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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지극히 위대하시다 (15:1-6)<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26>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10.07 14:59

프레트하임은 출애굽기 1-15장이 탄원시 곧 개인 또는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끼면서 지은 시들의 형식에 따른다며 다음과 같이 이 부분을 살펴보았다. (162; Hamilton 225)

i) 위기에 대한 서술과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1-2장)
ii)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개입 (3:1-7:7)
iii)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향하심에 대한 서술 (7:8-14:31)  
iv) 찬양 (15:1-21)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5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출 15장은 이집트의 경험이 찬양 및 광야 여정으로 가는 건널목이다. 출 15:1-21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감격을 노래와 춤과 시로 노래하였다. 시 형식으로 된 이 노래들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인상 깊은 것이다. (J. G. Herder 1022 ) 이것은 모든 시들의 왕관이며,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심판자요 도움을 베푸시는 분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노래인 것이다. (Jabob 428. Utzschneider 332에서 재인용) 이것은 흔히 모세의 노래 또는 바다 (기적)의 노래라고 불려진다. (2-6, 7-11, 12-18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노래와 춤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이것은 출 14:26-31을 바탕그림으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은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1절) 로 시작하여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1:18)로 끝났다. 이 두 노래의 주제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는 승리의 당사자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짜임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Utzschneider 333)

1b-2 찬양을 시작함 (여호와를 구원자로 노래하려는 의지를 표현)
3-11 하나님은 승리하셨다.
    3-6 파라오의 군대를 홍해바다 속으로 잠기게하셨다
    7-11(12) 여호와께서 자신의 적대자들을 물리치셨다
12(13)-17 여호와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
    13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신다
    14-16 그 백성이 길과 민족들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1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자신의 거처(성소)로 끌어들이셨다
18 찬양을 마침(하나님이 다스리신다)

   
▲ 홍해바다 사건 (? 앗시리아 아슈르바니팔의 궁정벽화, 니느웨)

출애굽기 15:1-6은 두 부분 곧 감사의 노래(1b-3)와 찬양할 내용 묘사(4-6)로 이루어진 찬양시 형식이다.

1절의 첫마디는 아즈(°¹z = 그 때)이다. 시간을 나타내는 이 부사는 가슴 벅찬 감격과 감동을 노래할 때나 역사를 기록할 때 자주 쓰였다. (수 10:12; 삿 5:8, 11, 13; 왕상 8:1)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바다 사건을 경험한 바로 그 날 노래와 춤과 시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노래는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노래하리라' (아쉬라 르야ㅎ웨 °¹širâ l®jhwh) 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그 동사가 1인칭 남성으로 되어 있기에 약간의 혼동이 올 수도 있다. 그 주어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 곧 복수형이기 때문이다. 주어가 여러 개 나올 때 (특히 그것이 집합, 집단일 때) 그 중 맨 앞에 있는 것에 맞추어 동사형이 단수 혹은 복수로 결정되는 것은 히브리어에 흔히 있는 일이다. (창 8:22; 21:32 등 참조, Hamilton 222)

‘노래하리라’로 옮긴 말(šîrâ)은 흔히 권유형이라 부른다. 1인칭으로 된 이것은 (cohortative) 자신의 의지나 결심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1-6절에는 여호와란 명칭이 여섯 차례 되풀이 나왔다, 인칭대명사로 표현된 경우를 빼고도. (1-21절에 10번) 야와(단축형)과 엘(엘로헤 = 하나님)이란 호칭도 2절에 각각 한번씩 쓰였다. 이는 이 찬양의 주제가 여호와 하나님게서 하신 일이라는 뜻이다.

1a에서 숨을 고른 다음 바다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포함하여 그 가사가 바로 뒤이어 1b부터 나왔다. '이는 그분이 지극히 높으시기 때문이로다. 말과 (진실로) 그 탄자들을 바다에 내던지셨도다' 라고. 이 노랫말은 홍해바다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아주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요약하였다.

