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다른 사람이 가진 행복과 재산”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시기”라면, “자신이 지키고 싶은 재산으로 인해” 야기되는 감정이 “질투”1)이다. 이 감정들에 대한 설명은 해당하는 시간에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한 설명을 보류하고자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의 기제들이 종종 ‘공격성과 폭력’을 결과적으로 유발할 것을 목적으로 작동한다는 점만 나눈다면 지금 여기서는 충분하다.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분노가 ‘공격성과 폭력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를 이해하기에 앞서 공격성에 대한 이해가 다소 필요하다.
● 분노의 역습
를로르와 앙드레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부끄러움>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버지가 식탁에 앉으시면 그때부터 두 분을 말다툼을 벌이셨다. 부부싸움은 식사 내내 멈추지 않았다. 식기가 치워지고 식탁이 닦이면, 어머니는 번번이 아버지가 말대꾸라도 한 듯이 싱크대에서 몸을 약간 틀며 아버지에게 연신 비난을 퍼부어 대셨다. 식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듯 아버지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숨을 헐떡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 눈앞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멱살을 잡아쥐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버지는 생경한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커피 잔을 집어 던졌다.2)
남자와 여자 간의 분노 표현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드는 예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 한 복판에서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생기는 일상적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인용하는 예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양쪽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생긴다. 유사한 상황이 유발되면, 매번 불안해 하다가 결국 같은 결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 결말을 너무도 혐오하고 싫어하는데도 그런 때가 되면 또 그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낀다.
위 소설 속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매우 강하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표현하는데, 남편이 응수하지 않은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자신에게 무례하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여기 이 지점. 하지만 아버지는 무감하게 안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말들을 참기 힘들어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폭발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그런 모습이 아내에게 더욱 더 분노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겠지만, 출구를 찾지 못한다. 그저 딴짓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 말고는. 이러면 위험하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말이다.
분노를 화로 표현하고 난 다음 느끼는 공통적인 반응: 왜 그랬지? 좀 참을걸. 아무리 정당하다고 생각이 들어도 결국 분노의 절제되지 못한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괴롭게 만든다. 분노의 표현은 상당 경우 물리적 폭력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위 소설 속 이야기에서 암시되는 가정폭력의 장면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경우도 ‘폭력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일깨우고, 따라서 그런 것들을 유발한 공격성과 분노를 억제하고 최선으로는 근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유발한다. 만일 억제와 근절로 감정 조절책을 삼는다면, 우리는 또 같은 실수를 일정 시간 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분노라는 감정을 자신의 일부가, 비록 잘못된 상황에서이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억제하고 근절해야 할 악마적 타자로 간주된다면, 우리는 그 감정을 조절하고 다스릴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그 자체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그냥 불필요하거나 위험하다기 보다는 특정 영향과 효과를 야기하기 위해 우리에게 장착된 표현기제인 것이다.
분노가 표현될 때, 그 감정은 통상 ‘공격성’(aggression)과 더불어 표출된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외면하고, 주의를 딴데로 돌리며 조절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숨을 헐떡거리며, 낯선 쉰 목소리로 고함을 칠 때, 바로 이 몸의 변화가 유발하는 표현 양태는 ‘공격성’이다. 그리고 ‘커피 잔을 어머니에게 집어 던졌다.’ 왜? 분노를 하면 이런 폭력적인 행동을 동반하게 될까? 바로 여기서 분노와 공격성을 연계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 공격 앞으로? 아니, ‘너, 저만치 떨어져 있어!’
수족관 물고기 어종인 시클리는 오랫동안 공격적인 에너지가 발산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는 경우, 배우자를 살해하는 극단적 방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3) 그래서 로렌츠에 따르면, 이를 방지하는 길은 어항 속에 ‘희생양’을 넣어주거나 혹은 시클리드 쌍의 서식 구역을 투명한 유리로 분리하여 놓는 것이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상대방을 향해 공격성을 포출하며 달려들지만, 막상 막이 가로막혀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공격적 본능이 표출될 수 있는 경우, 배우자를 살해하는 극단적 경우는 사라진다고 한다. 공격적 본능이 표현되지 못하고 억제되는 경우, 잘못된 출구를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분노와 공격성은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공격성이라는 본능이 ‘분노’라는 감정의 매개를 통해 더 큰 힘과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공격성’(aggression)은 “같은 동족의 구성원을 향해 저질러지는 ... 투쟁 본능”4)이다. 흔히 “죽음에 대한 동경”(death wish)와 같은 것으로 회자되는 공격성은 사실 다른 본능들과 같은 “하나의 본능”으로서, “개체와 종의 생존 보장을 돕는” 기제5)이다. 즉 공격성은 진화를 통해 발달한 본능기제라는 말이다. 이는 곧 공격성이 “생존 투쟁”(struggle for existence)을 바탕으로 진화해온 기제라는 의미이다.
