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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길, 문(文)의 종교성-『논어14권』 헌문편<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15>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8.24 13:13

<명구>
「憲問篇 41」: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헌문편 41  :자로숙어석문 신문왈 해자  자로왈 자공씨 왈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해석>
자로가 석문(노나라 성문 밖에 있는 지명) 근처에서 묶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십니까?” 자로가 말했다. “공선생 댁에서 옵니다.”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그 사람 말인가요?”

<성찰>
지난 번 자로편에서 ‘공자의 정치'에 대해서 살펴본 후 시간이 길어졌다. 그사이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여러 행사들이 있었고, 또 DMZ에서의 지뢰폭발사건, 남북 간의 긴박했던 위기상황 등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여전히 위험한 폭력시대, 군사와 무력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여기에 더해서 현직 대학교수의 투신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맞이한 한국 대학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文’과 ‘武’의 대립이 공자 시대의 그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우리는 그로부터 2천5백여 년 이후를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였던 김승혜 수녀는 자신의 책 『논어의 그리스도교적 이해』에서 이『논어』헌문편의 제목을 “폭력의 봇물을 다스리는 길”로 삼고서 소개했다. 참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47절로 구성된 헌문편에서 우리는 공자가 춘추전국 시대의 혼동과 무질서, 폭력의 난무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인문적(人文的) 대안을 제시하며, 그 길을 가고자 했는지를 살필 수 있다. 이번 편의 이름이 된 ‘헌문(憲問)’은 공자의 제자 중 한사람이었던 ‘원헌(原憲)이 공자에게 묻는다(憲問)’는 첫 문장에서 나온 것인데, 여기서 그가 물은 내용이 바로 인간의 ‘부끄러움’, 수치(恥)에 대한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많은 시사를 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봉록(祿, 봉급)을 받을 것이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봉록을 받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이 말을 오늘 우리 시대에 견주어 보면, 오늘 1대99의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시대에 정규직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거나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주변 다른 사람들의 삶은 언제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자신 삶의 안정과 안녕만을 관심하는 모습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맹자의 인간 심성의 ‘네 가지 기초적 감정(四端)’ 이해에 따르면 ‘부끄러움’이란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그것은 ‘의(義)’가 깨졌을 때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즉 부끄러움이란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갈 몫을 내가 불의하게 차지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므로, 오늘 정규직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열매를 내가 의(義)에 맞지 않게 가져오는 것이기 쉽기 때문에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고, 수치스러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으로서, 더군다나 배움을 추구하는 학자(선비)로서 그런 마음이 들지 않고 갖지 않는 것은 더 비참한 일이므로 공자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더욱 다가온다; “선비로서 편안하게 살기만을 생각한다면 선비라고 할 수 없다.”(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오늘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자율성 침해의 문제로 불거진 국립 부산대 사태로 자신의 몸을 던진 故 고현철 교수가 생각난다.

이번에 우리가 표제어로 삼은 말씀은 당시 정치가 극도로 혼란되어 있고, 전쟁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 공자가 그에 맞서서 대안으로 제시해 왔던 길과 노력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한 공자와 그를 따르던 일련의 그룹을 시냇가에서 긴 가지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능수버들의 ‘유(柳)’ 자(字)와 뜻이 통한다는 ‘유가(儒家)’로 불렀는데, 그런 공자의 방식에 대해서 당시 세상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먼저는 그 방식은 너무 유약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만을 추구하는 나약한 방식이라고 거부하거나, 다른 하나는 그러한 공자의 노력은 모두 쓸데없고, 오히려 그보다는 혼돈의 세상을 떠나서 자연과 무위로 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비웃는 입장이다.

   
▲ 구영, <자로문진>, 대북 고궁박물원
그런 세상에 대해서 공자는 말하기를, “이익(利)을 보거든 의(義)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험한 때를 당하거든 목숨을 내놓으며, 오래된 약속에 대해서는 평소에 한 말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고 하셨다. 자기의 사적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안녕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유지시키고 오래 사는 일에만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로부터 자유롭고, 인간 말의 행위와 약속을 참으로 귀한 인간적인 일로 여겨서 그 일을 통해서 사람 사는 세상을 회복하려는 공자의 염려와 고행과 분투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은  이라고 평한 말이다.

