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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있다 5<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5.12.03 17:29

   
 
대학생 시절부터, “오랫동안 그에게 배운 내가 늘 느끼는 것은 그이야말로 참으로 타고난 교사라는 점이다”라고 경북대 명예 지질학 교수 장기홍(章基弘)은 말한다. 그의 숱한 오산 출신 제자들은 <선생님> 함석헌을 더할 수 없을 만큼 우러른다. 그런 함석헌이 자신은 교육자도, 학자도 아니다면서 타락한 교육을 향하여 포효(咆哮)한다.

“나는 또 교육자도, 학자도 아니다. 젊어서 철 없어서 학교 선생이라고 해본일이 있으나 그것 그만 둔지 20년이요, 이제 교사 소리 나오면 무섭기만 하다. 될 수 있다면 했으면 좋은 일이나 내가 된다기보다 남이 나를 선생으로 알도록 살아야 할 터이니, 내 편에서 누구를 가르쳐 주마 할 수 없고, 요새 교육자 되려면 돈 셈 잘 칠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 모르지. 학자 되려면 가위질 잘하고 풀칠 잘할 줄 알아야지, 또 뼈다구는 쏙 빼고 지렁이 같아야지, 학생 보고는 없는 것도 있는 체, 엿장수 모양 잘 늘려먹을 줄 알아야지. 담고 앉아 아이들보고는 너희 아버지, 너희 어머니 피를 어서 뽑아다 내 마실 술을 빚으라 해야겠는데, 나는 그건 천성에 맞지를 않아 못한다.”

함석헌의 질타는 이제 문화예술계로 옮겨진다.

“나는 또 예술가도 아니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 없어 못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원통한 속을 몇 천 년을 두고 억눌리고, 짓밟히고, 물리고, 찢기고, 지지우고, 째우고, 하다하다 못해 허리가 짤린 이 한, 이 아픔, 설움을 한번 하늘땅이 떠나가게 울었으면 좋으련만 속에선 타는데, 이 목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시니, 그림이니, 음악이니 해도 무어냐. 울음 아니냐? 남들은 참 잘 우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몇 천 년을 구박받는 계집종 모양으로 울음답게 울어보지도 못하지 않았나? 이젠 ‘나도 사람이예요!’하는 생각은 나건만 왜 울음조차 아니 나올까? 누가 내든지 참 울음을 내기만하면 곤륜산맥이 저릉저릉 울리도록, 태평양의 물결이 밀려나가 로키 산맥을 잠그도록 삼천만이 따라 울듯도 싶건만 아무도 끝을 내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구역질나는 째즈곡이 날뛰는 길거리엘 나가기도 싫고, 상아 의자에 앉아 금촛대에 불켜놓고 계집종 발가벗겨 춤 취우며, 인생을 관조하고 앉았는 격의 부르주아의 몰락해가는 문화예술의 찌꺼기를 먹으며, 뉘 사랑받을 기웃거리기도 싫다.”

함석헌은 이제 우리나라 역사의 참극(慘劇)을 탄(歎) 한다. 무언극(無言劇)이라는 것이다.

“이 민중은 입이 없다. 표정이 없다. 사람인 이상 입이 없으리오만 있고도 말을 아니하고 살아온 민중이다. 사람인 담에야 속이 없으리오만 그 속을 나타내지 않고 온 사람들이다. 할 말이 없어서일까? 아니었다면 세계 어느 나라의 민중보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가슴에 사무치게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발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시시비비의 판단이야 없지 않지만 있는 소감을 발표했다가는 언제 판국이 바뀌어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은 오랜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 알기 때문에 구차한 목숨 하나를 보전하기 위하여 그들은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그러나 민중이 무표정일수록 구경하는 격이 되면 될수록 특권자들의 싸움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되고 압박은 더욱더 거리낌 없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 비겁한 민중은 점점 더 말을 아니하고, 점점 더 무표정한 구경꾼이 됐다. 이리하여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또 원인이 되어 세계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무언극의 역사는 엮어졌다. 참혹하지 않는가? 비통하지 않은가? 무언극이라니, … 생명은 가만있지 못하는 것, 말을 해야할 터인데, 하면 죽을 것이므로 하지도, 아니 하지도 못하는 것이 무언극이다. 꿈틀거림이다. <죽기 전 한번 움직거림>이다. 이런 음성(陰性)의 역사가 어디있나? 독자여, 그대와 나는 다 이런 음성의 역사에서 같이 나온 존재다.”

함석헌은 민중의 비극 중의 비극이 ‘말을 잃은 것’이라하면서, 이 민중에게서 ‘말’을 빼앗아간 것이 소위 「벼슬아치」라는 것들이었다 단언하고, 그 벼슬아치라는 것들을 일러 “하늘에서 벌 받아 떨어진 것들”(天之戮民, 천지륙민)이라 성토한다. <할 말이 있다>는 함석헌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 제 노릇할 맘 없고, 남에게 대해 개같은 충성이나 하는 것을 도덕과 신앙으로 아는 자에게는 민중의 도덕, 종교는 맞지 않을 것이다. 주어도 발로 짓밟을 것이다. 하늘 생각 모르고 땅에 붙은 향락만 아는 돼지 같은 인생관을 가진 자는 민중의 자유, 평등 정신을 원수같이 알아 도리어 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 우리는 민중에로, 젊은 민중에로 향한다. … 사상계도 우리의 가슴을 헤칠 곳은 아니다. 우리의 이러한 준비말을 듣고도 자존심의 손상을 느끼는 사람들은 스스로 껍질 속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우리 가슴을 주고 받으며, 저 푸른 들로 나간다! 나가자, 할 말이 있다.”

함석헌이 이 글 <할 말이 있다>를 쓸 때, 자신의 그 글이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해도 그의 글 마지막 내용은 함석헌이 충분히 자신의 글에 대한 발론이 있을 것 정도는 예상을 했고, 더 나아가 논쟁을 기대하기까지 한 것이었다고 여겨지게 한다.

“제 노릇 할 맘 없고, 남에게 대해 개같은 충성이나 하는 것을 도덕과 신앙으로 아는 자에게는 민중의 도덕, 민중의 종교는 맞지 않을 것이다. 주어도 발로 짓밟을 것이다. 하늘 생각 모르고 땅에 붙은 향락만 아는 돼지같은 인생관을 가진 자는 민중의 자유, 평등 정신을 원수같이 알아 도리어 해하려고 할 것이다.”

사상계를 통해서거나 혹은 인용보도들을 통해 함석헌 자신의 글을 읽게 될 독자들을 함석헌은 아주 확실하게 두 갈래로 나누어 놓고 있다. 민중과 반민중으로 말이다. 자신의 글을 거부하는 자들을 개, 돼지 운운하면서, “그러니 자연 우리는 민중에로, 젊은 민중에로 향한다”라는 말이 그렇다. 다음 말은 더욱 그렇다.

“사상계도 우리의 가슴을 헤칠 곳은 아니다. 우리의 이러한 준비말(함석헌은 자신의 <할 말이 있다>를 준비말이라고 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필자 주)을 듣고도 자존심의 손상을 느끼는 사람들은 스스로 껍질 속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우리 가슴을 주고 받으며, 저 푸른 들로 간다.”

반론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반론은 논쟁이 되고, 논쟁은 수개월 동안 계속 되었다. 서창제, 신사훈, 윤형중…, 전투적인 필진들이 필봉을 들고 함석헌을 에워쌌다. 그 중 사상계는 이미 밝힌 바대로 윤형중 신부의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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