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웃종교 칼럼 연재
조선 철학과 서양 현대철학, 주체적 철학하기에 대해<박재순 칼럼>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9.15 09:14

나는 조선의 철학과 서양현대철학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주제에 관해서 깊고 정밀한 논의를 할 수 없다. 다만 씨알생명철학의 관점에서 나의 관점과 생각을 밝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이학(理學)과 서양의 로고스철학을 비교하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이학에서 과학과 수학이 상당한 정도로 심화 발전되었고 조선의 중기와 후기에 깊고 큰 사상과 철학이 형성되었다는 점도 공감하고 동의한다. 서화담과 퇴계와 율곡, 수운(최제우)과 혜강(최한기)의 높은 도덕과 인격, 깊고 큰 정신과 사상의 세계가 서양 근현대철학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장엄하고 위대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따라서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조선의 철학과 사상을 연구하고 서양의 근현대철학과 비교하고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와 연구를 하는데는 몇 가지 반성과 전제가 필요할 것이다. 먼저 16~7세기에 동아시아의 근대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관하여 말하고 싶다. 이 시기에 서양의 정신문화와 과학기술문화가 유입되면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 지배체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근대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국에서도 17세기 초부터 실학운동이 시작되면서 근대적인 사유와 정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희의 성리학이 신화와 미신의 잔재를 씻어버리고 합리와 이치에 충실한 이학적 사고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사고를 나타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근대적 사고가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성리학과 근대적 사고의 일치와 유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2500년 전에 자연철학자들이 신들의 개입이나 우연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인과관계와 법칙에 충실한 과학적 사고를 전개했고 로고스적인 개념과 이치에 충실한 철학적 사고를 제시했다. 합리와 이치에 충실했다는 점만으로는 근대성을 담보한다고 말할 수 없다.

   
▲ 다산 정약용(좌)과 혜강 최한기(우).
정말 근대성의 특징과 기준은 사유와 실천을 위한 개인의 주체적 자유에 있다. 서양에서 민중이 중세의 봉건적 신분질서에서 해방되고 종교적 교리와 주장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사유와 실천에서 개인의 주체적 자유와 의지가 확립된 것이 근대역사의 기준과 특징이다. 중세의 종교적 정치적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종교철학적으로 자유롭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개인의 주체와 인권이 확립된 것이 가장 중요한 근대성의 기준과 특징이다.

다산이 동양의 전통적인 사유체계인 불교와 도교뿐 아니라 성리학까지 철저하게 비판하고 거부한 것은 천인합일을 내세우는 전통적인 사유체계가 하늘의 전체적 질서체계에 개인을 편입 종속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전일적 사고에서는 스스로 하는 주체로서 개인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자유와 의지가 확립되기 어렵다. 다산은 자연적 하늘(天)과 종교적 신앙의 대상과 주체인 하늘을 구분하고 다시 인간과 하늘을 구분함으로써 인간이 종교적 하늘(상제)을 숭상하고 자연적 하늘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과학적 사유와 도덕적 실천의 주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천인합일과 범아일여의 일원론적 사고를 깨트리고, 개인의 의지적이고 실천적인 주체를 강조함으로써 다산은 근대적 사유의 세계를 열었다고 생각한다.

화담의 기학적 사고나 주희의 이학적 사고나 전체 일원론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날 전체 일원론적 사유는 생태학적 위기와 관련해서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생태학적 전체적 일원적 사고와 함께 스스로 하는 주체의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사고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럼에도 조선의 장엄한 이학적 전통과 기학적 사유가 깊이 연구되고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돈과 기계(기술)에 예속된 현대인의 정신과 사유는 얼마나 얇고 메말라 있나? 화담과 퇴계와 율곡, 수운과 혜강, 다산과 추사의 높은 정신과 기개, 심오하고 풍부한 사상과 철학은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깊이 연구하지 못했으면서도 그들의 정신세계와 인격을 잠시 스치기만 해도 정신의 자유와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분들이 이들의 정신과 철학을 연구해서 널리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이들을 깊이 연구해서 서양의 현대철학자들과 비교하고 대화하면 서양 철학자들과 학자들도 크게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철학자들과 철학에 대해서 깊은 반성과 문제의식도 가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조선의 철학은 한국의 근대화, 민주화에 참여하지 못했다. 실학운동은 다산(과 혜강)으로 맥이 끊겼는데 다산은 위대한 학자이지만 한국의 근대화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의 학문 활동은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선의 철학은 근대화의 역사적 강물을 넘지 못하고 역사의 저편에 머물러 있다. 민중의 현대역사와 사회형성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서양의 철학들은 근현대철학을 포함해서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사회를 형성하고 이끄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근현대에서는 철학과 사상이 역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것이 한국근현대사의 사상적 철학적 근본문제이고 사상과 철학의 빈곤과 위기를 가져왔다. 한국근현대 민중의 삶 속에서 태동되고 형성된 동학과 민중교육운동에서 닦여지고 형성된 씨알사상은 한국의 철학과 사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동학은 뒤늦게 학인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도 했으나 동학 운동 자체는 지난 150년의 역사 속에서 사상적 실천적 동력을 잃고 시들고 있다. 씨알사상은 아직 철학자들과 학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형편이다.

나는 씨알생명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제안하고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땅히 철학은 오늘 민중 씨알의 관점과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철학과 철학자들의 관점과 자리에서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문제의식과 관점에서 오늘 우리 역사와 사회, 민중 씨알의 삶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역사는 지금의 역사가 있을 뿐이며, 삶은 오늘의 삶이 있을 뿐이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지나간 과거(過去)는 말 그대로 허물과 잘못(過)을 지닌 것이다. 과거의 철학과 사상은 오늘을 위해 있는 것이다.

주체적인 철학은 오늘 민중 씨알의 삶의 주체와 전체를 드러내고 실현하고 완성해 가는데 기여하고 참여하는 철학이다. 주체적인 철학을 하려면 과거의 경전과 철학을 객관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의 경전과 철학을 바로 이해한 다음에 그것을 시대정신에 맞게 오늘 민중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경전과 철학을 새롭게 해석하는데 머물러서도 안 된다. 오늘 민중 씨알의 자리에서 민중 씨알의 소리로 새롭게 창조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주체적인 철학자는 오늘 자신의 삶 속에서 과거 경전과 철학의 내용을 ‘제소리’로 제 삶과 정신의 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철학을 공부하면서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철학한 유영모와 함석헌의 ‘제소리’에서 확인하고 배운 것이다. 또한 씨알정신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도 히브리성경(구약성경)에 대해서 주체적인 철학하기의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당시의 학인들인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들이 언제나 모세의 율법을 내세우며 모세에게 의존하려고 했을 때 예수는 “모세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예수처럼 히브리성경의 핵심내용을 잘 이해한 분이 없었지만 예수는 히브리 성경의 핵심내용을 그 시대 민중 씨알의 삶의 자리에서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제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씨알생명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경전과 철학은 씨알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드러내고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과거의 경전과 철학으로 낡은 개념과 논리, 체계와 방식으로 민중의 주체와 전체를 억압하고 속박하려고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과거의 경전과 철학을 깊이 연구하고 해석하되 오늘 민중씨알의 삶을 해방하고 완성하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성령은 오늘 여기 나(우리)의 삶 속에 살아계시고 경전은 오늘의 삶을 비추는 등불(照明)일 뿐이다.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p994@cho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