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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공공성<김명수 칼럼>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 승인 2015.11.02 10:30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눅12:6-7Q; 새번역)

Are not five sparrows sold for two cents? Yet not one of them is forgotten before God. Indeed,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all numbered. Do not fear; you are more valuable than many sparrows.(Luke12:6-7; NASB)

1962년 미국의 음유시인 밥딜런(Bob Dylan)이 부른 노래 한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바람만이 아는 대답”인데요. 베트남 전쟁, 인종차별,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 항거하여 부른 저항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미국인들은 스스로 침묵함으로써, 권력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지만,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도 않는다. 이건 옳지 않다. 세상에는 사랑이나 섹스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자유, 평등, 평화가 그것이다. 그것들이 지금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관심하거나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 우리는 인간다운 사람이 될까? 얼마나 먼 바다 위를 날아야 갈매기는 편히 쉴 수 있나? 얼마나 많은 포탄이 떨어져야 전쟁은 끝날 수 있나? 친구야,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모든 종교적 언어들에는 그 종교가 태어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있습니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고백되고 있는 예수라는 한 역사적  인물의 삶과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제국 로마의 식민지 팔레스타인의 변방邊方 갈릴리 출신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농촌마을에서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성년이 되자 출가出家하였고, 갈릴리 시골 농촌을 떠돌며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쳤습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치면서 예수께서 갈릴리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들을 주로 모아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는데요. 이를 일컬어 <예수말씀복음>이라고 합니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큐Q복음>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아마도 큐Q복음이 없었더라면, 산상설교, 주기도문, 원수사랑 계명을 비롯한 주옥같은 예수말씀들에 대해 우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큐Q복음이 전해주는 예수의 첫 설교말씀은 축복선언(마카리오스)으로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복되다고 선언한 대상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와는 다르지요. 부자, 배부른 사람, 웃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이지요. “마카리오이 호이 프토코이(makarioi hoi ptochoi)..., 마카리오이 호이 페이논데스(makarioi hoi peinontes)..., 마카리오이 호이 클라이온테스(makarioi hoi klaiontes)...”(눅6:20-21Q)

축복의 대상으로 선언되고 있는 ‘프토코이(가난한 사람들)’, ‘페이논테스(배고픈 사람들)’, ‘클라이온테스(애통하는 사람들)’은 큐Q복음 전체를 대표하는 주제thesis입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밥 문제’ 해결 없이 하나님나라는 있을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큐Q 예수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말key word이기도 하지요. 큐Q는 예수말씀들을 사회의 소수자들social minorities 편에 선 일종의 ‘공공의 복음’으로 성격 짓고 있습니다. 

당대 유대인들이 대망했던 하나님나라는 이방 강대국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유대독립왕국을 세우는 꿈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하나님나라가 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젤롯당은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淨化함으로써 하나님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허나, 큐Q교회에서 꿈꾸었던 하나님나라(basileia)는 이들의 꿈과 달랐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가난한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애통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게 될 나라가 다름 아닌 바실레이아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통속적으로 하나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점을 큐Q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큐Q복음에는 박해를 받고 있는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각별한 관심을 쏟고 계신다는 말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본문도 그 중 한 구절인데요. 박해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참새는 당시 갈릴리지방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새였어요. 시장에서 아주 싼 값에 거래되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밥상머리에도 가끔 올랐습니다. 본문에서 ‘두 냥’은 그리스어 ‘두 앗사리온’의 번역인데요. 앗사리온은 로마의 화폐 단위입니다. 일용직 노동자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의 1/16에 해당하는 푼돈이지요. 단 돈 천원으로 참새 다섯 마리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새의 가치가 얼만 하찮은 존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인데요. 참새를 예로 들어, 예수님은 갈릴리농촌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들의 비참한 운명을 제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있어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참새 한 마리의 생명까지도 일일이 챙기고 계신 분이라는 것이지요.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참새 한 마리도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생명의 존귀성 선언입니다. 생명은 양quantity이 아니라 질quality로 평가돼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한 도사가 산에서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요, 참새 한 마리가 헐레벌떡 날아들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도사는 참새를 숨겨주었어요. 그러자 곧장 뒤쫓아 온 송골매가 도사에게 물었어요. “혹시 참새 한 마리를 보지 못했습니까?”“왜 그러시나?” “배가 고파서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참새 무게만큼 나가는 다른 먹잇감을 줄 테니 참새의 목숨을 살려주시면 안 되겠는가?” “그렇게 하지요.” 그러자 도사는 저울을 갖다놓고 한 쪽에 참새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저울의 다른 편에 자기 다리를 잘라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저울은 참새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어요. 두 다리를 잘라 올려놓았습니다. 마찬가지였어요. 저울은 참새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번에는 양 팔까지 잘라 올려놓았습니다. 그래도 저울은 여전히 참새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도사는 온 몸으로 거울에 올라앉았습니다. 그제야 저울은 평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 우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뭇 생명의 평등성입니다. 참새나 사람이나 생명의 무게는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존귀하다는 것이지요.

