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통일 칼럼 연재
할 말이 있다 (4)<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11.28 21:59

   
 
장준하는 이글 <할 말이 있다>를 이렇게 말했다.

“1957년 <사상계> 3월호에 함 선생님의 유명한 글 <할 말이 있다>가 발표되었다. 이 글은 <사상계>를 돋보이게 한 글이요. 함 선생님을 우리 사회에서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 글이다.”

함석헌의 이 <할 말이 있다>는 민중이 함석헌의 입을 빌려 ‘민중이란 무엇인가?’, ‘민중이란 누구인가?’하는 민중 제 자신의 설명이 아닌 선언이요. 다른 하나는 역시 함석헌의 입을 빌려 그 민중의 반민중 계층을 향한 노호(怒號)였다. 다음은 민중 자신이 함석헌의 입을 통해 밝히는 민중 자신의 제 모습이다.

“…나는 민중이다. 민(民), 민초(民草)라니 풀 같은 것이다. 나는 풀이다. 들에 가도 있는 풀, 산에 가도 있는 풀, 동양에도 있는 풀, 서양에도 있는 풀, 옛날도 그 풀, 지금도 그 풀, 이 담에도 영원히 그 풀일 풀, 어디서나 언제나 다름없는 한 빛깔인 푸른 풀. 나는 사람 중의 풀이지 아름드리 나무도, 나는 새도, 달리는 짐승도, 버러지도, 고기도 아니다. 내가 썩어 그 나무가 있고, 내가 먹혀 그 노래, 그 깃, 그 날뜀이 있건만 언제 그렇다는 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더라. 그래도 또 먹히고 또 썩는 나지,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흙을 먹고 살아 남의 밥이 될지언정 누구를 내 밥으로 하지는 않는다. 모든 생명이 밑에 깔렸건만, 또 아무리 잘나고, 아름답고, 날고 긴다 하던 놈도 내 거름으로 돌아오지 않는 놈은 없더라. 태평양 저쪽 대평원 풀나라에는 정말 피풀, 풀사람이 나와 <풀잎> 노래를 읊었건만 이 풀밭에서는 언제 노래가 흘러날까?

밟아도 밟아도 사는 풀, 비어도 비어도 또 돋아나는 풀, 너는 무한의 노래 아니냐? 다 죽었다가도 봄만 오면 나는 풀, 심은이 없이 나는 풀, 너는 조물주의 명함 아니냐? 푸른 너를 먹고 소는 흰 젖을 내고, 사람은 붉은 피가 끓고, 소리도 없는 너를 먹고 꾀꼬리는 노래하고, 사자는 부르짖고, 썩어진 물에서나 마른 모래밭에서나 다름없는 향기를 너는 뿜어내니 너는 신비의 곳 아니냐?

풀, 네 이름을 누가 다 알 수 있느냐? 네 수(數)를 누가 셀 수 있느냐? 빽빽이 서도 다투는 일 없고, 드물게 서도 홀로 차지하는 법이 없고, 나무는 조금만 자라도 그 밑에 누가 살 수가 없고, 버러지 새끼도 나기만 하면 서로 떠미는데, 너는 그런 법이 없지.

함께 나서, 함께 자라, 함께 썩어, 함께 부활하는 풀, 너는 평화의 왕관, 하나님의 뭇아들들의 돗자리, 겸손한 자 땅을 차지한다니 너 두고 한 말 아니냐? 너를 참말이신 분은 너를 솔로몬보다 더 영광스럽다하고 하나님이 너를 기르신다 했건만 그 너를 아는 자가 없구나.

그러나 누런 금도, 붉은 구슬도, 가지각색의 만물도 다 없어져도 아래에서 연푸른 평화의 너와 위에서 검푸른 거룩의 하늘은 저 하늘 나라에 가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풀이다. 풀사람(民草)이다. 민중이다.”

