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이옥희 선교사.

인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지 못하는 고뇌 속에서 속앓이를 하며 울다 보니 위로 받는 것조차도 싫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사탄의 참소였다. 사탄은 나의 자리와 안전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하나님을 무능한 분으로 참소하여 나를 그 분의 사랑에서 끊으려 했고 또한 나의 인도 땅에서의 고난과 고통, 희생과 헌신을 높이며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가도록 유도했다.

인도로 돌아가지 못한 고통은 나에게 스데반의 죽음과 초대교회의 박해를 새롭게 묵상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었다. 묵상의 핵심은 핍박을 계기로 새롭게 거듭나며 성숙한 예루살렘 교우들의 고통스런 상황에 대한 복음적이고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응전이었다. 사도행전 7장과 8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이런 악하고 폭력 사태가 발생했는가?”를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나의 사역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든 인도의 종교적 차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의 삶을 무력감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건에 어떻게 믿음으로 응전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자문과 회의를 피하고자 미친 듯이 바리스타 공부와 제빵 공부에 몰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 듯 밀려오는 선교현장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지면 지쳐서 나는 영락없이 죽은 고목나무였다.

사역의 절정기에 인도에서 한국으로 유배당한 고뇌와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17년의 사역 속에서 첸나이의 희망발전소를 통해서 여성, 청년 지도자 및 목회자를 양육할 기반을 조성하고 작은 교회들과 연계 사역을 시작하여 크고 작은 다양한 열매를 거두기 시작하며, 안드라푸라데쉬 데칸고원에 위치한 난달지역에서 희망공동체 건물을 짓고, 어린이집, 공부방, 어르신 급식, 양재 및 생활소품반, 바자회, 비전트립 등등을 통해서 청소년과 여성, 청년 지도자를 양육하며, 그들과 함께 와이에스 나가르 주민을 복음으로 섬기는 사역을 힘차게 출발한 시점에서, 비자문제로 입국을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나의 아픈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꿈꾸고 기도하며, 기획하고 실행하며, 잠 못 이루며 설레고 고뇌하며, 아파하며 망설이며 부대끼며 울었던 시간들이 내 안에서 포효하며 신음하는데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나의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 마음과 생각들을 진정시키고 그 모든 일들이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임을 고백하며 그 동안 써주셨음을 감사드리며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았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었다. 아픔을 부인할 수가 없다. 누가 내 아픔을 알며 누가 나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틈틈이 인도의 비숍들과 여러 목회자들 협력자들의 메일과 전화, 선물을 통해서 위로해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절망과 무력감에서 깨어나 인도를 다시 품도록 해준 위로는 샨띠홈에 사는 에이즈 피해아동들에게서 왔다.

▲ 사진제공: 이옥희 선교사.

샨띠홈은 2009년에 잠말라마두구 캠벨병원 안에 세워진 에이즈 피해아동들의 집으로 23명의 고아들과 함께 출범했다. 초기에는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고 편히 먹고 자고 입을 수 있는 것 자체로 행복해 했고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지나며 아이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학습 의욕도 없어지고 모두들 타성에 젖어 흐리멍덩해졌다.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희망”을 물었고 아이들에게 그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공부하기 원하는 아이들 전원에게 대학 등록금을 지원할 뿐 만 아니라 석사와 박사 과정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내 말을 믿지 않았지만 방문할 때 마다 거듭 반복해서 약속을 하자 나의 말을 진실로 믿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이 달라졌으며, 심지어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그들의 귀여운 모습도 보게 됐다.

올해 처음으로 10학년을 졸업하게 된 라메쉬, 존 밥, 벵까따 라마나가 그 시험대에 올랐다. 그들은 우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10학년에 치루는 국가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유배지에 있는 나에게 알렸다.

아이들의 합격 소식으로 오래 만에 나의 영혼이 파도처럼 일렁거리며 춤을 추었고, 그 기쁨이 나로 하여금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다시 인도로 가야한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도록 자극했다. 아이들의 건강 회복과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 각자가 스스로 삶을 살아갈 능력과 열정, 믿음, 소망, 사랑에의 확신과 용기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곁에서 격려하며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인도를 다시 사랑하기로 했다.