 |
||
같은 종내의 구성원들 간에 벌어지는 공격 본능은 “종-보존 기능”9)을 감당한다. 아주 순진한 통찰은 바로 두 경쟁자 개체들 중 보다 강한 개체가 영토나 암컷을 차지하는 것이 종의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공격성이 종 보존 기능에 기여하는 데에는 보다 심오한 이유가 있다. 이는 생태학(ecology)으로부터 유래한다. 아주 특별한 이유로 종의 구성원들이 밀집할 것이 요구되지 않는 한, 일반적인 경우 동물 종의 개체들은 이용 가능한 서식지에 가급적 균등하게 널리 분포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만일 동일종이 한 소 생활권(biotope)에 너무 밀집하여 분포되어 식량을 고갈시켜 기아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면, 차라리 같은 종의 개체들에 상호적 혐오감을 발동하여 일정한 공간이 확보될 만큼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전체 종의 생존에 유익할 것이다.10) 바로 이것이 “종-내 공격성이 담지한 가장 중요한 생존 가치”11)이다. 이때 공격성은 영토 본능을 통해 같은 종의 개체에게 발휘될 것이다. 동물들은 그래서 자신의 영토를 표식할 여러 가지 수단들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토 내로 진입하는 같은 종 내 다른 개체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낸다. 따라서 각 개체의 전투 자세는 가장 친숙한 자리, 즉 자신의 영토 한 복판에 있을 때 가장 높다.12) 이 영토의 복판으로부터 멀어져, 낯설고 위협적인 환경으로 나아갈수록 전투 자세보다는 도망가려는 본능이 발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종-내 공격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서식 가능한 영역에 특정 종의 동물들이 균등하게 분포하게 하는 것이다. 13)
종-내 공격성의 또 다른 기능은 성 선택에서 경쟁자를 물리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14) 아비가 강해야 새끼들을 잘 지키고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성 선택은 싸움에 능한 수컷을 배우자로 선택하도록 한다. 같은 이유로 암컷도 공격성을 가지고 강한 투쟁심을 지닌 개체가 배우자로 선택받도록 성 선택은 작동한다. 결국 경쟁자끼리 벌이는 싸움(rival fight)은 다른 종의 적들뿐만 아니라 종-내의 적과 싸우기에 적합한 전사를 번식하는 유용한 선택기제인데, 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호전적인 방어자를 번식시키는 것으로서 “번식 방어”이다. 15)
공격성의 진화적 가치는 종의 보존이라는 주장에 반대될 법한 상황이 바로 사회 집단 내 ‘서열 질서’(ranking order)인데, 이러한 위계적 서열구조가 서열이 낮은 개체에게 부당하고 부정의하게 작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성 동물들은 집단 내에 서열 질서를 갖고 있다. 집단 내에서 서열을 통해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를 표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서열질서의 진화적 기능은 일단 사회 구성원들 간에 (불필요한) 싸움을 제한하는 것이다. 16) 서열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일단 집단 내에 공격성은 줄어들고, 더 나아가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유익한 구조가 자리 잡는다. 17)
그런데 서열이 비슷한 개체끼리 근접하게 자리 잡을 경우, 이 두 개체 간에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공격성이 증가한다. 이는 역으로 서열 간 차이가 큰 개체들이 만나면 이런 공격성과 긴장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개체 간 분쟁이 있을 경우, 그들 보다 확고한 상위 서열의 개체가 “약자를 편들어 간섭”하는 효과도 일어난다.18)
서열 질서의 힘은 물리적인 강함으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포식자를 식별하는 인식 기능이 선천적으로 내장되지 않은 종들에게는 나이 들고 경험 많은 개체로부터 배우는 과정이 중시된다. 이런 종들에서는 나이 든 개체가 상위 서열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개체들은 서열이 높은 나이 많고 경험 많은 개체를 우선적으로 모방하고 추종하는 성향을 갖는다. 19)
결론적으로 공격성 충동이 담지한 파괴력은 “종-내 선택 과정의 귀결”20)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 사회에서 전사의 이상이 추앙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공격성은, 고전적 정신분석이 주장하는 “악마적이고 파괴적인 원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생명을 보존하는 본능들의 조직에 본질적인 부분”으로 기능한다. 21)
