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반응은 뜬금없고, 그렇기에 우습기까지 했다. “카톡!” 조금 전에 인터넷 신문으로 읽었던 글이 학교모임의 전체 카톡방에 공유된다. 곧이어 전체 카톡방에는 꽤 오래전에 석사를 졸업해 자주 만나지 못했던 후배의 글이 올라온다.

“추천받아 올라온 글. 저자는 주류에는 절대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 게다가 이런 식의 비주류적 글쓰기가 꽤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듯.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써놓은 글로 우리를 자극하려하지만, 과연 성공할까?”

이렇게 전체 카톡방에 공유한 글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그 후배는 여러 곳에 글을 올리는 나름 괜찮은 논술선생이다. 그러나 이곳은 학교모임의 전체 카톡방이다. 한 마디로 이 글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독자들 앞에서 공유되고 비판되고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에큐메니안>을 통해 B급 문화 논쟁을 시작한 장의준 박사의 ‘병X(장애인을 비하하는 비속어)’에 대한 글은 나름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또한 이해의 관점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글의 내용은, 세상 거의 대부분은 룸펜이고 달빛요정 역시 그러한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했던 가수였음을 밝힌 것이기에 이해하기 간단할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복잡한 이해의 관점이란 거기서 언급한 룸펜이 나와 너이기도 하지만, 결국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위하는 소위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비판으로부터 나타난다.

우리는 모두 룸펜이며, 병X이다. 어떠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해도 이 사실은 변경될 수 없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이 단어를 통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점은 우리 자신이 바로 룸펜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삶을 절뚝거리면서, 불편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삶에 능숙하지 못한 불편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늘 부정적 상황에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곰곰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불편함은 결단코 그냥 불편함 자체로만 남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해본다면, 이 불편함을 불러오는 우리 삶의 부정적 상황은 결단코 그냥 부정적인 어떤 것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곤 한다.

2. 부정성과 초월

전통적으로 부정성은 단지 허무한 것, 파괴적인 것, 혹은 좋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부정성이 결코 우리의 삶 안에서 쉽게 제거될 수 있거나, 혹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정성이란 오히려 우리의 삶에 함께 동반되어 있는 어떤 필수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이미 우리에게 앞서 주어져 있는 삶의 구성요소이다. 이것은 존재의 시작과 더불어 끊임없이 우리와 공존한 채, 우리의 삶과 존재방식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인간적 실존은 부정성에 의해 철저히 침투되어 있으며”¹⁾, “부정성은 인간적 세계를 구성한다.”²⁾

놀라운 것은 그러나 이러한 부정성이 우리의 한계의 설정근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이 한계들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초월의 가능근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초월이란 단순한 신적인, 종교적인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억압되어있던 현실로부터 해방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신적인 존재를 일컫는 단어에 이르기까지 어떤 넘어감(Übersteigen)을 의미한다.

부정성을 직시함을 통해, 이제 우리는 삶 안의 고착된 것들을 허물고, 새로운 실존을 향해 초월해 나아간다. 부정성과 한계를 직시함을 통해, 이제 우리는 세계 안에 고착되어있는 억압과 착취의 관계를 허물고 새로운 존재의 관계를 향해 초월해 나아간다. 초월함이란 이처럼 부정성으로부터 가능하다. 왜냐하면 부정성을 통해 한계에 충돌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한계를 넘어 새로움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란 한 사태가 끝나거나 멈추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시작되며, 비로소 이해되는 곳이다.”³⁾

그리고 이 부정성이 경험되어 삶의 변화를 불러오는 영역들은 의외로 우리의 삶 곳곳에서 발견된다. B급 문화란 바로 이것의 대표적 예이며, 이것은 우리의 주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의 음악 안에서도 면면히 드러나고 있다.

3. B급 문화: 우리시대의 부정성 이야기

우리시대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대표적 단어는 포기세대, 즉 3포, 4포, 5포 세대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취했던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등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현대의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몇 포 세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신문 및 방송들은 이 단어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크게 보도하고 있으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젊은이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원래 우리 세대가 포기세대니까 그렇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해댄다. 그리고 달빛요정이 만들어 불렀던 노래들도 바로 이러한 포기세대의 정조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붙어보자
피하지 않겠다
덤벼라 세상아
[중략]
넌 내게 넘을 수 없는 벽
너 내게 좋아질 거라 했어
너도 역시 똑같아
이제는 믿지 않아
사랑은 내게 없어
나한텐 없어
난 강해 질거야
난 삶의 주인이 될거야
아무도 나를 막을 수는 없어
가지겠어. 워-
내가 원했던 그 모든 것들을
(달빛요정의 곡 “나의 노래” 중)

달빛요정이 대결하고 있는 것은 세상이다. 세상은 벽으로 다가오고 대중들은 이것에 가로막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상황 하에서 세상은 이야기한다. “좋아질 거라고, 지금은 조금 안 좋아도 곧 좋아질 거라고.”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 부정적 상황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던지는 이유는 결코 이 세상에, 그리고 세상의 벽에 저항하지 않는 대중을 만들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은 언제나 평화가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양보하면서 살 것을 대중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막상 세상을 지배한다고 여겨지는 권력층들 자신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평화를 깨부수는 짓을 서슴없이 해댄다.

