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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남북 화해의 제사장 되라<정중규 칼럼>
정중규 | 승인 2015.08.20 13:26

교회, 남북 화해의 제사장 되라

   
▲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잊혀지겠지요?” 의열단 약산 김원봉 단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백범 김구 주석의 만남. 영화 '암살'의 장면들. ⓒ정중규

올 8.15는 마침 광복절 그날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암살>로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의 한 장면. 의열단 약산 김원봉 단장이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술잔마다 불붙이며 항일무장투쟁하다 떠난 동지들 이름 부르다 던지는 대사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잊혀지겠지요?” 가슴에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다. 그랬다. 오로지 민족 해방과 독립을 위해 자기 한 몸 던진 사람들은 잊혀지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열강을 등에 업은 분단세력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약산도 백범도 그들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올해도 광복절 앞두고 어김없이 되살아났던 ‘건국절’ 논란도 그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이승만 대통령도 대한민국이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해 건국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승만을 추종하는 자들이 이승만 수준의 역사의식에도 미치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는 비판처럼 그들이 이 논란으로 노리는 것은 1945년 8.15를 광복절로 할 경우 친일과 항일 구도지만 1948년 8.15를 건국일로 잡을 경우 좌우익 구도로 바뀌니, 그를 통해 친일 논란을 잠재우고 우리 사회를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려는 것. 그래서 광복 70년이 분단 70년이 된 역사가 뼈아픈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 대치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악화일로다. 보수언론들조차 내용이 없다고 질타한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담화는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말해 주고 있다. 한반도는 다시 열강이 각축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G2 패권싸움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소용돌이치는데 주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이 결정적 시기에 우리 민족은 남북 상호 간 증오의 칼날만 세우는 자해만 거듭하고 있으니, 67년 전 남북 단독정부 수립 역사가 더욱 뼈아픈 것이다.

외눈박이로 동족의 반쪽을 외면하고 분단 고착에 한 몫한 교회

이런 분단의 고착에 한국 그리스도교회가 한 몫했었다는 것을 참회의 심정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교단 차원에서 교회 지도층이 앞장서 친일했다’는 해방 전 일제강점기 때의 잘못은 제쳐 놓고서라도 해방 정국에서의 교회 행적은 어떠했던가. 마침 북녘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반공주의’를 기치를 내건 교회는 남북 분단의 한 축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 갔다. 특히 1946년 김일성 정권이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교회 소유 토지나 재산이 대부분 몰수당하는 등 종교적 박해를 견디다 못해 대거 남쪽으로 피난 오면서 반공주의 세력의 정치세력화에 기여한다.

   
▲ "겁이 나요, 아직도 남북이 갈려 있어서" 국민보도연맹 양만학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 포스터. ⓒ레드툼

좌익 척결을 외치며 제주 4.3사태,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에서의 양민 학살은 물론 김구 등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암살했던 극우반공단체 서북청년단, 거기에 북한에서 남하한 개신교인들이 주축임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천주교는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과 손잡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공헌한다. 제헌의회가 ‘반민족자처벌법’을 통과시켰을 정도로 좌익이 우세했던 정치 지형에서 천주교가 우익 측에 서게 된 것은 물론 반공주의 때문이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무수히 투옥 학살당했던 한국전쟁은 교회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켰다.

민족은 분단의 칼에 찔려 신음하는데 교회는 외눈박이로 한쪽을 따라다니며 분단 상황 고착에 힘을 보탰다.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때의 행적, 그 트라우마로 인해 교회는 한동안 남북통일운동에 나서지 못하고, 기껏 북한 공산주의 정권의 회개만 바라는 기도문만 외우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교회가 다시 남북통일과 민족화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 나서면서였다. 참된 민주화는 분단이 극복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1980년대 이후 민족화해와 통일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마침 그 시기에 독일 통일이 있었는데, 거기에 크게 기여한 독일 교회의 역할을 보면서 더욱 자극 받았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보수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교회의 진보적 통일운동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를 맞아 남북 당국 차원에선 6.15, 10.4 남북합의가 성사되는 등 교류가 활발해졌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 차원에선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교회, 광복 70년, 분단 70년, 무엇을 했는가

남북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분단의 역사가 길어지고, 남북의 이질성이 커지면서다. 통일부가 초중고생 11만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통일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전체 절반을 조금 넘는 53.5%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통일의식조사 역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55.8%였다.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가장 큰 이유로 남북 간 경제 격차를 꼽았는데, 어떤 방식의 통일이든 막대한 통일비용이 들 것인 반면, 통일로 인한 이익은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었다.

교회도 그러한가?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는 사도 바울의 고백 같은 절절함을 교회는 지닐 수 있는가? 광복 70년, 분단 70년, 바빌론 유배 70년(예레 29,10) 같은 이 세월, 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그 7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배지에서 민족 일치를 도모했고, 민족정신과 종교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경전을 정리하며 해방의 그날을 준비했다.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리리라.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시편 137,6) 같은 애끊는 간절함이 지금 교회에 있는가.

