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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미술의 역 진화<한신대 신대원 목요강좌3>
김령은 | 승인 2015.09.18 12:19

   
▲ 노성두 교수(인문학습원 교장)
한신대 신학대학원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목요강좌 ‘미완의 기획, 종교개혁을 돌아본다’, 세 번째 강좌가 열렸다. ‘종교개혁과 미술’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좌는 노성두 교수(인문학습원 교장)가 맡았다.

노 교수는 미술사적 측면에서 르네상스시대와 종교개혁 이후의 미술작품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종교개혁에 대해 설명했다.

노 교수는 먼저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성당 건축 양식이 중앙집중방식의 원형에서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진 직사각형으로 변화된 것에 대해 “고대부터 원형은 하늘, 사각형은 땅을 의미했기 때문에 원형 건축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었다. 그런데 가톨릭이 이교의 색채가 진하다고 생각해 건축 양식을 바꾼 것”이라며 이를 "베드로 대성당이 길어진 이유이자 원형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배경”으로 소개했다.

또한 티치아노의  <막달라 마리아>의 1533년작과 1565년 작을 비교하며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옷을 입기 시작했다”며 “이는 트리엔트공의회가 종교미술에서 누드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티치아노 <막달라 마리아> 1533 (왼쪽) ㅣ 티치아노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565 (오른쪽)

이는 이동희 박사가 소개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이 나체로 묘사되었다가 후에 옷이 입혀진 배경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노 교수는 시인 아레티노가 <최후의 심판>을 보고 일흔 살의 미켈란젤로에게 쓴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다.

“천사와 성인들은 지극히 고귀한 소재입니다. 그런데 당신 그림을 보면 지상의 진지함이나 천상의 엄숙함을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군요. 알만한 예술가라면 디아나에게 옷을 챙겨주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베누스도 손으로 가릴 곳을 가리게 하지 않나요? 그런데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그대가 예술을 구실 삼아 신앙을 깔보는군요. 순교자와 성스런 처녀들이 창피한 줄 모르고 넋 빠진 자세로 저마다 성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설령 유곽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쳐도 도저히 눈뜨고 못 볼 희한한 볼거리가 되겠군요. 이 그림은 교황의 성스러운 예배소보다 고급 목욕탕에 갖다 두면 어울리겠습니다.”

이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그림은 종교재판에 회부되기 까지 했으며 이후 옷을 입은 사진을 하나 더 그려서 벗고 있는 원본을 덮어 놓았다.

   
▲ 고야 <옷을 벗은 마하> 1799-1800 (위)ㅣ고야 <옷을 입은 마하> 1800-03 (아래)

노 교수는 “당시의 미술은 성화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대부분 나체로 표현되며 등장인물이 몸을 현란하게 꼬고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이 활용할 수 없었다”며 "위기를 느낀 가톨릭은 이탈리아 매너리즘 미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표적인 이탈리아 매너리즘 미술인 카라바조의 자연주의 작품을 소개하며 1601년에 그린 카라바조의 <바울의 개종>과 1527년부터 2년에 걸쳐 그린 파르미자니노의 <바울의 개종>을 비교했다.

   
▲ 카라바조 <다메섹 도상에서의 개종> 1601(왼쪽)ㅣ 파르미자니노 <사울의 개종> 1527-28 (오른쪽)

두 그림을 비교하면 파르미자니노의 기교가 더 강렬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기교에 매료되어 성경이 말하고자하는 교훈을 잊게 된다는 것이 가톨릭의 생각 이었다. 가톨릭은 기교가 없고 단순명료해서 성경의 교훈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카라바조의 그림을 더 높이 샀다.

카라바조는 배경을 어둡게 함으로써 보는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 그림 밖으로 밀려나오게 했다. 군더더기를 지우는 생략 기법으로 현장성을 강조한 것이 이탈리아 매너리즘 미술의 특징이다.

다양한 등장인물과 그들의 포즈, 손가락 형태, 풍부한 배경 표현하기 위해 그림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했던 르네상스 미술에서 단순히 성경의 교훈을 드러내는데 적합한 표현법으로 미술사는 발전했다. 당시에 ‘막달라 마리아 옷 벗기지 말 것, 베드로 대머리 표현 하지 말 것, 화가의 자화상이나 알만한 사람얼굴을 종교화에 넣지 말 것, 웃기는 그림,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제단화에 올리지 말 것, 순교의 육체적 고통과 잔인함을 강조 할 것’등 당시 화가들에게 권장됐던 사항들이 존재하기도 했다.

노 교수는 “이는 종교개혁에 맞서 가톨릭을 재정비하려는 노력의 영향으로 미술이 역 진화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자유로운 묘사방식, 화려한 기교, 표현 방식이 억압당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편 강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안토니오 코레아 논쟁’에 대해 소개했다.

   
▲ 루벤스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기적> 1506-1552 (가운데 노란색 옷이 안토니오 코레아)
‘안토니오 코레아’는 루벤스의 1717년 작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기적>에 등장하는 한 동양인으로 16세기말(1598년) 왜구에게 잡혀갔다가 이탈리아 상인의 눈에 띄어 나가사키에서 인도, 희망봉, 피렌체를 경유해 로마에서 루벤스의 그림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극적인 드라마에 대해서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다수의 소설, 영화, 오페라, 다큐 등에서 다루어졌고 곽차섭 교수(부산대 사학과)의 책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를 통해 구체적인 증거들이 제시된 바 있다. 주장의 근거로는 그가 조선의 방건과 철릭을 입고 있다는 것인데, 노 교수는 이에 대해 “그것은 조선의 방건의 모양과 일치하지 않으며 조선의 철릭 보다는 중국의 의복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안토니오 코레아가 조선인 보다는 중국인일 것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들과 정황들을 제시해 곽 교수의 주장을 정면 반박함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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