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인 이곳 동티모르 사람들은 주일이면 가장 좋은 옷으로 단정하게 차려입고 성당에 간다. 그러니 주일이면 딜리 시내가 다 환하다.

나는 생각하기를 동티모르는 사철 더운 나라라서 옷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동티모르 사람들은 내 생각과는 달리 때와 장소에 따라 격식을 차려 옷을 입었다. 더운 나라라고 보기에 민망한 옷은 더구나 조심해서 입었다.

학교만 보더라도 그렇다. 남자 선생님들은 티셔츠를 입더라도 꼭 칼라가 입는 옷이나 남방을 입는다. 여선생님들은 원피스나 블라우스에 치마 또는 치마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한다. 여선생님들이 티셔츠나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나는 동티모르에 들어 올 때 나름 들고 온 옷 보따리가 작은 것은 아니었는데도 그중에 치마는 달랑 하나를 가지고 왔다. 블라우스를 몇 개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라운드 티셔츠에 바지로 편한 복장의 옷을 가지고 왔다. 그나마 들고 온 블라우스 몇 벌도 강한 햇볕에 낡고 색도 바래졌다.

딜리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 생활용수는 일단 끓여서 식힌 물을 정수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옷까지 그 물을 사용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빨래를 해도 물도 좋지 않은데다 한번 만 입어도 땀이 나서 밤낮으로 옷을 빨아대니 옷이 쉬 헤지는 것은 당연하다. 동티모르에 와서 낡고 떨어져서 옷을 못 입는 다는 것을 실감하며 지낸다.

그럴 때 나는 구제 옷가게에서 옷을 사거나 서늘할 때를 생각해서 가지고 온 긴소매 옷을 잘라 반소매 옷으로 만들어 낡은 반소매 옷을 대신해서 입었다.

딜리에는 곳곳에 수선집이 있다. 나는 긴소매 옷을 반팔 옷으로 만드느라 수선 집을 자주 갔는데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수선집도 집 가까이에 있는 집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새로 옮긴 수선집 아주머니는 일하는 스타일이 내 스타일과 같다. 내 스타일이라 함은 어떤 일에 정교함도 없고, 계산이 없이 그냥 덥석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수선 집 아줌마의 옷 수선하는 스타일이 딱 그렇다. 가까이 지내는 선생님 한 분이 내가 옷을 가지고 궁상을 떠는 것을 보시더니 입으면 시원 할 거라며 인조 원피스 하나를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키가 크고 나는 작으니 원피스 길이가 맞지 않아 길이를 줄여야 했다.

수선집을 찾아가 “ 아주머니 이 원피스 길이가 길어서 너무 더울 것 같아요. 길이 좀 줄여 주세요. 언제 찾으러 올까요? ” 했더니 금방 고쳐 줄테니 그냥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자로 재지도 않고 그냥 가위를 들고 싹뚝싹뚝 자르더니 순식간에 원피스 하나를 미니스커트로 만들어 놓았다. 그 옷을 집에 가지고 와서 입어보니 내가 10대 소녀도 아니고 도저히 그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그 옷을 입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날 원피스를 자르고 남은 천을 가지고 가서 다시 붙여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박음질을 했는지 치마 길이가  한쪽은 내려오고 한쪽은 올라간 한국에서 잠깐 유행했던 길이가 다른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 옷은 결국 원피스를 주셨던 손끝 야무진 선생님이 길이를 제대로 잡아 손으로 떠 주시기로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단정하게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 빗으로 빡빡 빗더니 머리를 늘어트리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내가 단정하게 묶은 머리가 좋다고 해도 지금 모습이 더 좋다며 그냥 찍으란다. 저 고집불통 어이는 없지만 저 또한 나와 같으니 사랑스럽게 봐 줄 수 밖에 ^^

나는 동티모르에 들어 올 때 정장 상의도 두벌을 가지고 왔다. 늦봄이나 초가을에 입기에 딱 좋은 그 옷은 어머니께서 주신 옷이다.

“이 옷은 네가 사준 거라 좋은 옷이야. 그러니까 가지고 가서 필요 할 때 입어” 라며 어머니가 내 눈치를 보시며 가방 안에 넣어 주신 옷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들고 왔었다.

나는 마흔 중반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7년 이란 긴 세월 동안 학교 다니느라 이어 외국에 있으면서 항상 곤궁하게 살았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께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드린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니가 사준 옷이니 좋은 옷이다”라며 기억에도 없는 옷을 주셨고 나는 덜렁거리며 생각 없이 싸들고 온 옷 중에 그래도 어머니가 주신 정장 옷이 있어 필요 할 때 적절하게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옷은 상대편에 대한 예의로 입는다고 한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러한 예의를 잘 지킨다. 그들이 꼭 좋은 옷을 입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대 가족을 이루며 어른을 존중을 하며 살 듯, 옷도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성의껏 갖추어 입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올 때 생각 없이 옷을 꾸려 가지고 왔지만 나도 이들처럼 주일날 교회를 갈 때나 옷을 갖춰 입어야 할 때는 망설임 없이 어머니가 주신 정장 옷으로 차려 입고 길을 나선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걸치고 말이다.

<임정훈>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 딜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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