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에서 방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딜리에는 부동산이라는 것이 없다. 부동산이 없기에 연고가 없으면 빈방이 있다는 안내 문구를 대문에 붙여 놓은 집을 찾아 들어가 묻거나, 동네를 다니며 빈방이 있을 것 같은 집에 들어가 방이 있는냐고 직접 물어봐야 한다.

나는 언제나 바다가 좋았다. 그래서 딜리로 올 때 꼭 바닷가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출근 길엔 바닷가 야자나무 아래 서서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싶었고,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엔 바닷가를 거닐며 하루를 정리하고 싶었다.

딜리는 도시가 바다와 접하여 있기 때문에 바닷가에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방을 구하다보니 마땅한 방도 없었을 뿐더러 어쩌다 빈 방이 나오더라도 계약조건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을 발품 팔며 고생만 하다가 바닷가에 살고 싶다는 내 의지를 내려 놓기로 하였다.

땡볕에 며칠을 더 동네를 돌아다니며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동티모르 사람이 주인인 집에서 동티모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싶었는데, 마침 주인집은 동티모르의 전형적인 대가족이 살고 있었으며, 학교를 다녀 온 주인집 손주들이 마당에서 뛰어 노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리는 집이었다.

내가 지내게 될 방은 햇볕도 잘들고 부엌 창문 밖으로 파파야 나무가 보여 더 좋았다. 그동안 다니며 본 집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이사와서 첫날, 짐을 풀고 평안한 마음으로 딜리에 튼 내 둥지에서 잠이 들었다.

불과 몇시간을 잤을까? 뭔가 요란한 소리가 곤한 내 잠을 깨웠다. 잠에서 깰 때는 무슨 야생 산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같이 들렸는데, 깨고 보니 닭들이 온 힘을 다해서 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동 터오르는 이른 새벽 "꼬끼오"하며 새벽을 알리는 그런 청좋은 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 동네 개들까지 합세해서 짖어대니 조용한 건 사람 뿐이었다.

네시경 부터 그렇게 새벽을 외치던 닭소리는 출근을 할 때까지 지치지도 않는지 목청껏 사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밤 새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나 닭소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고, 집 주변 닭들 소리도 시끄러웠지만 특히 내가 잠자는 방 뒷집 닭들이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뭔가 속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주인집에 대한 원망이 들었으며, 원망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하소연으로 바뀌었고, 이런 복병이 숨어있는지 모르고 집을 선택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였다.

"닭소리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지금이라도 방을 빼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그렇게 까지 한다는 것은 야속한 태도 같았다.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지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때 갑자기 번뜻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제일 시끄러운 닭부터 사서 매주 한마리씩 요리를 해서 먹으며, 뒷집 닭을 없애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닭주인은 닭을 팔아서 또다시 병아리를 사겠지만 병아리가 크는 동안은 조용 할테고, 설령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된다해도 그때는 또 내가 사서 요리하면 되니까.

내 발상에 기뻐하며 집주인 베띠를 찾아가 "뒷집 닭을 사고 싶어요. 매주 한마리씩 살테니 닭털은 뽑아 달라고 뒷집 닭주인에게 말 좀 해줘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 제안을 들은 베띠는 단호하게 말했다. "뒷집 닭은 싸움하는 닭으로 키우는 거라 팔지 않는다"고. 나의 발상은 베띠의 일언지하에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저 닭소리 때문에 이른 새벽 단 잠을 망치며, 아침부터 화를 내며 하루를 시작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나는 또다시 기특한 생각을 해냈다. "닭이 잘 때 나도 자고, 닭이 깨면 나도 일어나는 거다.", " 알람이 필요없네. 그래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좋은 습관도 생겨 좋고, 아침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다음 날 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애썼고, 닭이 깨면 함께 일어나려 노력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쩌다 보니 닭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다. 닭소리가 들려도 그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나는 새벽잠을 즐기고 있었다.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잘도 자는 아기처럼,나는 이렇게 이들의 삶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동티모르로 들어오면서 동티모르 사람들을 존중하고,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동티모르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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