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혼인 하던 날
친정 외삼촌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어.
“조카도 이제 어르신이 되셨구먼”

그대,
딸아이 혼인 준비하시느라
혼자 애 많이 쓰셨네.

누구랑 상의하고 누구랑 다니며 준비 하셨는가.
나는 이렇게 먼 곳에서 마음만 보내고 있으니.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긴 시간 함께 하였지.
95학번이라는 때 늦은 학번을 달고
국문학과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처음 만났으니.

인천 제물포역 뒤편에 있던 교회 뒷방에서
우리는 함께 음운론 규칙을 따졌고
두보의 시를 이야기 하면서 30대를 함께 보냈지.

어느 비가 몹시 내리던 날

그날도 우리들의 공부방이었던 교회 뒷방에서
그대는 생각을 글로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였고
나는 생각을 입으로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였지.

그날 주께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신게야.
그대는 등단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작가가 되었고
나는 이렇게 동티모르에 와서 학생들 앞에 서 있으니 말이야.

그대 생각나시는가

인도에 대한 책 한권 달랑 읽고
사십대 중반에 선 두 여자가 겁도 없이 인도로 떠났을 때를

바라나시에서 릭샤를 타고 다니며 본 인도는
너무나 무질서했고 그 무질서가 우리를 들뜨게 했으니

오차라는 시골마을에서는
인도 전통악기 가락에 맞춰 함께 춤을 추었지.

그대 기억하시는가.

생로병사가 함께 공존하는
갠지즈강에서 바라 본 세상을

그로부터 십년 세월을 보내고

우리는 인도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을 안고
남경 녹구공항에서 다시 만났지.

남경은
양쯔강이 도시를 감싸고 흐르고
옛날과 현재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였어.

우리는 남경에서
문화의 현장으로 바뀐 공자의 거리를
많은 인파속에 휩싸여 다녔지.

남경대학살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분노했고

남경역 앞 현무호에서
그대는 삶의 현장을 내려놓았고
나는 중국에서의 이 년 세월을 내려놓았지.

그때 툭툭 내려놓길 잘했어.
뒤끝 없고 쿨 한 우리 아니던가

우리는 마음 편히 중국을 보았으니.

비록 하던 일은 놓게 되었어도
지금까지 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한국으로 돌아왔지.

올 이월,
그날 참 추웠어.

그대를 그렇게 사랑하셨던 그분
우리들 앞에서 소년처럼 “골목길”을 불러 주셨던 그분
그대가 하는 일을 항상 응원하며 자랑스러워 하셨던 그분

소천 하시던 날

애써 슬픔을  참고 서 있는 그대를 보면서
그분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세 모녀가 붙들고 울었다던 그 말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분은 그날
자신의 빈자리에 사위라는 귀한 선물을 보내고 하늘로 가셨던거야

나에게 사위는 아직도 백년손님 같지만
사위는 그렇더구만
담장 안에 들어 선 한그루 잘 생긴 나무 같은

그대의 울타리 안에 들어 선 나무도
그대에게 볼수록 대견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네.

긴 세월을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각별한 우정을 나누며 지냈는데
기쁜 날 함께 하지 못함이 참으로 안타깝네.

아이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먼 길이지만 동티모르 한번 다녀가시게.

우리는 인도에서 세상을 보았고
중국에서는 붙잡아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알았으니

동티모르에 와서
앞으로 어르신으로 살아갈 세상을 이야기 해보세.

그대 어르신이 되는 날에

힘들고 어려웠던 길을 수선피우지 않고
묵묵하게 장하게 견디며 성실하게 살아온 그대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보내네

혼자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을 그대와
새 가정을 이루는 신랑신부와 그들이 꾸려갈 가정과
그대를 닮은 둘째 딸을 위해

내가 평생을 의지하는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네.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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