공격적 충동이 종-보존 본능이라해도, 이 충동은 때로 파괴적인 결과로 나아간다. 프로이드는 “사회적 접촉의 결여”는 공격성을 촉발하는 인자임을 밝혀준바 있다.22)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접촉’이란 단지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고 충족시켜 줌으로써 방종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신경계는 자극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자극이 주어질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자극을 만들어 내어 “즉흥적인”(spontaneous)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23)
예를 들어 한 비둘기 종의 암컷을 수컷과 분리해 두고, 그 기간을 점점 더 길게 만들면, 별 이상한 물건들을 암컷으로 간주하고 구애 행위를 시작한다. 24) 이는 곧 정상적으로 발산되어야 할 본능의 자극이 상당기간 결여될 경우, 유기체는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돌입하고, 이제 잃어버린 자극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적대적인 영토침범자에게 발산되어야 할 공격성이 지속적으로 억제될 경우, 그 공격성이 배우자를 살해하는 식으로 발산되는 경우를 수족관의 시클리드 종의 이야기를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로렌츠에 따르면, 이러한 불행한 사건은 수족관에 동종 개체인 “희생양”을 넣어줌으로써 해소되거나 아니면 수족관을 투명한 막으로 분리하여 그 막을 통해 보여지는 동일 성의 이웃에게 “건전한 분노”(healthy anger)를 발산하도록 함으로써 예방될 수 있다고 한다.25) 공격본능을 발산할 적절한 자극을 찾지 못해 억제될 경우, 이 본능은 매우 위험해져, 서로 잘 알고 이해하는 집단 구성원에게 위험하게 격발될 확률이 높아진다.26) 왜냐하면 오랫동안 공격성과 싸움 본능이 억제되면, 스스로 자극을 만들어내어 본능적 공격행동을 촉발할 “한계 값”(threshold value)이 극단적으로 낮아져, 심지어 한계 값이 0로 떨어질 수도 있다.27) 한계 값이 제로가 된다는 것은 곧 그 어떤 사소한 자극에도 바로 공격성을 표출할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공격성을 전환시키는 일은 진화의 가장 기발한 방책인데, 이는 공격성을 무해한 경로로 예인하는 것을 가리킨다.28) 동물의 행동들 중에서 주목할 것은 특정 운동 패턴이 계통발생 과정에서 본래의 특정한 기능을 상실하고 “순수히 ‘상징적’ 의식들”(purely ‘symbolic’ ceremoines)로 변화되는 것이다.29) 줄리안 헉슬리 경은 이를 인간 문화의 의례예식들(rites)이 발전하는 문화과정과 등가시켰다.30)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는 공격성을 건전한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는 문화적 기제나 상징을 발달시켜 왔는가?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잔혹스런 상징은 십자가이다.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들과 더불어 고통스런 삶의 순간들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사람이 된 신, 하느님. 그는 십자가에서 너무도 무기력하게 너무도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민족의 원수 로마 정부가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구원하고자 노력했던 그 민족이었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들이 원하는 ‘신-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의 잔혹한 공격성이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느끼고 생각한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되지는 말자고. 십자가 상징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너의 공격성을 엉뚱한데 표출하기 전에, 그를 ‘믿으라’고.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라고.’ 그리고 너의 공격성을 ‘정의’로운 일에 사용하도록 노력하라고. 정의라는 정당한 목적과 결합되지 않은 공격성은 위험하다고.
|
<각주설명> 1) 프랑수아 를로르 & 크리스토프 앙드레, 『내 감정 사용법』, 배영란 역 (서울: 위즈덤하우스, 2008), 103. |
|
<필자 소개>
감리교신학대학 종교철학과, 보스턴대학 신학석사, 드류 대학 철학박사. 종교학과 철학과 신학의 접경 지역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집중하며, 특별히 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의 연구결과들을 종교철학적으로 성찰해 나아가면서 ‘인-간’ 즉 ‘삶-사이’를 ‘인간-이후’ 시대에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갈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소속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혼종적 인간론 연구: 화이트헤드의 사건적 존재론과 진화론과 인지과학을 통한 사이-존재로서 인간론 구성’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
||||||
박일준(에큐메니안 신학위원장) iljoon85@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