장준하는 함석헌의 이 글을 “함 선생님의 자화상인 동시에 민중의 자화상”이라고 했다(「自由魂의 몸부림」, 福祉社 「平和主者咸錫憲」, p151). 민중에겐 할 말이 있다. 할 말을 함으로 혼, 정신, 사상이 자란다. 그래서 역사의 진화에 절대로 요구되는 것이 소위 언론이라는 것, 그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다. 우주의 진화 중 가장 위대한 진화의 실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없는 우주를 상상해 보라. 천하 공간의 모든 존재들은 생물이거나 무생물이거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사람이었으므로, 사람이 있어서만 의미를 갖는다. 인간을 위해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인간 없는 우주 만물은 그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사람>이라는 것까지를 내놓은 이 우주의 진화는 실로 기이하다 않을 수 없다.

아 사람을 내놓기까지의 위대한 우주의 진화여!

   
 
우주의 진화를 일러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절정(絶頂)의 것으로 정신(精神)을 지향하게 됐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정신>의 공유를 무엇이 가능하게 하는가? 말, 말이라는 것이다. 오늘 사람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진화를 이루어 갈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이루기까지 말이다. 그것이 곧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민중은 입을 닫고는 못사는 존재다. 그래서 민중은 말을 해야 한다.

<할 말이 있다>, 세상에 가졌다는 자들, 특히 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자들은 그저 세상이 지금 꼴, 곧 이 꼴로 조용히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역사의 특성은 현상의 고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특성이 진화(進化)이기 때문에! <진화>(進化)! 그래서 말이, 큰 말(大言)이 있어야 한다.

<할 말이 있다>! 그래서 함석헌이 입을 연 것이다. 그것은 시종일관 민중의 위임을 통해서 민중의 실체를 훼손하는 일체의 거짓들을 향해서였다. 소위 통치자라는 것을 비롯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체제를 비롯해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 국가 권력의 주구(走狗) 노릇에 혈안이 되어 있는 문화계를 향해, 그리고 타락의 극한에 이른 사회 유흥계층을 향하여 노호와 질타(叱咤)를 퍼붓는다.

“할 말이 있다. 제발 세례요한이여 옵시사! 와서 그 때의 맑은 요단 강물을 떠서 ‘회개하라, 회개에 합당한 실천을 하라’고 휘뿌렸던 것 같이 청계천 구정물이라도 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미친 연놈들의 자동차에 뿌려 줍시사! 해방 10여년에 국민은 점점 못 살게 만들면서 정치한다고 문패만 크게 건 국회, 정부, 관청 위에, 감옥보다 더 높은 고운(?) 말로 꾀어온 가엾은 심령들을 가두어 쭉쭉 울리며 겉옷, 속옷을 홀딱 다 빼앗아 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밖으로는 영혼 구원한다 하는 종교, 성당 위에,

날탈마리(벌) 같은 교육자라는 것들이 들어 있어서 골목으로 농촌, 어촌으로 두루 다니며 메뚜기 같은 백성들을 보고 출세시켜 주마, 군대 안가게 해주마, 달래며, 귀엽고 착한 어린 것들을 모아다가는 칸칸이 몰아넣고 무언지 알 수 없는 날, 날날, 날하는 소리를 얼마동안 하면 그 귀엽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나오는 건 저희와 마찬가지 사나운 이빨에 독한 침, 간사한 소리를 가진 벌 떼 뿐인 버리집 같이 서 있는 학교 위에, 날아가는 돈 잡는다고 구데기 떼 같이 밀려가는 무리들 위에,

그 무리들을 또 박차고 먼지를 공중에 날리고 바람같이 지나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 자동차와 그 안에 사람이나 몇 무더기씩 잡아 먹었노라는 듯 제치고 앉은 미친 연놈들 위에, 또 그 모든 것 다 보면서 나라 망하는 줄은 모르고 재미난 구경한다고 국장 앞에 입을 헤벌리고 줄지어 섰는 저 미친 젊은 놈, 젊은 년들 위에 제발 그 구정물이라도 끼어얹어 줍시다!”

