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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을 열라<정중규 칼럼>
정중규 | 승인 2015.10.20 14:55

지난 10월 13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본회의에서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개막사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오는 12월 8일 시작되는 자비의 특별희년을 언급하면서 “요한 23세 교황이 그 당시 교회에 성령의 신선한 바람이 불기를 기원한 것처럼, 자비의 숨결은 우리 시대에서 교회의 사목적 사명의 ‘주제(leitmotif)’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비는 교회 생활의 토대이다.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은 온유함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 온유함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면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자비와 연민이 가득 찬 사랑에 달려 있음을 각인시켰다. ‘프란치스코 훈풍’이 한국 교회 심장부에도 드디어 불기 시작하는가 싶은 고무적인 발언으로 쇄신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든다. 

 
프란치스코 바람은 나비효과를 타고 인류의 가슴 속으로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013년 3월, 콘클라베를 통해 새 교황이 선출되고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시작된 프란치스코 바람은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와 신선한 메시지로 바티칸 교황청을 넘어 순식간에 전 세계로 나비효과 낳으며 인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선출된 그해 바로 미국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2015년엔 다시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우상부문에 선정되는 등 이미 프란치스코 바람은 가히 지구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침 올해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해, 반세기 전 교회 쇄신을 위해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을 열면서 시작된 공의회는 막상 터를 제공한 유럽에서는 그 외침이 호응 받지 못하고 빈들로 쫓겨났다. 바람은 제 멋대로 분다고 했던가. 갈길 잃었던 쇄신의 바람은 대서양을 건너 남미로 가서 꽃을 활짝 피운 훈풍이 되었다. 20세기를 독재정권과 미제국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던 남미 민중의 가슴에 불을 당긴 그 바람은 밑바닥 현장에서 몸부림치면서 ‘해방신학’이라는 진주를 품었고, 그 마지막 열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해방신학을 통해 꽃을 피워가던 교회 쇄신을 향한 갈망은 교황의 가슴을 통해 다시 바티칸으로 옮아가고 그것이 차츰 전 세계적인 호응을 받으며 번져가더니 기어이 자본주의 본토 미국마저 강타했다. 그야말로 ‘occupy America’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반세기에 걸친 머나먼 ‘사도행전’ 그 여정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을 보면서 문득 <사도행전>이 떠올랐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성령강림으로 새 출발한 교회, 유대 본토에선 박해를 당해 쫓겨났지만 바울이라는 이방인 사도를 통해 고난의 여정 끝에 교회가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 도착하는 이야기가 <사도행전>이다. 
 
그러했다. 교황이 태어난 땅은 변두리, 빈들의 대륙 남미였다. 500년 전, 정복주의 교회에 의한 강제 개종은 겉옷만 껴입힌 것일 뿐 영혼을 껴안지는 못했다. 거기에서 빈 들의 신학, 해방신학이 나왔다. 그 빈 들의 예언자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향해 늘 ‘밖으로 나가라’고 재촉한다. 하기야 그의 메시지는 교회 내부보다 세상 속에서 더 큰 메아리를 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생태 환경에 대한 예언자적 외침은 양심적인 경제학자들과 환경주의자들에 열렬한 호응과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게 그 자신이 2000년 전 사도 바울처럼 이방인의 사도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논쟁적인 현안들에 돌직구 날리며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본인이 원했던 아니했던 간에 그는 이미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예언자로 우뚝 섰다. 
 
거기에다 교황은 이미 대중적 슈퍼스타이기도 하다. 그가 가는 곳엔 군중이 몰려든다. 그는 둘레를 감염시키는 마음의 힘을 지닌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의 뇌리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감동적인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정치력이다. 물론 그 정치력은 교황의 선한 마음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타고난 공감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때, 그렇게 그 모든 것은 선순환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교황의 인기는 진정한 지도자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갈망에서 나왔다’는 부족함이 없는 분석이다.
 
