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 처형 모습

오늘날 독재는 학습을 통해 완성된다. 학습되는 것은 다름 아닌 공포다. 공포 학습은 이를테면 ‘파블로프조건화(Pavlovian conditioning)’ 실험을 인간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수행된다. 동물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임상실험을 마친 이 실험이 이제는 인간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적용에 들어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파블로프조건화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실험대상에게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특정한 소리나 빛을 수 초간 지속하다가 그 자극이 끝남과 동시에 전기쇼크와 같은 충격을 가한다[조건자극(conditioned stimulus)]. 이러한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실험대상은 동일한 소리나 빛으로 자극되기만 해도[무조건자극(unconditioned stimulus)] 방어적인 행동과 더불어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일어난다.¹⁾ 고통을 예감하며 공포의 감정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공포가 다름 아닌 ‘학습된 공포’다.

이 경우 공포는 충격 자체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충격에 대한 예감 속에서 불안이 극대화되는 것, 그래서 충격이 들이닥치기 직전[이라는 착각 속]에 작동하는 감정이 학습된 공포인 것이다. 충격이 불확실한 미래라는 형식으로 예감될 때, 공포는 고개를 내민다. 이 공포의 근원은 충격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있는 것이다. 충격에 대한 예감에 있어서는 운명론에 이끌리고, 충격의 실제성에 있어서는 불확실이 가져오는 불안에 허덕이는 감정이 학습된 공포인 셈이다. 따라서 학습된 공포는 실제에 연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에 연원을 둔다.

이러한 신경학적 차원의 학습이 사회적 차원의 학습으로 연장되는 대표적인 장이 바로 정치판이다. 공포 정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불안을 의식적으로 조작”²⁾하는 일은 신경학적 공포가 사회적 힘으로 형성되도록 부추기는 힘이다. 불안 조장은 여론 조작을 통해 달성되기도 하지만, 사실 공포 정치 자체가 이미 불안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생각해 보라. ‘북한이 금방이라도 쳐들어올 것이다’라거나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고 이로 인해 민생이 어렵다’는 식으로 공포 정치가 만들어낸 어젠다는 그것이 적절하게 가공되어 여론 조작에 투입되기 이전에 이미 대중적 정서로 전제되어 있는 한에서 여론 조작을 가능케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학습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찬양하자. 이 교육 시스템은 정치가 공포 문화를 내면화하도록 성공적으로 디자인되었다. 이 교육 시스템을 통해서 사람들은 세밀하게 조각난 부분들의 전문가가 되어 사회에 투입된다. 하지만 전체를 조망하여 자신의 위치를 판단할 사유와 정서의 힘을 획득하지 못한 채 경쟁의 정글 한가운데 방치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일상화된 공포다. “나는 무섭다”는 읊조림 속에는 대안이 없다는 무력감과 회의가 담겨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행동하지 않는 자조 섞인 지성(!)이다. 이들의 눈동자는 불안과 공포로 충혈 된 채 흔들린다. 일상화된 공포 속에서 충혈 된 눈동자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일상일 뿐이다. 이 속에서 공포는 특별히 뭐라고 정의되지 않은 채 효력을 지니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중독이다.

흥미롭게도 공포의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인 편도(amygdala)는 중독과도 관련된다. 중독은 자극과 이에 대한 보상 사이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정상적인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점점 그 보상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편도는 감정적 자극-보상 연합을 담당하는 까닭에 중독이 될 경우 이것도 활성화된다. 이러한 사정은 공포 정치에 의해 사회적으로 학습된 공포가 일종의 중독현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신경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정당화할 빌미를 준다.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상상이지만, 편도가 공포와 중독 모두에 관련된다고 하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공포가 중독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우연스럽게도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물론, 근거 없는 상상이다.

여하간 공포도 감정인 한, 그리고 모든 감정은 몸의 항상성(homeostasis)을 잘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기제인 한,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공포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눈앞에 화가 난 곰이 서 있다고 하자. 이때 필요한 건 뭐? 바로 공포다. 이 상황에서 한가하게 코나 파고 앉아 있다면 정말 큰일 아니겠는가? 공포는,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벗어날 동기를 적극적으로 부여한다.

