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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 씨알사상과 도올에 관하여<박재순 칼럼>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8.28 14:54
한국근현대의 철학적 사유는 실학에서 시작되지만 민중의 주체적 자각과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것은 동학이다. 그 점에서 동학을 근현대 한국철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김상봉 교수는 도올 김용옥이 동학과 씨알사상을 계승하는 오늘의 철학자라고 하였다. 거리에서 민중과 함께 민중의 소리를 내며 시대를 비판하는 철학자라는 점에서 도올을 평가한 것이다. 
 
동학도 민중과 함께 실천한 철학이고 함석헌의 씨알사상도 민중과 함께 민중의 소리를 내며 실천한 철학이라는 점에서 도올과 연속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크게 보면 도올이나 김지하도 한국과 동아시아의 문화적 사상적 주체성을 가지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세계철학을 형성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동학과 씨알사상의 내용과 방향을 공유한다. 그러나 도올이 동학과 씨알사상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계승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동학과 씨알사상은 내용적으로 일치하는 점이 많다.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의 동학교리는 그대로 씨알사상에서도 내용적 연속성과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차이는 분명히 있다. 동학은 민중의 주체와 평등을 실현하는 종교철학으로 형성되었으나 맑은 지성을 일깨우는 민중교육의 측면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문과 부적의 사용이 의미가 깊은 것이지만 민중의 맑은 지성과 깊은 생각을 일깨우는데 장애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동학은 민중 주체의 종교와 철학으로 시작했으나 봉건왕조를 대체하는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갖지 못하고 민중의 교육과 훈련, 혁명을 위한 준비가 없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가 큰 실패를 보고 말았다. 현대무기를 가진 훈련된 일본군 2천명에게 수만 명의 동학군이 궤멸되고 동학혁명의 실패 후에 수십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5천년 민족사에서 동학혁명은 찬란하게 타오른 불꽃이었으며, 장엄하지만 통렬한 패배였다.
 
   
 
동학혁명의 눈부신 꽃이 시들고 떨어진 다음에 바로 이어진 것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안창호·이승훈의 민중교육운동, 삼일운동이다. 한 마디로 민중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우려는 민중교육운동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민중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어른과 어버이로 받들어 섬기는 교육운동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삼일운동에 이르렀다는 것은 동학혁명을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동학혁명의 실패에서 민중교육과 훈련의 필요가 얼마나 절실하게 확인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동학의 꽃이 지고 씨알의 싹이 튼 것이다.   
 
동학의 주문에서 시천주(侍天主)는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여겨진다. 시(侍)를 ‘각지불이(各知不移)로 풀이한 것이 흥미롭다. 내 나름으로 풀이해 보았다. 시천주는 천주를 모신 것인데 천주는 내 존재의 뿌리와 근원이라서 내가 천주를 떠나거나 버릴 수 없고 내 속에서 천주를 파내어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천주를 떠나거나 천주가 내게서 옮겨지면 나의 존재와 정신은 시들어 죽고 말 것이다. 사람은 각자 이 사실을 알고 끝까지 천주를 제 속에서 모시고 받들어야 할 뿐이다. 
 
동학의 강령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을 보거나 수운이 칼춤을 추었다는 것을 보면 천주의 신령함과 함께 기(氣)를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천주의 ‘시(侍)’와 씨알을 비교할 수 있다. 씨알은 속에 영원한 신적 생명의 불씨를 품은 존재다. 씨알은 생명의 껍질인 몸 속에 신령한 하늘의 생명(천주)을 모신 존재라는 점에서 씨알을 ‘시(侍)’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씨알은 하늘의 영원한 신적 생명(천주)의 씨알맹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씨알은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품은 존재일 뿐 아니라 그 생명 자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는 인내천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씨알이 스스로 깨지고 죽음으로써 하늘 생명의 씨알을 싹트고 꽃 피고 열매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깨지고 죽음으로써 터지고 피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씨알은 생명의 역동성과 진화, 초월과 진보, 쇄신과 고양을 나타낸다. 스스로 깨지고 죽는다는 점에서 시(侍)와는 다른 원리와 자세를 씨알은 지니고 있다.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p994@cho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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