개역개정에 ‘높고 영화롭다’는 말은 까아 (gg¹°â) 동사의 부정사 절대형(g¹°ô Inf. abs)과 완료형(AK)으로 나란히 쓰여 그 뜻이 한층 강화되었다. (진실로 그는 영화롭고 또 영화롭도다 LXX evndo,xwj ga.r dedo,xastai = 그는 영화롭고도 영화롭도다) 이 말은 일어서다, 성장하다, 승리에 환호하다는 뜻이다. 이는 그림언어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집트 군대 위로 거센 파도처럼 일어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리고 그들을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드시는 모습도. 이런 뜻에서 본문은 홍해 바다에 이는 높은 파도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동시에 교차시켰던 것이다.

2-5절은 이 체험에 바탕 한 신앙고백을 그 내용으로 하였다. 그 핵심은 ‘(나의) 노래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의 하나님 ... 그리고 전사(戰士)’이다. (2-3a) 이것은 매우 박진감 있는 노래형식으로 되어 있다. 2b와 3b 소절을 빼고는 모두 다 낱말 3개로 이루어져 있다:

2a 앗지 붸지므라트 야흐 (±œzzî w®zimrat j¹h 나의 강함과 찬양은 여호와)
2b 봐예히-르예수아 (그리고 그 분은 나를 위한 구원자)
2c 제 엘리 붸아느붸후 (이 분은 나의 하나님 그리고 나 그분을 찬양하리)
2d 엘로헤 아비 봐아로메메네후 (내 아버지의 하나님 그리고 나 그분을 높여드리리)
3a 야ㅎ웨 이쉬 밀하마 (여호와는 전쟁의 남자)
3b 야ㅎ웨 쉐모 (여호와는 그의 이름)

강함이라 옮긴 말(±œz)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곤 하였다. i) 힘(강함) 또는 피난처 (창 49:3; 출 15:13; 시 29:11; 68:35) ii) 찬양 경배(시 81:2; 98:5; 암 5:23) 2a을 번역할 때 개역개정은 여호와란 이름을 (여기서는 축약형인 야흐로 나옴) 맨 앞에 놓았으나 히브리성경(MT)에선 맨 뒤에 있다. 2b에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조상)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여기에는 역사의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였다는 고백이 들어 있다. (개인화?)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에 오랫동안 계속 이어 내려온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필연이라는 뜻이다. 출 1-14장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켜 그대로 실행하셨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이란 말에는 영적으로 수많은 사연이 들어 있는 것이다. 2d에 쓰인 높인다는 말(rûm)에는 찬양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시 30:2; 34:4; 99:5, 9 등)

전쟁의 사람(남자)란 여호와는 전쟁에 참여한 군사 하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3a) 그분은 구원의 계획에 따라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레 26:25; 신 28:22; 사 1:20 등) 그치게도 하는 분이다. (사 2:4; 호 2:18) 성경은 이를 놓고 그분은 전쟁에 능하며(시 24:8)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삼상 17:47) 칠입인역(LXX)에서 이 부분은 “ku,rioj suntri,bwn pole,mouj” (주는 전쟁을 부수시는 분) 으로 하였으나 굳이 그런 제안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하면서도 군대와 무기를 보유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 여호와가 그들의 전사셨다. 4-5절은 그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4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던 이집트를 파라오의 병거와 군대, 최고의 지휘관으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그들을 바다로 던지셨다. (j¹râ) rm 결과 그들은 마치 돌처럼 바로 그렇게 (k®mô °eben) 바닷물에 잠기게 되었다. (‰¹b±â) 그들은 바다에 가라앉았다. (출 15:16. 그리고 10절의 ‘납같이’ 참조) 그 때 깊은 물이 그들을 덮었다. (kk¹sâ) 덮다는 뜻의 이 동사는 바다의 노래에 여러 차례 쓰였다. (7, 10, 12, 15, 17절) 일부 학자들은 깊은 물(테호모트 ← tt®hôm)를 바빌론 혼돈의 여신인 티아맛이란 말과 그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뿌리를 거기서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문자 그 자체대로 해석해도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5절의 트홈은 메촐라(m®șôlâ, m®șûlôt = 깊다, 깊음)와 비슷한 말이다. 이 낱말들은 깊음(深淵)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세계의 경험을 초월하는 초자연-우주적인 지평을 가리킨다. 이로써 바다의 노래는 더 이상 홍해바다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셰올과 같은 지하세계 (이를테면 요나서 2:4-7) 곧 인간이 상상하는 우주적인 깊은 바다를 뜻하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을 전사라고 부르는 이 바다의 노래는 우선 홍해바다를 다스려 이스라엘을 위해 홀로 싸우시는 인간적인 모습의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출 14:14, 25)

