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에 한낮은 도시 전체가 조용하다.  한낮의 더위가 도시 전체를 잠재우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터 오늘은 교회에 다녀와서 따이베시 시장에 가서 두부를 사와야겠다고 생각하였기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한낮의 땡볕 속에 모자를 눌러쓰고 길을 나섰다.

따이베시 시장은 딜리에서도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각종 곡류와 야채와 과일을 팔고 한켠에서는 집에서 기른 닭도 판다. 딜리에 와서 처음  따이베시 시장에 갔을 때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가지, 호박, 배추 등 온갖 야채가 이곳에도 있는 것이 신기했다.  또한 한국에서 흔히 살 수 없는 아보카도, 빨간색 바나나, 막 따온 것 처럼 싱싱한 파파야 등 열대 과일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그날은 풍성한 장보기로 행복한 마음에 시장을  나서면서 두부가게를 본 것이다.

두부는 한국 두부처럼 크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두부였다. 두부를 딜리의 대형마트에서도 본 적이 없었기에 시장에서 두부를 본 것이 너무 반가웠다.  두부 가게에는 곱게 생긴 젊은 여자가 좌판을 깔끔하게 해놓고 두부를 팔고 있었다. 두부를 보고 내가 너무 기뻐해서 그랬을까? 그녀는 내가 산 두부 봉지에 살그머니 두부 한 모를 더 넣어주었다. 생색도 내기않고 두부 한개를 덤으로 준 그 소박한 정에 감격하며 그날 따시베시 시장을 나선 후로 간간이 그녀 생각이 났다.

그 후로 다시한번 따이베시 시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땐 두부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따이베시 시장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기쁨이 더 컸기에 시장에 도착하자 마자 두부가게 부터 찾았다. 그런데 그녀는 보이지 않고 그날은 젊은 남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번에 있던 여자분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그사람은 자기 아내라며 아내는 집에 있다고 하였다.

당신 아내는 언제 나오냐고 하였더니 "오늘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녀에게 두부를 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남편에게 두부를 샀다.  "당신 아내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한국 할머니가 그녀를 찾았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나에게 자기 아내의 한국 친구라며 봉지에 두부 하나를 더 넣어주었다.

오늘도 시장통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두부 가게부터 찾았다. 그런데 가게의 부두통에 두부는 있는데 고운 그녀도, 서글서글한 그녀의 남편도 보이지 않았다. 좌판 앞에 두부가 있는 걸 봐서는 그녀가 곧 올 것 같아 시장통을 몇 바퀴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야채가게 앞에서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흔쾌히 좋다며  허락해 준 할머니가 고마워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은 아보카도를 열개나 샀다.  한국에서 먹던 죽순 같은 나물이 다섯단에 일달러 라기에 "나는 혼자 사니까 다섯단은 너무 많다" 고 말하며 세단을 오십센트 주고  산 것이 잘한 것 같아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시장통을 빙빙 돌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지금쯤 그녀가 오지 않았을까 싶어 그녀의 두부가게로 발걸을을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부는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는걸까...

장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셨다. 장날 어머니를 따라 간 시장엔 언제나 볼거리가 많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어머니는 한가지 물건도 몇번을 둘러보고 망설이시다가 필요한 물건을 사시곤 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육남매 그렇게 열식구가 아버지의 작은 월급으로 근근히 살고 있었으니 어머니는 무슨 돈이 있어 시장에서 사고 싶은 것을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좋아 하시는 것 부터 사시며 몇 바퀴를 돌면서 장보기를 마치면, 시장통 끝자락에 있는 떡전 골목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는 "배고프지 우리 떡 사먹자" 며 떡 좌판 앞에 앉아 콩고물이 달달한 인절미를, 어느 땐 참기름 묻혀 반발반질한 쑥절편을 그리고 어느땐 빛깔 고운 무지개 떡을 사주시면서 "우리 딸 많이 먹어'"라고 하셨다. 그렇게  장날 장에 가서 혼자 떡을 먹고 온 것은 어머니와 약속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비밀이었고 이 비밀은 가족에게 오랫동안 지켜졌다. 어느날 누군가의 고백으로 모두에게 각자의 비밀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기까지..

땡볕에 서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울컥하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떡전 좌판에 앉아 어머니가 사주신 떡을 오물오물 맛있게 혼자 먹으며, 어머니 입에 떡한조각 넣어 드린 적 없는 수십년 전의 철없는 막내딸 모습도 보였다.

다음에 따이베시 시장에 다시 갈 때는 호박범벅이라도 만들어 가서 두부가게 좌판에 앉아 그녀와 함께 먹어야겠다. 내 어머니와 보낸 어린날 시장이야기도 나누면서.. 다음엔 두부가게 사랑스러운 그녀를 꼭 볼 수 있겠지...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는 사람.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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