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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같이 물에 잠기다 (출 15:7-11)<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27>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11.18 16:31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9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10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이 문단은 바다의 노래 둘째 연이다. 여기서 모세는 첫째 연에서 언급된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노래하였다. 이것은 이집트 군대의 공격에 대해 묘사한 뒤 “주와 같이 ...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1절) 라고 끝맺었다.

첫째 연에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를 물로 언급하였고, 이제는 불로 언급하였다.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7절) 본디 지푸라기는 허망한 것 쓸모없는 것 가치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서 그것은 불이 붙자마자 맥을 추지 못하고 활활 타 없어지는 것에 비유하였다.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나 1:10)

7절에 나오는 위엄이란 말(g¹°ôn)은 카아(g¹°â = 올라오다, 자라나다, 승리에 환호하다)에서 나온 명사이다. (1, 15절 참조) 그것은 (파도의) 높음 (욥 38:11)이나 (강물의) 흘러넘침을 가리켰다. 여기서는 엄청나게 많은 바닷물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은 1절과 21절에 쓰였다. 여기 나오는 주의 큰 위엄은 어마어마하고 거센 바닷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重意法) 이는 6절의 '주의 오른손의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나이다'을 생각나게 한다.

‘주를 거스리는 자’ (주님을 대항하여 일어서는 자)라 말은 11가지 표적을 겪고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가로막는 자 곧 파라오를 가리켰다. 거스리다로 번역된 말(qûm)은 본디 서다 일어서다라는 뜻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리거나 낮추지 아니하고 일어서 대적하였다. 이들에 대해 여호와는 ‘주님의 진노 (µ­rôn) 를 보내셨다/ 쏟아부으셨다. (직역)’ 성경에서 카론이란 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적용되었다. 카라(µ¹râ) 동사에서 온 이 말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나 분노의 열기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콧바람 (콧김 rû­µ °appejkâ) 은 분노의 감정(삿 8:3)이나 호전적인 감정(사 25:4)을 표현하곤 하였다. 여기서는 i) 파라오의 군대가 하나님의 뜻에 거슬러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데 대한 거센 분노이거나 ii) 홍해바닷물에 불러와 벽처럼 만들어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가운데 8a의 전체 내용(직역: 그리고 주님의 콧바람으로 물들이 쌓이며 마치 언덕같이 일어섰나이다)에 따르면 뒷엣것의 해석이 더 유력해 보인다. 만일 앞엣것으로 풀이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려는 파라오의 계획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다는 것이다. (µ­rôn 과 °af) 물론 이것은 감정폭발이 아니었다. 오히려 억압과 박해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거룩한 분노였다.

8절에는 심판의 도구가 다시 물로 되돌아갔다. (11절 참조) 물(홍해바다)과 불(불기둥)은 본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다. 이곳에는 단지 홍해바다만이 아니라 원시적인 바다(t®hôm) 까지 등장하였다. 이 거대한 두 가지 물결을 하나님은 한 손에 쥐고 활용하셨다. 이것들은 굳건하게 서기도 하고 완전히 뒤엉키기도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다. 9절은 이집트 군대가 기고만장하여 무엇을 말하였는지를 여섯 가지로 묘사하였다.

i) 내가 뒤쫓으리라. ii) 따라잡으리라. iii) 그 탈취물을 나누리라. iv)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v) 내가 내 칼을 빼리라. vi)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이 여섯 가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화법으로 기록된 이것은 파라오의 군대가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크게 벗어나 잇는지를 실감나게 해 주었다. 이 말들의 주어는 항상 '나'였다. 하나님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실른지를 그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개역개정은 9절을 번역하면서 ‘... 말하기를 ... 하였으나’로 옮겼다. 이는 본문이 접속사없이 곧장 연결되는 것(asyndetisch)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이보다는 “원수가 말하였다: ‘...’” 으로 하는 것이 원문의 뜻을 살리는 것이리라. 히브리 성경은 앞의 다섯 개를 모두 알파벳 처글자인 알레프 (a)로 시작하는 단어를 배치하여 긴급하고 생생한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였다.