바로 여기에서 대중은 부정성의 극단에 이르러 분연히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사건을 접한다. 그들은 이 부정성의 경험을 통과한 이후 자연스럽게 세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거기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B급 문화는 이러한 대중들의 부정성의 경험을 극명하게 담아내면서 그들의 초월에 시동을 건다. B급 문화의 부정적 경험 안에서 이제 대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직시하고 해석하는 힘을 획득한다. 그들은 부정적 삶의 사실들을 남김없이 들음으로써 절망하지만, 곧바로 거기로부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을 획득한다. 

달빛요정의 노래처럼, “대중은 강해질 것이며, 대중은 삶의 주인이 될 것이고, 아무도 대중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었던 억압적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바꿔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간은 이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종의 초월을 경험한다.

그러나 달빛요정의 노래는 한 번의 큰 반향을 일으키고 나서 그 가사나 음악성이 B급의 성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2004년 12월 10일에 발매된 1.5집은 전작과 다른 내용과 스타일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한다. 어쩌면 대중들은 그 변해버린 스타일 안에서 이미 배가 불러버린 B급 문화인의 한 단면을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더 이상 대중 안에서 부정성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이 부정성을 통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정말 달빛요정이 변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달빛요정을 듣는 대중들이 변한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각도의 답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든 달빛요정의 노래가 더 이상 B급 문화가 가진 부정성의 철저한 경험을 대중에게 선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부정성의 경험이 약해진 이상 그것의 결과인 초월은, 즉 자기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는 사건은 더 이상 대중 안에서 생산되지 못했다.

B급 문화는 부정성에 대한 경험이 약해지는 순간 그 힘을 잃는다. 더욱 더 처절한 부정성이 두려워 피하는 순간, 그리고 그 처절한 부정성이 사라진 삶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 B급 문화가 가진 초월의 능력은 상실된다. 괜찮은 B급 문화를 잃었다는 아쉬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것은 그것을 만들어내고 공연하는 개인의 삶을 생각한다면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아티스트가, 그리고 그를 좋아해주던 팬들이 전보다 나아진 생활환경을 획득하고, 삶의 고난을 벗어났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중의 마음에서 달빛요정은 슬며시 사라져간다. B급 문화에 대하여 대중들은 의외로 냉정하다. 더 이상 부정성을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초월을 맛보게 만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대중은 더 이상 환호하지 않는다. 그 이후 몇 번에 걸쳐 발간된 달빛요정의 노래들이 의외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B급 문화와 대중 간의 긴밀한, 하지만 냉정한 관계 안에 놓여 있다.

4. 나가는 말,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는 B급 달빛요정

잊혀져가던 달빛요정이 다시 대중들 앞에 등장한 것은 불행하게도 그의 죽음 때문이었다. 2010년 11월 6일, 뇌출혈로 쓰러졌던 그는 혼자 사는 지하셋방에서 5일 동안 방치되어있었고,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망한다. 그리고 여기서 달빛요정의 B급 문화, B급 인생은 다시금 대중들을 부정성의 경험 앞에 세우게 된다.

가장 먼저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키면서 부정성을 경험하게 했던 것은 달빛요정이 대기업 인터넷 사이트로부터 음악 비용으로 도토리(돈으로 구매하여 인터넷 사이트상에서 서비스를 받는 전자화폐 단위)를 받았었다는 잘못된 소문 때문이었다. 대중들에게 나름 유명했던 B급 음악가가 처해있던 경제사정은 자신들의 삶의 부정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음악을 사용한 비용을 도토리라고 하는 인터넷 화폐단위로 지불할 수 있느냐!”는 공격이 그 대기업 인터넷 사이트에 폭발적으로 가해졌다.

물론 잘못된 소문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여러 면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대기업 인터넷 사이트의 횡포에 일침을 가하고, B급 문화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다. 부정성의 경험이 또 다시 나름 우리 사회의 초월을 이끌어내었다.
 
이외에도 달빛요정을 알던 다른 음악가들과 대중들은 다시금 그의 음악을 듣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기념하고 다시는 그와 같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는 B급 아티스트가 없도록 만들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한껏 들려오고 있다. 한때 배가 불러버려서 B급 문화의 특성을 져버린 것으로 평가되었던 달빛요정은 이제 자신의 B급 인생과 죽음을 통해 영원한 B급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의 노래는 그 누가 들어도 삶의 부정성을 고스란히 느끼고 초월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게 만드는 그런 힘을 획득했다. B급 문화의 힘이 B급 인생과 죽음에 의해 다시금 살아났다. B급은 그렇게 대중으로 하여금 부정성을 직시하고 거기에 대결하게 만듦으로써 초월로 들어서게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B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권력을 쥐고 포기세대를 조작하는 자들도, 또한 그 조작에 놀아나면서 끊임없이 벽에 부딪치는 대중도 사실 B급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부정적 경험에 벌거벗겨져 직면하는 그런 인간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B급 문화란 우리의 삶의 거울 같은 것이다. 우리는 삶의 부정성에 직면하면 할수록 우리의 억압된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획득하기 위해 초월해 나아간다. 그리고 B급 문화가 우리 삶의 부정성을 직시하게 하는 한, 우리는 강해질 것이며,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될 것이고,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B급 문화를 보고 들으면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삶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기 시작한다. 현대의 우리는 이처럼 B급 문화를 통해 이전의 것들을 넘어서서 초월로 들어선다.

이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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