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국가는 위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 긴급 포럼'역사교과서 국정화논쟁 바로알기'가 26일(월)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에큐메니안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날로 거세져 가고 있는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인들’이 모여 긴급포럼을 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의 쟁점을 파악하고 올바른 시각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이번 포럼은 26일(월)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됐다.

포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회를 맡은 구교형 목사(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인 모임)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에 대한 찬반을 나누기 보다는 먼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핵심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독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지 알기위해 긴급하게 포럼을 준비했다”며 포럼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발제자는 총 3명으로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영식 선생(덕양중 역사교사), 심용환 선생(역사강사, 깊은계단 대표)이 발제를 맡았다.

대한민국 건국 정신은 '독립정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이만열 교수는 역사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정통성 문제’에 대해 다뤘다. 이는 곧 대한민국 건립일에 대한 논란과 연결된다. 이 교수는 과거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08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바꾸려고 했던 것은 그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친일세력이기 때문”이라며 “이들로 인해 본격적으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볼 것인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진정한 건국일’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2008년에 불거진 ‘건국일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은 언제부터 이루어졌다고 봐야하는가? 이 교수는 대한민국 성립에 대해 헌법에 어떻게 명시되어 있는지 전했다.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제헌헌법에는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독립정신을 계승..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명시되어 있는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 후 개정된 현행 헌법(1987)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 계승..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등 명확히 ‘독립정신’과 ‘민주혁명’, ‘평화 통일 지향’에 기반해 대한민국이 건립됐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은 ‘헌법에 따르면’ 독립정신에 기반해 ‘우리 힘’으로 삼일운동직후 상해 임시정부에서 연호를 ‘민국’으로 제정하고 선포했던 1919년 4월 11일이루어 졌다. 그러나 1919년의 건국이념과 정신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임시정부 세력과의 갈등을 빚은 후 계승 되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립이 1919년임이 부정되진 않았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을 건립한 1919년 이후 사용한 연호 ‘민국’은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만든 관보에서도 사용됐는데 그때 사용한 관기는 ‘민국 30년’이었다”며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또한 이 교수는 “만약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하면 연합국이 승리하고 난 뒤 우리의 힘이 아닌 외세의 힘에 의해 ‘공짜’로 나라를 건국한 꼴이 되고 만다”며 “이는 이승만 대통령조차도 부끄럽게 여긴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의 포악한 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운동 하며 3.1혁명을 일으킨 결과로 건립된 것”이라고 강조하며 발제를 마쳤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정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없다'

두 번째 순서를 맡은 김영식 선생은 ‘학교 역사교육 현장’을 주제로 현장 교사가 바라보는 국정화 교과서의 한계와 그에 맞서는 교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김 선생은 실제 가르치고 있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여주며 “이 교과서 한권을 1년에 아이들에게 다 가르치려면 주입식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며 “방대한 분량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도 급급한데 이를 통해 국가정체성, 애국심을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고 지적했다.

김 선생은 “교육부에서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며 교육부 고시에서 본 역사 교육 목표를 소개했다. 교육부가 제시하는 역사교육의 목표는 ‘인간과 그 삶에 관하여 폭넓은 이해와 안목을 키우기 위함’이자 ‘학습자로 하여금 인간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존중하는 능력과 자세를 기르는 것’에 있다. 즉, 역사 교육을 통해 국가 정체성이나 애국심을 고양시키려는 목적이 없는 것.

김 선생은 정부의 역사교고서 국정화 발표에 대해 “이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해석의 권한을 정부만이 갖겠다고 한 것으로 교육부가 고시한 역사교육의 목표를 정면으로 부정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또한 “과거를 100% 재현해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사료를 해석하고 평가 및 재구성해서 전달되는 것이 우리가 읽는 역사”라며 “하나의 세력이 역사 해석을 독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선생은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이 실제로 교과서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분명히 ‘대한민국 정부는 3.1 독립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였음을 이해한다’고 제시되어 있지만 2015년 교육과정에는 ‘정부’라는 말을 슬쩍 삭제했다. 그는 “이대로 교육이 진행되면 국정화가 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말은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가르칠 때 불가피하게 남북 분단의 과정을 언급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김 선생은 “이 시대를 아픈 역사로 가르친다 해서 ‘자학사관’이라 비판하며 영웅 찾기에만 목적을 둔다면 아이들이 전쟁의 비참함과 피해를 직면하고 평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정화된 역사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볼 수 있을까? 김 선생은 “현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그는 “다양 한 관점 속에서 과거를 최대한 객관적 사실에 가깝게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나라와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형성될 것”이라며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오히려 아이들의 역사관을 왜곡시키고 치우친 역사관을 주입 하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하며 발제를 마쳤다.


