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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ega(친구)<말리의 늦게가는 세상>
임정훈 | 승인 2015.09.21 16:00

태국 치앙마이에 살때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마이뻴라이"라는 말이다. 내가 살던 주인집 빠순분씨는 모든게 서툰 나에게 " 마이벨라이 마이벨라이" 라고 말했다. 한번은 방으로 뱀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무심코 쳐다본 방 한구석에  뱀이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뛰쳐나가 밖에 서서 울고 있을 때 , 학생들이 방으로  들어와서 뱀을 잡아주고 나를 토닥이며 하던 말도 "아짠 말리 마이뻴라이" " 선생님 괜찮아요"였다. 치앙마이를 떠난지 수년이 지났고 그나마 조금 사용하던  태국어도 까마득히 잊어 버리며 살고 있지만 힘들 때마다 " 마이뻴라이, 괜찮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로  여전히 남아있다.

중국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했던 말은 "你吃了吗? ( 니 츨러마? )였다. 수업을 하기 위해 나서는 길가엔 언제나 할머니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분들께 "您好" (닌 하오) 라고 인사드리면 어르신들은 나에게  " 老师, 你吃了吗?" (라오쉬 니 츨러마 ? ) 라고 대답했다. 내 단골인 채소가게 아저씨도, 쌀집 부부도, 과일가게 아줌마도, 미장원 총각도 나에게 하는 말은 언제나 "니츨러마?" 였다.

안휘성 한 귀퉁이, 펭양 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여자에게 그들은 "니츨러마?" (밥 먹었어요?"라며 관심어린 마음을 보내줬고 그말은 중국 생활을 그리워 할 때마다 따뜻한 정으로 가슴에 잔잔하게 남아있다.

지금 나는 동티모르의 딜리에 살고 있다. 딜리는 바닷빛이 고운 동티모르의 수도이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바닷가를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아이들이 나를 보고 달려오면서 "꼴래가 꼴레가" 하며 손을 흔든다. "꼴레가"는 떼툼어로 친구라는 말이다. 그날 동티모르에 와서 아이들로부터 "꼴레가"라는 말을 처음 들은 후로 나에게는 많은 꼴레가 들이 생겼다.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 경비원 또띠는 21살 청년이다. 다른 경비원들은 모두 일상복을 입고 근무를 하지만 또띠는 언제나 하늘색 경비원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근무를 했다. 어쩌다 어학원이 아닌 길가에서 또띠를 만나게 되면 또띠는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두손을 잡는다. 경비원 꼴레가는 또띠 외에도 나만 보면 태툼어를 하나라도 알려주려고 "이것은... 다, 저것은... 다"라고 말하는 마누, 삐뚜. 프란시스코가 있다.  또한  뿔샤 (전화카드)를 파는  젊은아빠도 길가에서 만나는  나의 꼴레가이고, 주인집 일을 도와주는 로자도 나의 꼴레가이다.
 
   
 
며칠 전 바닷가에서 한 꼴레가를 만났다.  해몰이를 보기 위하여 바닷가을 걷고 있는데   "여보세요" 하고 부르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아 뒤돌아 보았다. 한 청년이 바닷가에 앉아서 나를 보고 아는체를 하였다. "한국말을 한 것 같은데 ..'"라고 하였더니 그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한 핸드폰 공장에서 핸드폰 조립하는 일을 하다가 몇 달전에  돌아왔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집을 지어드리고, 지금은 딜리 대학 앞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학생들에게 복사를 해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한국 사장님이 다시 들어와서 일을 하라고 지금도 연락을 하시지만 이제 딜리에 가게를 잘 운영하며 함께 살고 있는 동생들 공부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제  가게에 한번 오세요"라고  말하는 스물 네살 "본비노"라는 이름을 가진 꼴레가에게 "한번 가게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21한 살의 어린나이에  한국이라는 먼 이국 땅으로 돈을 벌러 가서 사장님이 다시 찾을 만큼 성실하게 일하며 쓰고 싶은 돈 쓰지 않고 모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번듯한 집을 지어 드리고 동생들을 공부 시키고  있는 본비노. 본비노와 헤어져 바닷가를 걸으면서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른체  내입에서는 자꾸만 "거 참 녀석.. 그녀석 참.. "이라는 말이 나왔다.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꼴레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그뿐이라니...

동티모르는 450년 동안, 포르투갈로 부터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로 부터 독립하자마자 인도네시아로 부터 지배를 받았고 2002년 독립하여 주권을 찾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동티모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딜리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이방인 이라고 하지 않고 "꼴레가"라고 하며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태국 사람들에게 "마이벨라이"라는  위로의 말을 들으며 살았고, 중국에서는 "니 츨러마"라는  관심어린 말을 들으며  살았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나를  "꼴레가"라고 불러주는 이들에게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잘했어요" 라고 말하면 좋아하며 함께 "잘했어요" 따라 합창하는 말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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