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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행복<김명수 칼럼>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5.10.19 11:37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2.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5:1-3; 새번역)

When Jesus saw the crowds, He went up on the mountain; and after He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2.He opened His mouth and began to teach them, saying, 3."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Matthew 5:1-3; NAASB)

기독교 경전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이야기에 관한 기록들을 한데 묶어서 만들어진 ‘책 묶음’(叢書)인데요.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무대로 전개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기록하고 있어요. 39권으로 구성된 구약성경은 약 천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쓰여 졌어요. 

이와 달리 신약성경은 예수그리스도라는 한 역사적 인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이야기에 관해서 기록된 것인데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 대략 2백년에 걸쳐 쓰여 진 책들이 하나로 묶여졌어요. 모두 27권의 서로 다른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중심으로 기록된 책을 일컬어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에는 4개의 복음서가 있는데요. 그 중에 맨 앞에 나오는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사람이 참되게 살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 참 나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생멸生滅의 세계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내가 주체적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 참 행복이 무엇인가? 이와 같은 인간존재의 본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마태복음저자는 그의 책에서 예수라는 한 인물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제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를 일컬어 산상설교집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호수 근처의 나지막한 야산에 오르셔서, 갈릴리농촌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민(民)을 향하여 설교하신 주옥같은 말씀들인데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있는데요.(출20,1-17) 산상설교야말로 모세의 십계명에 비견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임을 말하고자 함이지요. 산상설교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로 시작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행복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돈과 명예와 사회적 신분일 것입니다. 허나, 이러한 유의 행복은 믿을만한 것들이 못됩니다. 오래가지 못하고요. 단명短命한 것이 특성이에요. 왜 그런가요? 밖에서 온 것은 결국 떠나가고 말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참 행복의 길이란 무엇인가요? 내 욕망을 채워서 얻게 되는 행복의 길을 예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 반대의 길에 참 행복이 있음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한 청년이 살아왔어요. 그는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동안 한 가지 물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사람이 한 번 태어나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인데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이러한 인생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청년은 가산을 정리했습니다. 그런 다음 구도求道의 길을 떠났어요. 수소문 끝에 청년은 한 유명한 도인道人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그 도인은 숲 속에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었어요. 청년을 보자, 도인이 방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도인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가?”청년이 답했어요. “도사님, 제가 평생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요.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죽기마련 아닌가요? 안 죽고 사는 법은 없습니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그 길을 알려주십시오.”
 
헌데, 도인은 아무 말도 없이 주전자에 차물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차물이 다 끓자, 도인은 청년의 찻잔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찻물이 찻잔에 가득 찼는데도, 도인은 계속 물을 붓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찻물이 찻잔에서 넘쳐흘러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되었겠지요. 상황이 다급해지자 청년이 도인에게 말했어요. “도사님, 찻물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도인이 천천히 입을 떼었어요. “이보게, 잔에 물이 꽉 차있으면, 아무리 부어도 물이 흘러넘치는 법이라네. 가득 찬 잔 속에는 그 어느 다른 것도 채울 수 없네. 잔이 텅 비어있어야 새 물로 채울 수 있는 법이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네. 자네의 마음은 지금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네. 다른 것이 들어갈 여지가 없네. 마음을 텅 비우고 다시 오게. 그 때 가서 내가 그 길을 알려줌세.”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얻고자 하는 욕심을 내면, 진짜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텅 비워야 얻을 수 있다는 진리의 역설성(逆說性)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진리의 실상은 ‘가득 참(充溢)’이 아니라, ‘텅 빈 충만’곧 진공묘유(眞空妙有)이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나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hoi ptochoi to pneumati)이라고 했어요. 여격與格인 ‘토 프노이마티’를 수단의 여격으로 받아들이면, 자발적으로 가난의 삶을 선택한 ‘청빈자(淸貧者)’를 뜻합니다. 청빈자는 누구인가요?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여 이를 실천하고 나눔(sharing)으로써, 이웃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사람들이지요. 반면에 이를 관계의 여격으로 해석하면, 마음을 비우고 사는‘허심자(虛心者)’를 뜻합니다. 텅 빈 마음의 소유자를 말하지요. 아마도 명상수행과 연결시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외형적인 물질로든 내면의 마음으로든, ‘심령이 가난한 사람’(the poor in spirit)은 영육靈肉 간에 가난한 사람을 총칭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로든 마음으로든, 욕심이 없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선언이지요. 텅 빈 마음을 가져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든지 꽉 차있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선언이지요. 돈이나 물질로 꽉 차있는 사람, 미움과 증오로 꽉 차있는 사람, 시기와 질투로 꽉 차있는 사람, 불평이나 원망으로  꽉 차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참 행복은 결코 소유의 넉넉함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어요. 
 