▲ 발제를 맡은 김영식 선생(덕양중 역사교사),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심용환 선생(역사강사, 깊은계단 대표) ⓒ에큐메니안

역사 교육 구조의 한계...결국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순서를 맡은 역사 강사 심용환 씨는 최근 '국정 교과서 유언비어'와 '교육부 국정 교과서 유관순 편' 등에 대해 반박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려 온라인상에서 논란의 중심인물이 됐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 해 왔던 심 씨는 이번 포럼을 통해 아직도 카카오톡을 통해 돌고 있는 ‘찌라시’에 대해 언급했다.

심 씨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학교와 역사학계 뿐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현실 속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각종 유언비어에 대처하며 느끼고 있다”며 “놀라운 것은 카카오톡을 통해 돌고 있는 ‘찌라시’들이 종북 몰이, 빨갱이 규정 등 양비론에 입각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심 씨가 각종 ‘찌라시’들을 접하며 내린 결론은 논란을 더욱 양산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집단’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구조에서 나온 반공 콤플렉스를 자극, 끊임없이 공포심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심 씨는 수능을 위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교과서의 내용이 시험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근현대사 과목이 생긴 2004년부터 15년까지 수능시험지에서 마지막 두 문제는 통일 문제였다. 그런데 작년 처음으로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통일 정책에 대한 문제가 나오지 않더니 작년 수능에 통일문제가 나오지 않았다”며 “교과서가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누군가가 학습 포인트를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심 씨는 시험지에서 새마을 운동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함께 서술됐던 과거와는 달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행정적 능력으로 극복한 사례’로 서술된 시험 보기가 출제됐던 것, 여태까지 한 번도 강조되지 않았던 이승만 대통령 업적에 대한 강조와 함께 그에 대한 문제가 EBS에서 계속 출제되고 있는 것 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심 씨는 “비록 학교 현장에서 정부가 원하는 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 구조 자체가 입시 위주라면 학생들에게 남는 기억은 결국 왜곡되고 미화된 역사 일 것”이라며 역사교육 구조의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이미 국가는 위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역사교과서가 국정화 된다면 훨씬 더 과감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또한 “기독인으로서 노회와 총회라는 합법적 기구의 합의 없이 총회장들이 모여서 중요 사안에 대한 한국 교인들의 입장을 쉽게 정하고 그것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입장을 ‘찬성’으로 형성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있다”며 “이 포럼을 통해 기독인으로서 책무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 일에 참여하게 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하며 발제를 마쳤다.

약 80분간 진행 된 발제 후에는 학생, 교사,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응답 후에는 총 11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2545명의 시민이 서명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인 모임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인 모임 선언문>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집과 편견으로 추진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사실상 확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 본질을 숨기고 모든 것을 여야의 정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역사교과서를 학계와 교육계가 아닌 정치권력이 장악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것은 역사교과서를 특정 권력의 이념에 맞추어서 다시 서술하기 위해서입니다. 친일과 독재의 미화, 그리고 친일과 독재 시대 아래 편승해 온 기회주의의 역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민족이 깊은 비탄에 빠져 있던 구한말에 이 땅에 들어와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했습니다. 애국계몽운동,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산업화와 근대화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김구, 김규식, 안창호, 이상재, 이승훈, 조만식 등은 한민족을 빛낸 민족의 지도자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3.1운동을 주도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운동을 이끌었던 것 역시 한국교회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4.19 혁명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특정 정치세력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역사교과서를 역사학자와 연구자 그리고 숙련된 교사의 손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하고, 토론해야 할 학습의 도구인 역사교과서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마십시오. 어디까지가 감기이고, 어디까지가 독감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정치가의 판단이 아니라 의사의 학문적 지식에 의한 것이듯, 역사교과서에 대한 판단도 검인정 체제를 통한 학계의 자율성에 맡겨야 합니다. 역사의 여러 국면들을 놓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미래 세대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며 그들의 미래를 자주적으로 만들어 가도록 존중해야 합니다.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중세 교회의 문제점과 종교전쟁에 관하여 자유롭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서점에 가면 많은 기독교 비판 서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시비 삼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가는 정치가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가 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민족 기독교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학생들이 다양하게 배우며,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게 검인정 체제를 유지시켜 주십시오. 앞으로 닥쳐올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정화 작업을 멈춰 주십시오. 더불어, 역사교과서가 국정화 되는데 있어서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편향된 모습으로 찬동하며 지지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들 앞에서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이는 우리의 부족함이며, 한국교회의 나약함입니다. 변화하겠습니다. 반드시 더 나아지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2015년 10월 26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인 모임

발기인 강우영 외 112명(2015년 10월 15일)

서명인 감종필 외 2453 명

김령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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