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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영성은 곤궁한 때라도 몸과 마음의 따뜻함으로 나타난다 -『논어15권』 위령공편<이은선의 집언봉사執言奉辭 16>
이은선(세종대교수) | 승인 2015.09.18 10:30

<명구>
「衛靈公篇 1」:在陳絶糧 從子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위령공편 1 :재진절량 종자병 막능흥. 자로온현왈 군자역유궁호. 자왈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해석>
진(陳)나라에 있을 때 식량은 떨어지고 따르던 제자들은 병이 나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자로가 화가 나서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군자도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자신을) 굳게 지켜 나가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함부로 행동한다.”

<성찰>
지난 번 헌문편에서 공자의 文의 종교성과 영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공자는 거기서 자신 시대의 폭력의 난무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운 방식(人文)으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셨고, 그 일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참된 인간적 사람의 깊은 신앙을 보여주었다. 이편은 그러한 공자의 믿음과 사랑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여러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55세가 넘은 나이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인문적 뜻에 따라 정치를 베풀어줄 현명한 군주를 찾아 나서고, 무려 십사 년 동안이나 전국을 주유한다. 오늘 우리가 15권의 표제 문으로 삼은 글은 그러한 가운데서 전쟁술에 대해서만 관심하는 북방의 대국 위나라의 영공에게 실망하고 떠나서 진나라로 들어선 후의 이야기이다.

목숨을 건 여행의 피로와 먹을 것은 떨어지고 제자들은 병이 나서 더 이상 일어서지도 못하는 곤궁한 처지에 빠져있을 때 그렇게 뜻을 찾아다니는 일이 너무 고달프고 힘이 들어서 화가 잔뜩 난 제자는 공자에게 항의한다. 군자(배운 사람)도 이렇게 곤궁한 지경에 빠질 수가 있는가 라고. 여기에 대해서 공자는 참된 선비와 거짓된 선비의 차이는 곤궁에 빠져있을 때 드러나는데, 참된 선비는 곤궁한 가운데서도 자신을 굳게 지키며 견디어내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 시대가 한없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공자는 때가 어려워지자 “덕(德)을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知德者鮮矣)” 라고 안타까워 하셨다. 혹자에 의하면 ‘덕(德)’이란 ‘득(得)’과 같은 것으로서 기독교의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과 유사하게 ‘하늘로부터 내가 받은 것’을 뜻한다. 즉 인간은 하늘로부터 덕이라는 ‘선물(a gift)’을 받은 존재이고, 그 덕을 통해서 하늘을 아는 존재이지만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곤궁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잊고, 또는 잃고서 함부로 살아간다. 그렇게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인 덕과 제일 유사하게 통하는 단어가 ‘인(仁)’, 인간성, 인간다움이다.

이 위령공편에 공자의 유명한 언어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공자는 “뜻을 가지고 사는 사람(志士)”과 “인간다운 사람(仁人)”은 “살기 위해서 仁을 해치는 법이 없고, 자기 몸을 죽여서라도 그 仁을 이룬다(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라고 하였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인간성을 지키려는 사람은 줄어들고 온갖 술수와 거짓과 폭력으로 자신의 인간성을 내다팔면서 목숨을 연장하고 눈에 드러나는 이익추구에만 몰두하는 세태를 지적하신 것이다.

   
▲ 중국 명나라 시기 그려진 공자상
“仁을 이룬다”, ‘성인(成仁)’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성공(成功)’ 지상주의 시대에 모두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언어이다. 공자 당시도 그의 제자 자장(子張)이 삶에서 어떻게 행하며 살아가야할지를 묻자 공자는 “말이 충실하여 신의가 있고, 행동이 돈독하고 진지할 것”(言忠信 行篤敬)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 제자는 이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자기 옷 띠 자락에다 적어놓았다”고 한다. 인간성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인 것이다.