공자는 거기에 대해서 자신이 그렇게 동분서주하는 것은 “말재주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굳어져있고 고루한 것이 가슴 아파서”라고 했고, “옛날 사람들은 자기(완성)을 위해서 공부하는데(爲己之學), 오늘날 사람들은 남(의 인정)을 위해서(爲人之學) 그렇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의 난세에 공직에 있는 제자들에게 “속이지 말고 (임금에게) 거슬릴지라도 올바른 말을 하라”고 주문했고,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행동은 위엄 있게 하지만 말은 겸손하게”(危行言孫) 하라고 당부하면서 말대로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아서 말이 과해지지 않고, 부끄럽게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그런 공자 스스로도 이웃나라에서 무력 쿠데타가 일어나자 아주 조심스럽지만(“목욕재계하고”) 용기 있게 임금에게 나가서 그와 같은 불의한 폭력을 바로잡아 줄 것을 간했다. 그는 이미 은퇴했고, 이웃나라의 일이었지만 자신이 “대부(大夫)의 말석에 있었기 때문에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서)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不敢不告也)고 밝힌다. 그러한 일을 통해서 공자는 당시 자신의 노나라에서 임금을 누르고 실권을 휘두르며 불의한 일을 저지르고 있던 세 집안사람들(三桓, 孟孫, 叔孫, 季孫)을 빗대어서 비판했다.

공자는 그렇게 세상의 질서를 다시 세우고, 명분을 바로 하면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힘을 다했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인간적 길이 얼마나 힘든 것이며, 그 삶이 어떻게 곤고했는지를 다음과 같은 탄식에서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절망하는 탄식만은 아니었지만 그의 깊은 고뇌를 느끼게 한다. 그는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이 여쭈었다. “어찌하여 선생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으며, 아래로부터 배워서 위의 심오한 것까지 통달했으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저 하늘뿐일 것이다.”(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라고 하셨다. 그렇게 공자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일생동안 하늘을 믿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공자가 해석하는 ‘문(文)’ 이해가 이 장에서 독특하게 나온다. 우리가 보통 ‘글월문(文)’ 자(字)로 알고 있는 이 글자는 옥편에서 찾아보면 이외에도 문채문, 법문, 엽전문, 아름다울 문, 꾸밀 문 등으로 나온다. 즉 이 ‘문(文)’ 자는 인간이 모여 사는 삶을 이루면서 인간만이 고유하게 그려내는 무늬와 결을 지시할 때 쓰는 글자인데, 공자는 당시 위나라의 대부로 자기의 가신을 임금께 추천해서 자신과 동렬에 서게 한 공숙문자(公叔文子)를 칭찬하는 말로서 “그의 호를 문(文)이라고 할 만하구나!”(可以爲文矣)라고 하셨다.

이것은 당시의 신분사회에서도 인간 모두의 존엄과 평등, 정의를 인정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문(文)의 사람이고, 글과 말의 사람이며, 무력과 폭력 대신에 배움(學)과 자기성찰의 빛나는 사람인 것을 지시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문(文)이야말로 인간 삶의 참된 지향이므로 그 과정이 아무리 험난하고 오래 걸려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임을 말한 것이다. 공자의 길과 그의 참된 신앙과 종교성은 바로 이 문(文)에 대한 것이고, 그에 대한 믿음의 종교성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어떠한 조롱과 스스로도 숨고 싶은 유혹과 위험 앞에서도 그는 포기하기 않았고, 인간이 가야할 목표로 “자기를 수양하고서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修己而安人)는 것을 지시했다.

그가 그 도를 마음에 품고서 이 세상에 끝까지 발붙이고 서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자신의 목표 앞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데, 오늘 온갖 좌절과 차별, 몰이해 속에서도 이 인간적 인문(人文)의 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된다.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 것도 명(命, 운명/천명)이고, 그것이 폐해지는 것도 명(命)이다. 공백료(공자의 제자 자로를 참소하여 해하려는 자)가 명(命)을 어찌하겠느냐?”(子曰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其如命何.) 나도 그 길을 따라 가고자 한다.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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