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월) 오후6시 이제홀에서 한국민중신학회 10월 세미나가 '유영모와 민중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발제는 김희헌 목사(성공회대 연구교수, 낙산교회 담임)가 맡았다. ⓒ에큐메니안

다석 유영모의 종교사상은 민중신학에 어떤 자양분을 줄 수 있겠는가? 김희헌 목사(성공회대 연구교수, 낙산교회)는 민중신학이 한국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상황신학으로서가 아닌 기독교 신학의 새로운 사유체계로서 유영모의 한국적 범재신론과 어떤 대화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했다.

5일(월) 오후6시 서대문 이제홀에서 진행된 한국민중신학회 10월 세미나에서 김 목사는 민중신학 초기의 사상적 유산을 ‘한국적 범재신론’과 ‘실천적 수행종교’로서의 가능성을 다석의 사상과 대비해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우리 시대가 맞고 있는 문명의 위기는 ‘역사’에 관한 ‘정치적’ 관심사를 넘어서 삶의 방식 자체의 전환을 요청한다”며, “민중신학이 다석 사상과 이어질 때, ‘정치신학’으로서의 역할을 맡는 동안 신학담론의 밑에 잠겨왔던 종교사상적 자산을 발굴해 키우는 기회를 얻게될 것”이라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 김희헌 목사. ⓒ에큐메니안

민중신학에서 ‘한국 신학’이 가져야할 고유한 한국적 사유체계를 김희헌 목사는 안병무의 ‘사건론’과 서남동의 ‘합류론’으로 대답한다. 기존의 서구적 신학방법론에서 벗어나 사유체계 전반의 시각을 전도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안병무의 사건론과 서남동의 합류론은 정치윤리적 비판사상으로만으로는 모두 환원될 수 없는 거대한 사유체계를 암시한다”며, 이는 “기독교 사상을 한국적 전통과 사유 속에 담아내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적 사유의 지평이 확대되지 못했다는 것이 김 목사의 평가이다. 그는 “민중신학이 정치신학에 자신의 담론을 국한시키며 ‘기독교 신학’으로서의 총체적 면모를 결여한다면 사상의 건전성을 잃고 말 것”이라며, “총체적 면모는 ‘인간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정신의 자격”이라고 정리했다.

유영모의 수행적 범재신론: 하나님, 인간, 신앙

김희헌 목사는 다석의 하나님 이해를 ‘없이 계시는 아버지’로 소개했다. 다석에게 허공, 즉 빈탕을 사물이 존재하는 근원으로 보고, 이를 ‘절대공’이신 하나님으로 읽어냈다. 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유방식에 비해 있음의 ‘존재근거’를 없음에서 찾는 역설적인 사유방식이며, 현재적 있음의 ‘이유와 의미’를 끝없이 물어서 그 해답을 없음(비움)에서 찾는 수행적 사유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는 “존재하는 만물의 뿌리인 하나님과 연합하는 삶에 대한 촉구, 즉 종교적 삶을 인간 삶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로 보는 수행적 관점으로 정립된다”며, 이러한 수행은 “‘있음’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행위, 욕망으로 일그러진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정진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김 목사는 다석의 ‘없음의 신론’이 민중신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그것은 “지배자, 엘리트 중심의 세계관에서 민중 중심의 세계관으로 전환하는데 근원적인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민중신학적 영성을 위한 토대로 구상할 것을 주문했다.

다석은 인간 이해에서도 ‘없이 계신’ 하나님과 인간의 ‘덜 없는’ 모습을 대비시킨다고 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과 하나되는 삶이라면, ‘없이 계신’ 하나님에게 가기 위해 ‘덜 없는(더러운)’ 인간은 ‘다 없을 때까지’ 나아가는 삶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으려면, ‘덜 없는’ 자신을 ‘깨’뜨리고, ‘끝’내서 ‘깨끗(끝)’해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적 회심이 낳은 삶의 진실이요, 탄식하는 피조세계를 살아가는 깨끗한 인간의 생태적 삶”이라고 설명했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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