아마 이사야 42:13에서 찬양한 바로 그 모습일 것이다. 이제 여호와의 손을 매개체로 하여 출 15:6은 출 14:13이하와 14:31이 한 줄로 꿰어지는 신앙을 보여주었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그와 동시에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약자와 억압당하는 자를 위한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신학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Anderson 294, Utzschneider 334)

6절에 주의 오른손이라 옮겨진 말(j¹mîn)은 본디 오른쪽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오른손을 가리킬 때도 있었다. 특히 본문처럼 이것이 두 번이나 되풀이 쓰이고 적대자로부터 하나님의 손을 구원하시는 행동을 나타낼 때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호와란 명칭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분은 약속(언약)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똑똑히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기쁜 마음으로 여호와 그 이름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1절 뒷부분에 이어 6절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또다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바다의 노래 첫째 연의 끝은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오른손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말인데 여기서는 힘(kœ­µ =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 다시한번 쓰였다. 부수다는 말(r¹±aș)은 구약성경에 단 두 번만 쓰엿다. (삿 10:8) 이것은 매우 강한 의미를 지녔다. 이로써 바다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파라오와 그 군대에게 자신의 능력을 매우 강하게 행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오늘의 적용

1) 신앙고백은 곧 생활과 체험의 고백

출 15:1-18은 어떤 성격의 노래일까? 어떤 사람은 이를 찬양시라고 불렀고 (Pedersen, Lohfink, Roelaar, Fohrer, Childs) 다른 사람들은 승리의 노래(Cross, Friedman) 승리의 송시(Cassuto, Cross & Friedmann) 탄원시 (Muilenburg) 즉위시 (Haupt, Mowinckel) 감사시 (Noth)이라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여러 가지 형식이 겹쳐 있다고 보았다. (Schmidt)

어떤 형식으로도 보든 본문은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체험에서부터 나왔다. 그 체험이 신앙고백이 되고, 노래(시)가 된 것이다.

가장 힘 있고 가장 멋진 신앙고백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교리공부나 성경공부에서 배우는 신앙고백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 것에도 힘이 담기려면 당연히 생활로 체휼되어야 하는 것이다.

2) 물을 물로 보다 큰 탈난다.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렇지 않게 홍해바다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목도한 그들은 물을 별것 아니게 여겼다. 그 결과는 매우 참담하였다. 그들은 마치 돌이 물에 가라앉듯이 여호와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잠기고 말았다.

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물의 흐름에 심어두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시하고 그것을 그냥 물로 여기는 사람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어 있다.

3) 아버지(조상)의 하나님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세속적ㆍ물질적인 가치가 정신적ㆍ영적인 가치보다 더 우선시 되는 오늘 그것은 돈이나 땅이나 집이다.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자식이 만족할 만큼 많은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그렇게 한다 한들 그것이 진정 그들에게 유익하게 작용할까? 우리는 이런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가로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하소연을 듣고 처음으로 생각하신 것이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조상들의 신앙이 후손에게 새로운 길을 여는 단초가 되었다.

4)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노래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15:1-18은 하나님이 이집트의 파라오 적대자 가나안의 민족들을 제압하시는 분이라고 차례로 찬양하였다. 이는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서로 다를 때에는 언제나 인간의 그것은 꺾이고 하나님의 그것이 관철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언제 어떤 경우든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를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시고, 우리 입술과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일단 경험한 다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도 그것을 반추하며 찬양을 부르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 힘이 되고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계기가 된다. 찬양은 우리에게 위호부터(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힘과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힘과 옆 사람에게 퍼져나가는 힘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위로 고양되는 힘을 주곤 하기 때문이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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