그렇다면 공포 정치가 만들어낸 ‘학습된 공포’는 정말 이상한 놈이다. 이놈은 학습된 사람들로 하여금 무력감에 빠진 회의주의자가 되게 한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절망 앞에서 자신이 갇힌 이 세계는 대안이 없는 완전체라는 생각에 굴복하고 순응하게 한다. 파블로프조건화 실험이 보여준 것은 조건자극[반드시 고통을 동반함]과 무조건자극[고통의 전조만 있고 고통을 동반하지 않음]을 구별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공포가 학습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포 정치가 사회적 차원에서 제공하는 학습된 공포는 도대체 실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게 함으로써 공포를 일상화한다. 이제 공포는 일상이고,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무감각해진다. 세월호 앞에서도, 메르스 앞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앞에서도, 부정선거 의혹 앞에서도, 천안함 앞에서도, 숱한 죽음과 절망 앞에서도, 우리는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늘 공포이기 때문에, 전쟁과 경제의 위협 앞에서 경쟁하고 생존해야 하는 일상이기 때문에.

그런데, ‘학습된 공포’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실체인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작동하는 이 공포는 그저 기만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거짓 공포’다. 아마도 이 정부는 GNP가 세계 1위를 하더라도 경기침체를 말할 것이고, 북한이 없는 경우에라도 전쟁으로 국민을 위협할 것이다. 이 공포는 사실 무조건자극이다. 그래서 ‘공포’란 놈, 그놈은 뭣도 아니다.

문제는 공포를 학습한 이들은 공포 정치가 생산해 내는 담론 앞에서 오금이 저린다는 점이다. 그것은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어서 고치기가 쉽지 않다. 일종의 중독인 것이다. 애써 자각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은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롬 7:19)라는 바울의 고백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우리는 공포 앞에서 ‘약한 자(astheneia)’가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공포를 배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취약하다는 의식을 배양하는 것이다. 공포 정치는 분명하게 정식화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누적 효과는 사회가 취약하다는 의식을 강화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력하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공포의 사이렌 소리에 저항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쉽다.³⁾

하지만 결국 희망은 우리 ‘약한 자들’에게서 나온다. 약한 자들이야말로 학습된 공포의 최전선에서 공포에 반응[해야]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약함은 직면한 위험 앞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며, ‘거짓 공포’가 야기하는 패배와 상실로부터 배우도록 추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존 능력이 약함을 통해 획득된 전리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습된 공포, 그놈은 뭣도 아니고, ‘대안은 항상 있다.’

끝으로, 공포 정치를 이끄는 우리의 주체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보통 공포는 생명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감정의 기제인 바, 신경학적으로 볼 때 매우 보수적인 속성을 갖는다. 사실 정치적으로도 공포 정치를 활용하는 주체들, 그래서 스스로도 그 공포를 확신하는 이 주체들은 보통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지키려고 몸부림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공포 정치 주체들은 사실 아무 것도 안 지킨다. 전시 군 통수권 문제를 볼 때, 그들은 주권을 안 지킨다. 경제정책을 볼 때, 그들은 국제금융자본으로부터 우리 시민들의 경제를 안 지킨다. 건물도 안 지키고, 땅도 안 지키고, 하늘도 안 지키고, 바다도 안 지키고, 공공재도 안 지킨다. 역사도 안 지키고, 국민들의 안전도 안 지킨다. 불가피하게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위험에 처한 어떤 국민도 책임을 지고 지켜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포가 사실 조작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보수주의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국가 내 어떤 요소도 잘 ‘보존하고 지키지’ 않는 이들은 사실 어떤 면에서 상당한 진보주의자들이다. 다만, 보수적 국가주의를 외치면서도 국가 구성원에 대한 애정은 결핍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전두엽이 상당히 손상된 정신적 결손이 있는 진보주의자들, 그래서 정작 보수도 진보도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다. 이들에겐 ‘보수’라는 이름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기 위한 연막일 뿐이다. 그들은 그저 뭣도 아니다. 굳이 이들을 규정하자면 그냥 ‘양아치’인데, 이 이름을 쓰기도 상당히 뭐하다. 전국의 진정한 ‘양아치’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진정한 ‘양아치’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 치고 삥 뜯지는 않는다.

신익상  yotyo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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