교회, 빈 들에서의 정화 시간이 필요하다

구약시대에도 애끊는 간절함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갈망했던 예언자들이 있었다. 바빌론 유배 70년을 예언했다 민족의 배반자로 찍혔지만 조국의 패망 앞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비탄에 잠겼던 참된 예언자 예레미야.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찢어진 조국이 하나로 통일되기를 바랐던 예언자 에제키엘, 그에게 하느님은 남북이 하나 되는 비전을 보여주시는데 마른 뼈들이 뒹구는 빈 들에서였다(에제 37,1-28). 그뿐 아니다. 호세아도 빈 들로 불러 내셨다(호세 2,16). 모세는 출애굽을 시작하기 전 먼저 오랜 시간 빈 들에서 살았다. 예언자 엘리야는 늘 빈 들에서 살면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이사 40,3) 세례자 요한은 평생이 빈 들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조차 공생활 전에 빈 들로 가서 40일간 지내시고 영이 충만한 상태로 세상으로 돌아오신다.

왜 빈 들인가. 교회가 일제강점기 때 친일하고, 해방정국에선 우익으로 좌익 척결에 앞장서고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과 손잡고 단독정부 수립에 공헌한 것은 한국교회의 권력지향성을 드러냄이 아니었던가. 반공이란 깃발 역시 무신론에 대항하는 차원이라기보다 김일성 정권의 토지개혁으로 자산이 몰수당하며 피해 입은 것에 대한 반작용은 아니었던가.

빈 들로 가는 것은 바로 그런 정화의 길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묵은 마음과 몸을 씻고 빈 들처럼 툴툴 털어 버리며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때 마치 득음을 하듯 교회도 예언자의 목소리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그런 빈 들의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신다.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에 권위가 있음이다. 구원이 빈 들로부터 오는 이유다.

빈 들로 교회를 불러내는 빈 들의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

교회의 기원이 빈 들이었다. 공생활 앞둔 예수께서 굳이 빈 들의 사람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 받으신 것은 빈 들의 그 야성을 교회의 마음으로 삼겠다는 뜻. 그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 역시 어느 문제든 언제나 빈 들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이미 2세기부터 사막수도회가 나온 것도 그 까닭, 모든 쇄신은 빈 들에서 이루어졌다. 수비아코 동굴에서 거듭난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움브리아 빈 들에서 눈을 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만레사 동굴에서 가슴에 불을 지핀 예수회 창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 빈 들은 모든 개혁의 모태였다.

그리고 이 시대 문득 교황청에 나타난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빈 들의 사람이다. 그가 태어난 땅 라틴아메리카는 빈 들의 대륙, 가난의 대륙이다. 500년 전, 교회의 강제 개종은 겉옷만 껴입힌 것일 뿐 영혼을 껴안지는 못했다. 언제나 슬픔에 젖어 있는 그들의 눈에서 교회의 손길로도 채울 수 없었던 텅 빈 마음을 본다. 거기에서 빈 들의 신학, 해방신학이 나왔다. 그 빈 들의 예언자 프란치스코가 교회를 향해 ‘거리로 나가라’고 재촉한다. 빈 들로 가라는 뜻이다.

북한을 도우는 것이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 구현하는 길

이제 한국 교회가 빈 들로 나갈 때다. 거기서 남북 대립 구조를 혁파할 하나 됨의 비전을 에제키엘처럼 받을 때다. 이 시대의 구원을 위해, 교회 자신의 쇄신을 위해,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해 빈 들로 가서 외눈박이로 민족의 반쪽을 외면했던 속 좁음의 지난날을 참회의 심정으로 고백하고, 진정한 해방과 광복을 강림시키는 남북 화해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특히 분단 현실에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의 삶을 껴안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교회에 주문한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 지금 한반도에서 그들만큼 가난한 이들이 또 있을까. 독일 통일 전의 서독 교회처럼 북한을 향한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남북 화해와 통일의 밑거름을 쌓아 나가야 한다.

   
▲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국 남성들의 전통 의상인 창산(長衫)을 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백범김구기념관

오는 2019년 4월 13일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에서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백년이 되는 ‘건국일’이다. 이날을 남북이 분단의 벽을 허물고 하나 됨의 계기를 만드는 희년으로 삼았으면 싶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세력의 집권은 또 다른 바빌론 유배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부산대학교 고현철 교수의 투신 소식이 들려 온다. 민주화 결실인 총장 직선제를 대학 자율 수호 차원에서 지켜 내기를 바라며 몸을 던졌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총장 직선제를 폐기하려는 의도야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혀 보수 일색인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남은 진보 섹터인 대학사회마저 보수화시켜 장기집권의 토대를 확고히 해 놓겠다는 것. 이들에게 대학이 인류역사에 지녔던 보편적 가치가 이해나 될 것인가. 이처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세력의 집권은 또 다른 형태의 바빌론 유배가 아니겠는가. 대학사회가 진리 수호 차원에서라도 직선제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것은 그 지성이 양심과 함께 할 때다. 죽어 가는 이 시대를 살리려면 대학이 부활해야 한다.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부마항쟁의 불씨가 당겨진 그 곳. 부활은 늘 죽음 뒤에 온다.

<필자 소개>

정중규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이자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행복포럼 대표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정중규  mugeo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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