9절의 네페쉬(nefeš)를 개역은 마음으로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은 욕망으로 번역하였다. 이를 ‘내 목구멍(욕망)이 그들을 통하여 채워지리라’ 고 직역할 수 있다. 이는 굶주린 사자가 먹이감을 보고 달려드는 듯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사 5:14)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무사히 건너자 바람이 일어났다. (10절) 그것은 8절과는 정반대로 작용하였다. 물을 멈추게 하고 벽처럼 쌓이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던 바로 그것이 이제는 거센 물결을 일으켜 이집트 군대를 삼켰던 것이다. 마임 아띠림(majim °addîrîm 개역 - 흉용한 물)이 다른 곳에서는 마임 라빔(majim rabbîm)으로 쓰였다. (삼하 22:17 = 시 18:16; 시 32:6; 아 8:7; 렘 41:12; 겔 1:24; 합 3:15) 이 앗띠림은 한편으로 물결(파도)이 아주 아주 거센 것을,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영광이 매우 장엄함을 나타내는 시적인 표현이다. 7절에서처럼 이것도 중의법으로 쓰였다. (6절 참조)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사 17:12 마임 캅비림)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시 93:4 마임 라빔 마임 아띠림)

바람의 작용을 이용하여 바닷물을 부리신 하나님 능력 앞에서 이집트 군대는 마치 납이 물속에 잠기듯이 수장(水葬)되었다. 여기서 ‘납같이’란 말은 그 내용상 5절의 ‘돌같이’와 같은 뜻이다. 물론 납은 돌보다 더 무겁기에 쉽게 물에 가라앉는다. 5절에서는 ‘깊은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라고 한 부분이 이곳에서는 더욱 자세하게 ‘주께서 강한 바람을 일으키시어 바다가 그들을 덮었고’ 라고 묘사하였다. 여기서 바람 그리고 물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도구였다.

이에 모세는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11절은 '...와 같은 자가 누구이니까?' 라는 수사학적 물음에 이어 세 가지 측면에서 드리는 찬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i)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운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ii) 찬송할 만한 위엄이 누구에게 있는가?
iii)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탈굼(Targum ongelos) 는 11절의 수사학적 물음에 부정적인 뜻을 지닌 부사(lyt)를 삽입하였다. 이는 아마 다른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신학적 의도가 개재된 것이리라. (Hamilton 225) 11절 말씀은 시 66:5를 생각나게 한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오늘의 적용

1)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멸하거나 포로로 다시 잡아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군대가 여섯 가지로 말한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한 말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백일몽(白日夢)이었다. 아니 그런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들은 자신의 멸망을 자초하였다. 그를 위한 행동은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비록 그리 할 만한 능력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였는가?

모세의 찬양은 하나님의 계획에 반하는 행위를 그분께서 어떻게 저지키면서 하나님믜 백성을 구하셨는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 전에, 실행하기 전에 그리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인간의 계획은 헛되기 때문이다. (9절)

12 간교한 사람의 계획을 꺾으시어 그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신다. 13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제 꾀에 속게 하시고, 교활한 자들의 꾀를 금방 실패로 돌아가게 하시니 14 대낮에도 어둠을 만날 것이고, 한낮에도 밤중처럼 더듬을 것이다(욥 5:12-14)

2) 욕망의 끝은 어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잡아두고 부려먹으려는 파라오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였다. 그 자식들까지 죽여 가며 압박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였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욕망을 실현하기는커녕 오히려 욕망의 좌절을 넘어 죽음에 이르지 않았던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3) 지극히 거룩하신 분의 위엄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어디서 드러나는가? 출애굽기는 고역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는데서라고 대답한다. (11절) 하나님의 이런 거룩하심은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거룩함과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공의와 사랑에 바탕하여 압박당하는 자를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 (대상 17:20)

4) 여호와 같은 이가 누구니이까?

이집인들은 수많은 신(우상)을 섬겼다. 발길이 가는 곳마다 눈길이 닿은 곳마다 신이 있을 정도였다. 그 많은 신들이 출애굽 당시 홍해바다 사건을 전해하여 무슨 역할을 하였는가? 파라오와 이집트 백성을 어떻게 지켜주었는가?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셨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이 사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감히 그분이나 그분이 하시는 일에 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신(우상)이 유형무형으로 있다. 그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처럼 살아 역사하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시 89:6)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사 40:18)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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