을 얻어 진짜 결혼식 없는 신혼결혼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그곳에서 자식들을 낳았다. 처가에서의 반대가 심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내와 나는 선녀와 나뭇꾼이었다. 물론 내가 날개옷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무 경제적 기반 없이 결혼을 했고 동성동본이나 혼인 신고 조차 안 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아내는 언제든지 떠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처가 집안의 반대가 심하여 아내를 강제로 끌고 가버린다든가 아내가 마음만 바꿔 먹어 버린다면 우리의 보금자리는 언제든지 깨어져 버릴 것이었다.
10여 년간의 나이 차이와 동성동본, 시국사범 삼청출신, 이런 악조건은 처가와의 관계를 충분히 멀게 할 수 있는 요인이었으며 팍팍한 경제적 현실도 위험요소를 충분히 안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심지가 곧았고 보기와는 다르게 깊은 지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식을 낳기 전이라도 한 번도 날개옷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자식을 낳은 후에도 애기들을 안고 하늘나라로 날아 갈 궁리를 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궁색한 살림이라도 잘 참아 주었으며 영특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심성에 감동받아 나는 아내를 크게 한번 키워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언젠가는 내게 시집 온 대가로 그에게 큰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다. 내게 시집 온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그의 미래를 보장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후일 실제 나의 그 마음은 잊지 않고 실천했다. 아내를 정치인의 자리로 밀어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애. 지명수배자의 신분으로 만나 파란만장한 세상살이를 함께 하려는 그 운명을 우리는 떨쳐내지 못했다. 당시 나는 목회 사역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니 남의 이야기쯤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우리는 잠시 부산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대명교회에 출석을 하였다.
신앙적이라기보다 운동 중심의 출석이었던 것이다. 그 교회는 교단 자체가 민주화를 열망하고 실천하는 교단이었으므로 교단의 신선도가 다른 교단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가족 전체가 출석교인으로 등록을 하였던 것이다.
또 그 교회에는 또 부산의 재야운동가 조창섭 목사님이 담임목사를 맡고 있었으므로 나의 교회에 대한 의식은 새롭게 접근 되었으며, 그 기대가 상당히 컸던 것이다. 나는 당시 신학교 출신이었으나 평신도로서 교회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데 일조를 해보리라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 교회에는 교회운동에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신앙적 동지들이 몇이 있었다.
EYC회장 출신이었던 권광식, 부산신학교 출신들인 최경호, 고영훈 등 기타 10여명 안쪽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신앙적 목표가 똑같아 베짱이 맞아 떨어졌다. 우리는 대명교회를 사회를 개혁시키는 신앙적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 믿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내에 <교회와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신앙조직도 만들었다.
회장을 권광식에게 맡기고, 우리는 먼저 충분한 친목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때가 되면 더 큰 신앙적 동지들을 규합하여 대 사회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 열망과는 달리 교인 5~60명 되는 작은 교회에 두 분의 장로들이 대립하고 있어 우리의 꿈은 보기 좋게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후일 젊은 담임목사님이 한분 오셨는데, 목사님은 선량하고 양심적이었으며 충분히 신앙적 삶과 사회적 양심을 견지하고 있던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을 중심으로 뭉쳐지지 못하고 개인적 욕심과 수구적 의식을 가진 한 장로님의 분열적인 책동으로 늘 교회 분위기는 불안하기만 했다.
우리는 교회를 하나로 뭉쳐 보기로 하고 평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 문제에 대하여 세미나를 열어 보려고 했으나, 그 장로님 쪽의 방해로 그 세미나는 보기 좋게 시작도 못해보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나의 제의로 시작된 그 세미나에 나는 사회를 맡았는데 그들의 방해와 빈정거림으로 세미나장은 일대 소란의 도가니로 빠졌고, 아예 세미나는 사회조차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져 더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확실히 내 귀를 의심하는 빈정거림이 들려 온 것은 담임목사의 <교회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임이어야지, 생각하는 모임이 뭐야……>그 소리는 낮고 은밀하게 독백했지만 내 귀에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성직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하필이면 한 장로측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세미나장에서 공식적인 표현도 아니고 개인적인 빈정거림으로 그 말을 하는 모습을 봤을 땐 나는 그 교회에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거기서 또 <한국교회는 아니다.>라는 판단을 하며 그 교회 출석을 중단해 버렸던 것이다. 교회 내의 끊임없이 분출되는 소시민적인 분열과 책동, 그것은 사회의식과 정의감이 강한 우리에겐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일, 그것이 얼마나 설익은 생각이며 신앙인적 태도가 아닌가도 충분히 느끼게 되지만 하여튼 그 당시엔 한국 교회구조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던 터라 또 다시 오랜만에 교회를 정하여 출석하던 내겐 한국교회 구조의 한 단면만 체험 확인하고 또다시 중도 하차 해버린 꼴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한 번도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차라리 교회에 나갈 열정이 있다면 차라리 사회운동을 통해서 이루어 내는 사회개혁이 더 큰 신앙적인 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시 내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감을 못하고 있었다. 그 체감을 조금이라고 느꼈더라면 나의 신앙적 행위는 그렇게 나태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물론 교회 출석과 불출석이 신앙의 척도를 가늠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지적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지적 교만함으로 신앙의 깊이와 구조까지도 가늠하려는 덜 떨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후일 깨닫게 되지만 하여튼 당시는 교회를 사회개혁의 한 도구로만 더 크게 생각하고 있던 내 생각은 한마디로 미숙아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후일 그걸 깨닫지 못하는 내게 하느님은 엄격하게 한 한방의 채찍으로 나를 눈뜨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채찍을 맞고서야 내가 얼마나 교만해 있었던가를 깨닫게 되지만 참으로 오랜 세월인 20여년의 세월이 허송되고 난 뒤였다.
이적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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