사람의 몸과 마음은 찻잔과 같습니다. 항상 비어있어야 합니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듯이, 사람의 마음도 꽉 차 있으면 부패합니다. 예수님은 몸과 마음을 비우라고 했어요. 마음에 낀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이 청소해 놓으라고 했어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청빈(淸貧)을 뜻하지요.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가난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을 말합니다. 청빈한 마음을 지녀야 참 행복을 얻을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청빈한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이대로 주어진 상태에서 스스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한 끼 단식’을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몸이 가득 차있음을 느끼게 될 때 하는데요. 단식으로 몸을 텅 비우고 나면, 몸이 가볍고 상쾌합니다. 정신도 맑아집니다. 몸에 가득 찬 음식물을 한 번씩 비워내는 단식은 체내에 쌓인 불필요한 찌꺼기를 걸러내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지요.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구하여 얻고자 하고 취하고자 하는 욕구(求得取欲)로 가득 차 있으면, 번뇌와 근심에서 벗어날 날이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꽉 차있으면, 마음이 심란하게 됩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숙면을 할 수 없고 잠을 설치게 돼요.  
 
저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고공高空명상을 자주 합니다. 수 천 킬로 떨어진 공중에 내 의식을 띄워놓고, 지상의 내 모습을 바라보지요. 160억년 우주역사에서 내 존재의 실상을 바라봅니다. 내 존재의 미약함이 티끌만도 못하지요. 40억년에 걸친 지구생명의 역사에서 내 존재를 명상합니다. 찰나를 살다가는 미물微物일 뿐임을 인식하지요. 빈손으로 와서 결국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운명이라는 것, 그러니 얻었다고 해서 얻은 것이 없고, 잃었다고 해서 잃은 바도 없는 것이 인생살이라는 것을 명상하지요. 생멸의 세계에서 불생불멸의 삶을 살고 있음을 명상합니다. 이러한 고공명상은 세상적인 이해득실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온갖 종류의 걱정근심과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 주지요. 
예수님께서 복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마태복음 저자는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정의에 목마른 사람, 자선을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허나, 저는 사람답게 살고 사람다운 삶을 사람으로 보고 싶습니다. 
 
전라도에 가면 여수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여수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을 물리쳤어요. 여수 앞바다에 제도라는 섬이 있는데요. 배로 1시간 거리에요. 이 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제자 목사가 있는데요. 지난봄에 초대를 받아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조그만 섬이었는데요. 연세 80이 넘으신 어르신들만 30여분 살고 계셨어요. 교회 예배에 참석하신 분 가운데  100세 되신 원로장로님도 계셨어요. 이 섬에는 방풍이라는 채소가 자라는데요. 금년 봄에 방풍나물을 보내와 <예함의집> 식구들이 먹었던 적이 있지요.  
 
이곳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은 거의 어부출신들이었는데요. 평생 동안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자식들을 공부시켰어요. 이제 자식들은 다 커서 도시에 가서 살고, 이 섬에는 노인들만 모여 살고 있었어요. 평생 험한 파도와 싸우면서 육체노동을 많이 하신 어르신들이었기에 몸이 고장 나지 않은 데가 없고요. 아픈 곳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목회하고 있는 제자는 아주 똑똑하고 유능한 목사였어요. 부산에 있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있었는데요. 한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몇 년 뒤에 연락이 온 것입니다. 도시목회를 접고, 섬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도에 갔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자네, 왜 이런 촌구석에 와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제대로 사례를 받는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그가 대답했어요. “3년 전에 우연히 이 섬에 봉사활동을 왔다가, 힘들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보고 느낀 게 많았습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도시교회는 나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목사들이 목회를 할 수 있는 곳인데요. 이 촌구석에 올 목사들은 저 아니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교회, 시골교회를 떠나서, 월급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느 교회, 어느 성도들이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가? 이것이 목회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편하고 잘 살기 위해서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로써의 나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제도 섬의 사람들이 자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에, 손실이득을 따지거나 이것저것 재지 않고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아프면 보건소에 모시고 가거나, 약을 타다드립니다. 전기불이 안 들어오면 가서 고쳐주고요. 우편이 오면 다 처리해 드리고요. 집안 일, 밭일까지 다 해드린다고 했어요.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 그분들이 부를 때는 언제 어디든지 달려간다고 합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쁘다고 했습니다. 
 
내 제자는 마지막으로 제게 말했어요. “교수님, 저는 하나님 한 분만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 밖에 다른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습니다.”내 제자는 가난하고 궁핍한 시골목회를 하면서도 구김살이 없었어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목회의 길이었기에 가난 자체를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더 이상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는 그의 목회 자세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외딴 섬에서 동분서주하며 어르신들을 뒷바라지 하며 고생하고 있는 제자를 보면서, 그야말로 예수님의 참 제자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이 있어서 고통당하는 뭇 중생이 언제어디서든지 부르면 즉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관세음신앙이지요.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나룻배가 필요하지요. 나룻배를 마련해야 합니다. 강을 건넌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룻배를 버려야 합니다. 나룻배를 짊어지고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없지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물질의 역할도 이와 같지요.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는 데는 물질이 필요하지요. 강을 건넌 뒤에는 다 버리고 놓고 가야할 것이 물질입니다. 마치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질을 지니되, 물질에 매이지 마십시오. 돈을 열심히 벌되, 돈의 소유가 되지 마십시오. 돈 버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돈을 벌어서 무엇에 쓸 것인가를 반드시 되물으십시오. 물질의 가치는 모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정適正한 곳에 쓰이는데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선택하십시오. 청빈한 삶으로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 때, 참 행복의 길이 열린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이를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길 빕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kmsi@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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