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앞에 두고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해지면 때로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작은 오렌지 껍질을 까서 불 속으로 던지며 피어나는 푸른 불꽃을 응시하곤 했다. 일어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걱정 마. 넌 전에도 썼고, 지금도 쓸 거야. 지금 중요한 건 먼저 제대로 된 한 문장을 쓰는 거야. 네가 아는 한 가장 제대로 된 문장을 쓰는 거야.' 마침내 나는 제대로 된 한 문장을 써냈고 거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었다."
 

- 헤밍웨이가 첫 문장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남긴 말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어제 광화문 광장을 지났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서 세월호 천막을 바라보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질 뿐 아무런 생각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 옆의 사내 둘이 나누는 대화가 귓가에 확 꽂혔다. "국가가 뭘 해주길 계속 바라는 게 좀 그렇지 않아." "그러게 말이다." 나는 번듯하게 양복을 입고 있는 그들을 곁눈으로 보며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속으로도 아무 말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저들은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는 말인가. 길을 건넌 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매 순간 내뱉는 첫 마디나, 매 번 글 쓸 때의 첫 문장이나, 그것은 오로지 세상을 보는 그의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헤밍웨이가 우리의 마음에 오래 남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진중함 때문이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리 없이 사라지는 그 많은 글들은 혹 가벼움 때문이 아닐까? 진정 삶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무뇌아적인 사고의 소유자들. 나도 혹 그런 부류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 이 아침 광화문 풍경이 순간 떠오르지만 역시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슬플 뿐!

▲ 김서정 작가 1966년 강원도 장평에서 태어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2년 단편 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소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어린이 인물 이야기 《신채호》, 《김구》, 《마의태자》 등을 썼고, 북한산 산행기로 산문집 《백수 산행기》, 먹거리와 몸을 성찰하는 에세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다이어트》, 평화 산문집 《분단국가 시민의 평화 배우기》, 글쓰기 강의인 《나를 표현하는 단숨에 글쓰기》를 지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출판 편집일과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김서정 작가  kimsj44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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