지금은 교회 쇄신 정착화를 향한 중대한 갈림길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미국은 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대중문화 속으로 빨아들여 상품화하는 불가사리 괴물이다. 체 게바라 열풍이 그러했듯이 프란치스코 열풍마저 대중문화가 삼키면, 교회 쇄신의 꿈도 다시 꿈으로만 끝날 위험이 높은 것이다. 교회 쇄신을 바라는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냉철함이 요구되는 때, 성경에서 말하는 ‘깨어 있어야 할 때’다. 
 
쇄신의 바람을 땅에 스며들게 해서 교회 안팎에 정착시키는 쇄신의 제도화가 필요한 시기다. 그래서 지금이 교회 쇄신의 중대한 갈림길이라고 본다. 물론 교회 수장으로 교황이라는 자리 자체가 이미 조직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비록 ‘프란치스코 원맨쇼’라지만 쇄신을 향한 교황의 메시지는 아직은 사자후다. 하지만 쇄신이 제도적으로 정착될 때까지 그를 뒷받침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과 지지가 요구된다. 교회 쇄신은 결국 평신도들을 비롯한 교회 구성원 전체가 시대의 징표를 온 몸으로 껴안을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이번에 미국 의사당 연설에서 교황이 네 사람을 불러낸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교회 쇄신의 길에서도 등불로 삼을만한 사람들이다.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의 자유와 해방과 공동선,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평등과 인권과 포용, 데이(Dorothy Day)의 정의와 연대와 헌신, 머튼(Thomas Merton) 신부의 대화와 평화와 환대, 그들의 삶은 세상과 교회가 함께 밟아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물론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의 교황이라면 미국의 생태주의자 ‘월든’의 소로(Henry David Thoreau)나 ‘우주이야기’의 베리(Thomas Berry) 신부도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국 교회,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예언성 회복해야
 
이 모든 것은 한국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길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취임 첫마디는 “세상이 교회를 향해 문을 활짝 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거꾸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자”고 외친다. 한국 교회 역시 세상을 향해 문을 더욱 활짝 열 때다. 세상을 향해 네 사람이 추구했던 그 이상들을 실천할 때다. 교황대사가 언급한 자비의 문도 활짝 열어야 한다. 굳이 희년이 시작되는 12월 8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지금 당장 활짝 열어야할 것이다. 무릇 교회는 늘 희년이어야 한다. 
 
특히 교회의 예언성 회복이 시급하다. 세상을 향한 예언자가 되는 것과 함께 예언자의 소리에 예민하고도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권력지향적인 교회는 예언성을 압살한다. 교회 내부에서의 예언적 활동을 죽여선 안 된다. 이 시대의 예언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쇄신을 위해선 엄정한 자기비판도 마다않는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다. 지난 방한 때 교황이 주교단에서부터 평신도들에게까지 일일이 부탁했던 과제들은 지금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가. 성장주의와 물량주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교회야말로 스스로에게 채찍질 할 수 있는 예언성 회복이 절실하다.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의 날에도 향을 묻혀준다
 
   
▲ 조르주 루오 作,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예수의 거룩한 삶을 판화에 담았던 화가 루오(Georges Rouault)의 연작 ‘미세레레’(Miserere)에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찍는 도끼의 날에도 향을 묻힌다’는 작품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마음이 아프시면 마음에 그대로 담고 계시라”던 교회가 북한 공산당에 죽임 당했다고 피해자‘연’하며 한국전쟁 피해자들의 시복을 추진하는 것, 천주교인만이 아니라 동학교도 등 조선 민중들의 핏빛이 서려있는 서소문을 자신만의 성지로 만들려는 것, 아픔을 느낌에 있어 이토록 안팎을 구별함이 과연 복음 정신인가. 예언성이 살아있는 자비의 교회는 향나무처럼 자신을 찍는 도끼의 날에도 향을 묻혀주는 그런 마음 위에 세워진다. 
 
다시 주한 교황대사의 말로 돌아가면, 자비의 숨결은 우리 시대에서 교회의 사목적 사명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자비는 교회 생활의 토대이다.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은 온유함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 온유함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자비와 연민이 가득 찬 사랑에 달려 있다. 이런 깨달음이 ‘프란치스코 훈풍’에 의한 것이라면,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라는 ‘프란치스코 훈수’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바램도 가져보는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정중규  mugeo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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