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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일 (14:21-31)<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25>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8.21 20:56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이집트 군대를 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이집트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이집트 사람들을 치는도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이집트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이집트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본문에는 기상천외, 전대미문 등으로 부를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었다. 홍해바다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본문에 ‘큰 동품이라 옮겨진 말(뻬루앗흐 카딤 아자)은 강한 동풍을 가리킨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16절) 모세가 바다 위로 지팡이를 든 채로 팔을 뻗자 (21절) 하나님은 맹렬한 강풍(동풍)을 밤새도록 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신 도구는 지팡이 또는 모세의 팔이 아니라 동품이었다. 이 일의 주도권이 완전히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이 14:4, 13-14, 17-18, 30-31에 되풀이 기록되었다.

여기에 창조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i) 성령께서 물 위에 운행하였듯이 (창 1:2) 모세의 지팡이가 물 위로 작동되었다. ii) 하나님께서 물과 뭍을 분리시켰듯이 (창 1:7)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렇게 분리시키셨다. iii) 마른땅(뭍, 육지)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 1:9) 백성에게 마른 땅을 밟게 하셨다. (브루크너 214) 16, 22, 29에 나오는 ‘마른 땅’(하라바)은 흔히 말하는 육지(야바사)가 아니다. (출 15:19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마른 땅을 밟고 홍해를 건넜다. 이집트 군대는 이 마른 땅을 믿고 바로로 들어섰다가 망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 사이로 난 길을 지날 때 양쪽 옆에는 물로 벽(코마 µômâ)이 형성되어 있었다. (22절) 이로써 전쟁의 고전적인 방법인 측면공략의 전술이 여기서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는 이집트 군대의 규모와 조직에 대해 되풀이 설명이 되풀이 나왔다. (23, 25, 26, 28절)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느끼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위협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다. 23절에 따르면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 ‘그 바다 가운데로’ (엘 토크 하얌) 들어갔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로 들어가는 것을 묘사한 내용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22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물들이 그들을 위해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다’ (직역) 라고 되어 있다. 이집트 군대에게는 ‘마른 땅과 벽’이란 말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밤을 오후 6-10시 오후 10시-오전 2시 오전 2시-6시 등 셋으로 나눈다. (차준희 166-7) 이에 따르면 홍해바다 사건은 오전 2-6시에 일어났을 것이다. (24-25절)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다. (24절 하맘 h¹mam) 이 말은 교란시키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을 치시는 것을 묘사할 때 자주 쓰였다. (삿 4:15; 수 10:10) 그들은 잘 훈련된 막강한 군사력을 믿고 바다로 난 길로 뛰어들었다. 보병만이 아니라 기병(말) 포병(? 병거) 등 모든 군대와 무기가 다.

이 때 하나님은 또 다시 명령을 내리셨다. (26절) 그에 따라 순식간에 물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만났으며(카라 q¹r¹°)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셨다. (27절 나아르 n¹±âr) 이 나아르는 본디 흔들어 떨어뜨리다(사 33:9)는 뜻이다. 본문에 엎어뜨리다로 옮겨진 것을 그 의미를 살려 옮긴다면 던져 버리다란 말맛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남은 자가 된 이스라엘 백성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었던 바로 그곳이 강팎해진 이집트인에게는 죽음과 소멸의 길이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잠잠히) 있을지니라”(14절)는 말씀은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 (브루크너 217 참조)

i)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 뒤로 가 이집트 군대의 진영과 분리시켰다. (19-20)
ii)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내밀게 하셔서 밤새도록 부는 동풍에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셨다. (21절)
iii) 여호와께서 새벽에(오전 2-6시?) 이집트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드셨다. (24절) 여호와께서 그들 마음을 완강하게 하시자 그들의 판단력은 무뎌졌다.
iv) 하나님은 이집트 군대가 사용하는 병거의 바퀴가 벗겨져 달릴 수 없게 하셨다. (25절) 그들은 제자리로 되돌아온 물결을 거슬러 도망치다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빠져 죽었다. (27-28절)

   
▲ 홍해바다가 갈라지다

출 13:17-14:29에 나오는 이야기가 전체가 출 14:30-31에 요약되었다. (더햄 344) 30절의 ‘보았더라’는 말은 13절의 ‘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것이다.

출애굽기 14장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홍해바다를 가른 기적의 방법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를테면 이집트 군대의 혼란과 파멸을 위해 여기 등장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무서운 천둥(Cassuto 171-2) 화산폭발(Robinson, ZAW 51[1933] 171-2) 하나님의 나타나심(Hyatt 154) 시내산 전승(Kuntz 82-85, 185-187), 현명한 지질지형의 선택과 이용(Hay, JBL 83[1964) 397-403) 등은 모두가 학자 자신의 상상력에 기초한 것이 성경에 따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홍해바다에서 과연 누가 무슨 일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다시말해 이즙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한 구원을 얻었다. 이 사건이 홍해바다에서 일어났다. 이 일은 여호와 말미암아 시작되고 집행되고 완성되었다. 이것이 13-14장의 결론이다.

‘바로 그 날에’ (빠이욤 하후 bbajjôm hahû) 이루어진 일의 결과가 31절에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하신 큰 능력을 이스라엘 자손이 보았으므로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없이도 이적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다. 그가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미는 연기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홍해바다를 가를 수 잇는 분이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모세를 앞세워 이 큰 일을 행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의 지도력을 인정하게 도우신 것이다.

오늘의 적용

1) 보라

출 14:13-14절에는 네 가지 주요한 명령어가 나왔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가만히 서 있으라 보라 가만히 있으라 (잠잠하라). 앞의 세 개는 연이어 나왔다. 명령어가 이렇게 연이어 나올 때 그 강조점은 마지막에 것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본 뜻은 ‘보라’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 대답이 여기 있다: “바닷가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출 14:30b)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을, 하나님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심을 우리는 보는가?

   
▲ Das Bild Der breite und der schmale Weg nach Charlotte Reihlen (Idee)-Paul Beckmann (Ausführung) 1866
2) 처음엔 같은 길, 나중엔 다른 길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 군대가 바다로 들어서는 길은 같았다. 그것은 홍해 바다 안으로 난 마른 땅이었다. 그 길이 한편에겐 구원과 생명의 길, 다른 한편에겐 멸망과 죽음의 길이었다.

여기에서 분명히 나타나듯이 인생이 가는 길에는 생명(영생)의 길과 멸망(파괴)의 길이 있다. 현대인의 눈에는 이것이 지나치게 도식화된 듯이 보이겠지만,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자신은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는가?

예수님 말씀이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3-14)

3) 지도자를 세워주시는 하나님

홍해바다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안하고 주도하신 것이다. 모세가 그 일을 놓고 제안을 하거나 지팡이를 든 손을 그 바다 위로 뻗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일어났을 사건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다 모세를 통하여 이루셨다. 이는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인 동시에 지도력의 확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정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였다.

4)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

바다를 건너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집트 군대가 바다로 들어설 때에는 달랐다. 그들은 그냥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으로 행할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던 물로 된 양쪽의 벽과 마른 땅이란 말이 여기엔 빠져 있다.
기독교 교리는 모든 피조물에 주어진 일반은총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특별은총을 구별한다. 이 특별은총 가운데서도 또 각자의 신앙체험의 내용과 양상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신앙생활하면서 또 인생살이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체험한 적이 있었는가? 다른 사람에게서 보지 못하였던 남다른 은혜를 받은 적이 있었는가? 만일 그런 것이 있었다면 그런 것들은 오늘 우리 생활에 어떻게 작용(적용)되고 있는가?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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