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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문한국기독교장로회 100회 총회 신학생 순례기
조한신(한신대 신대원) | 승인 2015.09.21 11:13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은연중에 했던 기대는 서광의 끝자락이 채 닿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다. ‘언약궤’라는 단어가 언급된 순간 ‘100회를 맞아 대화까진 아니어도 그 가능성’은 열릴 거라 믿었던 어린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고, 나아가 의도치 않게 총회의 첫 순서인 ‘예배’에서 ‘주요문서 봉헌’을 맡아 그 설명을 들은 후(그 생소한 단어의 정체를 알고 난 후) 다시금 경악해야만 했음을 고백한다.

굳이 평을 하자면, 잘 만들어진 언약궤에 각 노회장님들의 손에 들린 여러 아름다운 단어들이 결합된 후 그 안에 사전에 준비되고 협의된 문서를 넣고 문서가 담긴 언약궤를 봉헌하는 예식은 정말이지 ‘교회’라는 단두대에 ‘신학생이라는 목줄’이 걸려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런 개인적인 감상과 별개로 예식 자체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웠고 경건했다. 언약궤 위, 두 십자가 사이에서 애처롭게 타는 초가 기장(한국기독교 장로회)의 미래를 짊어진 것 같아 안쓰러웠던 것을 제외하면 예식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더없이 “훌륭했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7년이라는 학교와의 인연을 통해 학습된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름답고 훌륭했던 예배 요소들과 기나긴 소요 시간, 복잡한 예전들은 마치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숨 막혀보였다. 그 어디에도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이 기리는 ‘만우’나 ‘장공’ 같은 이들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히 확언하건대 그 예배에는 ‘우리’만 존재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물음이 가득한 예배 안에서 나는 ‘기장에 속한 신학생’이라는 목줄을 다시금 어루만졌다.

지금의 기장 현실은 돌아보지 않고 앞만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화려함에 젖어 이미 그 화려함을 포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게 아닌 가 염려할 때쯤, 소위 말하는 ‘귀빈 소개’가 이어졌다. 기립과 박수의 향연. 위상을 드러내고, 성과에 대한 인정을 아끼지 않는 자본주의적 경영론. 목줄을 끊고, 단두대 아래로 내려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외치고 싶은 맘을 달래며 작은 소망을 품었다.

‘내일은 다르기를’

나는 일정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어리석은 학생인 게 분명했다. 신도대회인지 음악회인지, 가진 힘의 과시인지 모를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후에야 알량한 ‘학회장’이라는 직분 덕분에 일정을 알게 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주제 강연 이후, 신학생들을 기다리는 게 ‘명예로운 100회 총회 참관’이 아니라니! 우리는 도대체 왜 그곳에 있어야 했던 걸까? 수업을 취소하면서까지 ‘기장의 미래’라는 허울 좋은 관모를 눌러쓴 ‘목사후보생’에게 선배들이 보여주고 싶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교수님들과 주제와 관련된 논의를 하고, 학생들끼리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나눌수록 회의감은 짙어졌다. 위에서는 기념비적인 회의가 진행되고 있고, 기저에서는 회의적인 토론이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과연 ‘희망’은 존재하는가? 정말 우리는 ‘성찬의 깊은 뜻’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가? 한 번, 두 번 대화가 오갈 때마다 요즘 학교에서 목요일마나 진행하는 특별강좌 제목이 점점 더 선명한 색채로 채워질 뿐이다.

“미완의 종교개혁” 그 말이 가깝게 다가왔다. 그것은 정말 안타깝게도 신학적인 의미나 종교학적인 의미를 끌어들이기도 전에 이미 ‘현실’이었다. 이제 신학생이라는 줄을 목에 걸고 있음을 체감하며 의미를 되짚어본다. 우리에게 ‘성찬’은 정말 가능한가? 진실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예수’는 기억하고 있는가?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땅’이 필요하다. 진보란 그런 것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알아주는 것. 쓸모없는 그것이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머나먼 과거’만을 추억한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갈 곳도, 걸어온 자취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찍혀있는 ‘발자국’만 강조하며 앞으로 찍히게 될 ‘발자국’만 강조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기장)는 ‘백척간두 진일보’를 ‘진보’라고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가리고, 모든 ‘진보’를 ‘백척간두 진일보’로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기장은 총회 100회기를 맞이했다. 나는 이 100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회기’에 머무르지 않기를 소망한다. 앞에 다가온 새로운 100년에서 기장이 진정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길잡이’가 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 눈 먼 자가 되기 위해 쓴 안대’를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나는 ‘기독교장로회’라는 단두대에 서서 ‘신학생’이라는 목줄을 건 사람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굉장한 특권이다. 단두대로 들어오는 문은 지나치게 좁다. 그리고 이 단두대에서 살아 내려가는 문은 더더욱 좁다. 지난 세월이 만들어 낸 ‘기준’이라는 이름의 문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안대를 하나씩 더해야만 한다. 보아도 못 본 것처럼,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분명, 이번 총회는 아름다웠다. 다만 그 지나친 아름다움으로 인해 내 눈에 안대가 있음을, 목에 목줄이 있음을, 내가 서 있는 곳이 단두대 위임을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행하여 기억하라”는 그 한 마디가 눈을 열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가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꿈꾸는 ‘미래’로 가는 문이 발아래 있음을 확신한다. 부디 안대를 벗고 주님을 마주할 용기가 남아있기를.

조한신(한신대 신대원)  rainkro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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