이 편에 나오는 여러 대화의 장면들에서 우리는 당시 시대가 어떻게 인간다움과 너그러움을 잃고서 붕당과 패당을 이루며 서로 갈등하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공자는 자신의 시대를 한탄하며 예전에는 “역사를 쓰는 사람(史官)이 의심스러운 것은 쓰지 않고 비워두는 일과 말(馬)을 가진 사람이 남에게 말을 빌려주어 타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한탄하셨다. 이 말을 오늘의 의미로 풀어 보면,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역사가들이 과거의 사실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매우 신중하고 공정하여서 함부로 조작하거나 억지로 끼워 넣으려하지 않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할 경우 심지어는 과거의 시간까지 찬탈하여 그것을 자기 그룹의 의도와 이익대로 마구잡이로 다루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유난히 과거 역사서술이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논란이 많은 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느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시대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시사이다. 특정 그룹의 전횡으로 과거의 역사까지도 건드려진다고 하는 것은 그 그룹의 독점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고, 그로 인해 공동체의 가장 보편적인 밑둥이 흔들리는 것을 밝혀준다. 또한 말(馬)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한 가계에서 가장 큰 재산목록이 되었을 텐데, 그것도 필요한 사람이 요구하면 빌려줄 수 있을 정도의 너그러움과 나눔이 있었지만, 이미 공자의 때에 그러한 인간적인 신용과 약속의 풍속이 사라져 버렸고, 오늘 우리 시대에는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조차도 모두 법적 관계로 환원되고 있으니 더 말할 것이 없겠다.

공자는 이 편에서 인간 공동체의 삶에서 어떻게 패역과 완악을 넘어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다수가 인간답게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교육과 문화의 길이기도 하며, 더 근본적으로 종교와 철학적 물음이기도 하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많이 알고 방법에 대한 ‘지식(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너그러움(仁)’으로 지켜내지 못하면 반드시 잃을 것이며, 지식이 미치고 너그러움이 지켜지더라도 ‘장중한 자세(莊)’로 그것에 임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존경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다루는데 있어서 ‘예(禮)’로써 하지 않는다면 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것을 오늘의 의미로 해석해 보면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가 공적 책임을 맡아 권위로서 일 할 때, 또는 인간간의 관계에서도 결코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거기에는 인간다움과 인자함과 너그러움의 ‘마음(仁)’의 일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나 또 거기에서도 그쳐서는 안 되는데, 그 관계와 일이 지속적으로, 특히 다수와 관계하는 일일 경우는 그 인자함과 너그러움이 ‘장중하고 정중한 품격’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가르치신다. 이와 더불어 마침내 그 정중함이 단 일회의 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리추얼’로서, 즉 ‘예식(禮)’으로서 마련되어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인간다움을 기억하고 연습하여 습관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 마지막의 일이 종교와 예배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렇게 인간 세상의 일이란 단 한 번의 충격적 방식이나, 인자함과 너그러움의 감정의 일이 없이 차가운 이성의 방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셨다. 또한 그 감정의 일 은 다시 몸과 태도의 품격의 일로 표현되어야지만 지속적으로 인간다운 공동의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오늘 우리 시대 각 분야에서의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 모두에게 긴요한 ‘중용’과 ‘중화’의 가르침이다. 공자는 그런 자신의 도에 대해서 “나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고 있을 따름인 일이관지(予一以貫之)”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마디로 사람들이 평생토록 받들어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것은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이 ‘서(恕)’에 대한 말씀처럼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心)’도 ‘너와 똑 같다(如)’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 그래서 그 마음을 헤아려서 서로 용서하고 너그럽게 용납하면서 함께 살아가라는 지혜, 공자의 文과 仁의 영성은 이렇게 몸과 마음의 부드러움과 품격으로 표현된다.

이 편의 맨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자신의 도를 한마디로 서(恕)로 밝히는 공자가 자신을 찾아 온 한 소경 악사를 어떻게 응대하였는가를 그려준다. 그는 앞 못 보는 악사를 위해서 그가 계단 앞에 이르면 ‘계단이오’라고 말하고, 자리에 이르면 ‘자리요’하고 알려준다. 모두가 앉자 누구누구가 참석해 있다는 것을 일러주시는데, 악사가 떠난 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가 “그것이 악사와 이야기하는 방식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렇다 바로 장님 악사를 도와주는 방법이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공자는 자신의 도를 인간적 인자함과 품격으로 표현하였고, “가르치게 되면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의 구별이 없게 된다(有敎無類)”는 말씀으로 모든 사람을 향한 평등과 사랑의 마음으로 나타내셨다.

오늘 우리 시대의 종교와 정치, 경제와 교육, 문화가 이렇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을 꿈꾸어본다. “백성에게는 仁이 물과 불보다 더 소중하다. 나는 물과 불을 밟고서 죽는 사람은 보았으나 仁을 밟고서 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踏而死者矣 未見踏仁而死者也). 그렇게 仁을 탐구하는 공부에는 ‘녹(祿)’도 들어있다고 공자는 우리가 경제와 가난과 물질에 대해서 너무 염려하자 말씀하신다. “공부 가운데는 녹도 들어있다. 군자는 도를 염려하지 가난을 염려하지 않는다(學也 祿在其中矣 君子憂道 不憂貧).

이은선(세종대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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