두 번째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하나님의 위로는 쏘실리야목사와 순더 라주목사를 통해서 주셨다. 그들은 나의 중요한 선교 파트너가 아니었고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사역에 지장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순회하는 길에 지나가다 만나면서 악수를 했을 뿐인데, 그들은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으며 나의 달릿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고무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나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달릿 사역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쏘실리야는 “이 목사님! 목사님께서 부르면 언제든지 목사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협력자로 함께 일할 날을 꿈꾸며 공부합니다. 공부가 끝나는 대로 목사님께 가길 원합니다. 많은 결심과 기도 끝에 이 편지를 씁니다”라고 메일을 써서 영적으로 지친 나에게 성령의 감동의 물을 봄비처럼 다정하게 부어 주었다.

순더 라주목사는 “이 목사님께서 인도에 들어오지 못하시니 마음이 아픕니다. 목사님은 저와 함께 한 일이 별로 많지 않았지만 저를 이해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금번에 제 아들 암베드카가 벵갈로르에 있는 연합신학대학교에 갔습니다. 아들을 목사님께 맡기니 목사님의 신앙과 열정으로 훈련시키고 목사님의 일꾼으로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써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나의 일꾼이 되겠다고 자원하는 쏘실리야와 아들을 일꾼으로 맡기겠다고 부탁하는 라주의 편지의 속뜻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 사진제공: 이옥희 선교사.

실상 그들은 노회에서나 나의 사역에서 변두리 인물들이었다. 쏘실리야는 목사인 남편 마두와 함께 신학석사 과정을 공부하려고 2005년에 수차례 찾아와 장학금을 요구했다. 두 부부는 타인의 이목을 피해 나의 숙소로 찾아왔고 달릿들의 구원과 해방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뜨겁게 표명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에게 2~3년 더 목회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2006년 3월 순회에서 그들에게 설득되어 장학금을 지원했다. 2개월 후, “마두목사”가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뇌진탕으로 죽었다는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장학금이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과 함께 20대 중반의 쏘실리야목사의 순탄하지 못할 인생을 떠올리며 과부가 된 그에게 엄청난 연민과 부담감을 느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과부로서 당할 고통으로부터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를 대구의 어느 교회에 추천을 해서 한국에 나가서 일하도록 소개하기도 했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방황하고 있을 때, 한신대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라고 권면했고, 남자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들을 보며 우리 선교쎈타에 와서 일하라고 불렀으나 그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가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고전하는 것이 안쓰러워 작은 손길을 폈다. 그는 나의 면전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순더 라주는 선천적으로 반골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사건건 비숍과 노회의 임원들과 부딪혔다. 그래서 늘 시골의 작은 교회로만 발령이 났고 가끔 노회로부터 사례금을 수개월 씩 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으며 열심히 일을 했다. 그는 소위 “달릿 구원과 해방의 목회”에 꽂힌 사람으로 노회의 구조와 조직의 모순과 부조리에 준열한 비판을 가했다. 그런 그와 친하게 되면 나도 비숍의 눈 밖에 날 수 있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며 가능한 그를 피했다. 그러나 노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지 못한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작은 돈을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찔러주며 힘내라고 권면하며 용기를 주곤 했다. 어쩌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순회 길에 그를 만나면 달릿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의 대답을 열심히 경청했다.

세 번째 하나님의 깊은 위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왔다. 카림나가노회의 비숍인 르우벤목사에게서 온 것이다. 오래 전부터 카림나가노회로부터 몇 번 초청을 받았지만 나는 늘 시간과 능력의 한계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지역, 새로운 노회의 초청에 도저히 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올해 카림나가노회의 비숍으로 새로 부임한 르우벤 목사로부터 간절한 초청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난달의 옛 비숍인 로렌스목사님으로부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달릿에 대한 애정과 관심, 사역에 대한 성실성과 열정, 약속에 대한 책임감과 헌신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달릿과 복음, 그리고 함께 사는 길을 생각한다며 선교를 위한 만남을 요청했다. 나는 10월 말에 한국 방문을 하는 그 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의 메일을 읽는 동안 18년에 걸쳐 인도에서 겪은 마음과 몸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손수 접었다고 생각한 나의 인도선교에 대한 의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타오름을 느꼈다.

유배를 당한 지난 1년 동안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곳으로 가기로 다짐하면서도 내심 괴로워하고 초조해 하며 두려워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작은 자들을 통해서 위로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나에게 하나님의 편지가 되어준 샨띠홈의 에이즈 고아들, 순더 라주목사와 쏘실리야 목사, 그리고 은퇴 비숍 로렌스목사와 단 한 번의 일면식도 없는 르우벤목사는 하나님의 작은 편지가 되어 하나님의 위로와 돌보심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깊이 체험하게 해주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돌린다.

▲ 사진제공: 이옥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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