이 우화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 말씀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어요. 생명에는 빈부귀천이 따로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창조하셨어요. 모든 생명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요 존귀한 것입니다. 결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세계의 진실 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른바 ‘목적론적 사관(teleological viewpoint)’과 하나님의 피조세계는 인간을 위해 주어졌다는 인간중심주의(human centrism)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사상이지요. 인류사회와 지구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목적론적 사관과 결탁된 인간중심주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시대는 어떠했나요? 유대나라는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로마의 비호를 받고 있는 유대상류층과 소수의 지주들은 권력과 토지를 사유화私有化하여 그들의 배를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어요. 갈릴리의 소작인, 소농, 농노, 일용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의 소수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채, 배고픔과 가난에 허덕이며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농노들은 주인에 의해 매매되고 죽임을 당해도 법적 보호를 받을 길이 없었어요.

유대사회에서 참새의 목숨처럼 하찮게 취급되고 있는 프토코이(가난한 사람들), 페이논테스(배고픈 사람들), 클라이온테스(애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무어라고 말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일일이 헤아리고 계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지켜주시고 책임져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어요.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존비귀천尊卑貴賤이 따로 있을 수 없고요, 거룩하고,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큐Q가 전하는 하나님은 공공公共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는 공공公共의 세계입니다. 도대체 사私가 없이 창조하셨어요.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의 공공公共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꿈꾼 하나님나라는 무엇인가요? 公共의 가치가 실현된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강자들에 의해 사유화되어가는 사회 소수자들의 생명의 공공성公共性 회복을 위해 분투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공공성 회복의 지평에서 큐Q는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적私的인 가치에서 공공公共의 가치에로, 생명 가치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것(paradigm shift of life-value)이 큐Q 예수운동의 알짬이지요. 

헌데,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현실은 어떤가요? 예수시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본과 정치권력이 야합된 강자 중심의 목적론적 가치질서에 의해 현대사회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10%의 가진 자들을 위해 90%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민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사회구조입니다. 소수자들의 생명과 인권보호 장치가 부재한 불평등한 사회시스템입니다. 청년실업 문제, 비정규직 확대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복지정책 축소 문제, 공무원 연금 문제, 여기에 최근에는 한국근대사를 사유화私有化하기 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까지 겹쳐, 현금 한국사회의 정국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사회상황 속에서 국민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소수자들은 기댈 곳 하나 없는 황량한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인권과 생명을 보호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헌법 제1조에 어떻게 되어 있나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주의가 무엇인가요?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선언입니다. 주인인 국민이 일정기간 고용한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제도이지요. 정권의 기본임무는 무엇인가요? 권력을 위임해 준 주인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겠지요.

헌데, 현 정권은 어떤가요? 자본과 야합한 소수 정치권력의 기득권 확장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하고 있어요. 권력의 사유화로도 모자라, 이제는 역사의 사유화를 획책하고 있어요. 한국근현대사를 한 가정을 미화하기 위한 역사로 개편하고 있어요. 국민 절대다수의 뜻을 저버리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국민을 향하여 총질하고 있는 정권이라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국민의 절대다수가 사람다운 삶을 빼앗긴 채 가난과 배고픔의 질곡 속에서 애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국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예수께서 하나님나라의 주체로 축복하신 소수자들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큐Q의 예수운동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길 빕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충주예함의집)  kmsi@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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