‘할 말이 있다’면서 입에 거품을 문 함석헌의 말은 상석에 앉은 대관들, 종교가들, 교육자들, 문화인들로선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상놈’의 소리였다. 무례하고, 오히려 부도덕한 패례한(敗禮漢)의 독설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당시 <사상계> 독자들이라면 자타가 공인하는 각성된 계층이었는데도 불쾌감을 느껴야 할 그 글에 대체적으론 공감과 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함석헌이 사실을 가감 없이 쏟아 놓았기 때문 이었다.

함석헌의 <할 말>은 계속된다.

“‘할 말이 있다’하는 나보고 ‘네가 누구냐’하는가? 내가 누구임을 말하리라. 나는 세례요한도 아니요. 나는 또 이 나라의 대통령도 아니다. 처지가 무너지면 무너졌지, 이 내가 대통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천지가 무너지면 무너졌지 아무리 준다해도 내가 하지도 않을 것이다. … 나는 대통령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 꿈을 꾼들 될 뻔 택도 아니다. 지금 벼슬하는 사람들은 모두 받는 것은 없이 나라 위해 희생한다는데, 나는 그런 덕도 없거니와 제일에, 그들같이 허공에서 옷, 밥, 자동차를 불러내어 잘 먹고, 잘 입고, 잘 달리며, 노는 요술을 모르니 할 수 없다. 나더러 하라면, 받는 봉급이 없다면서 이슬 먹고 사는 매미가 아닌 이상은 절도나, 강도나, 살인이나, 강간이나, 사기, 횡령, 공갈, 협박을 하지 않고는 그렇게 사는 재주는 없을 것이다. 그럴 마음 없으니 그것은 못하는 것이다. 또 그런 것들에 굽실거려 국물을 얻어먹으면 나도 마찬가지 일 터이니 나는 벼슬아치 앞잡이도 못한다.”

함석헌의 할 말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종교계에 들이대는 말이다.

“나는 또 무슨 종교의 거룩한 직원도 아니다. 중도, 목사도, 감독도, 신부나 주교도 아니다. 모가지를 열네 번 짤렸으면 짤렸지 신부, 목사는 절대 아니 된다. 되면 무엇보다도 백주에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방구석에 불을 켜놓고 거기 절을 해야겠으니 그런 얼빠진 짓이 어디 있으며, 낮도깨비의 발에 입을 맞춰야 하고, 또 나도 똑같은 인간이면서 하나님 되는 척하고 선남 선녀를 보고 절을 해라 해야 할 터이니 그건 못한다. 속엔 앙칼보의 치마보다도 더 얼룩얼룩한 세상을 그리면서 겉으로는 아니 그런 체 검은 예복을 입고 서야겠으니, … 있지도 않은 천당, 지옥 가보기나 한 듯이 조작해 철없는 여자들 손에서 가락지를 뽑아내고 혼을 뽑아내야지 네 영혼 건져주마 하는 대신 이 세상에선 개, 돼지 같은 살림에도 만족하고, 정신적으로 거세를 하여 이리같은 압박자들이 맘 놓고 해먹게 해주는 대신 신교의 자유(信敎自由) 얻어가지고(신앙의 자유는 사실 하나님이 양심 위에 주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실속으로는 제가 세상에서 향락하는 보장을 얻어야겠으니 나는 천당, 지옥은 아니 믿어도 내 양심에 내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서워 그런 짓은 못한다. 만일 지옥이 있다면 이담 차라리 지옥 가는 게 낫지. 나는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은 민중을 속이고 업신여기고 팔아먹을 수는 없다.”

함석헌의 <할 말이 있다>에서의 이 종교계에 들이대는 말이 바로 잇대어 <함석헌씨에게 할 말이 있다>는 함석헌과의 논쟁을 불러내는 도화선이 된다. 함석헌의 할 말은 교육계로, 문화예술계로, 언론계로 확산된다.

“나는 또 교육자도, 학자도 아니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