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6일 일요일, 맑음

엄마는 당신 물건을 잘 챙기신다. 혹시 누가 가져갈까봐선지 당신 신발을 꼭 방안에 들여놓고 방문도 꼭 안으로 잠그신다. 이모가 찾아와 아무리 방문을 두드려도 귀가 잘 안 들려 못 열어주시면서... 호천이가 사드린 밀차도 ‘조정옥’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이름을 써 붙여 놓았지만 서울집 총각 엽이가 자전거를 비싼 것이라고 제 방에 들여놓는 것처럼, 엄마는 반드시 방안에다 들여놓으신다.

그러던 엄마가 어제 보니까 엄마의 방 열쇠도 안 보이고 방문도 늘 열려 있다. 잠그고 단속하시던 것도 이제는 ‘놓아라!’ 하신 것 같다. 신발과 밀치는 아직 방안에 들여놓으시지만...

아침식사를 아침 7시 30분에 도우미가 가져다 놓았는데 입맛 없다면서 안 잡수시다 9시 반이나 되어야 한술 뜨신단다. “엄마! 나 배고파요. 같이 먹어, 응?” 마지못한 듯 엄마는 밥을 뜨고 나는 찬을 얹어드리면서 “한 숟갈만, 한 숟갈만 더 먹어, 엄마 응?” 하며 달랜다.

이럴 땐 아주 착한 아기지만 50여 년 전 일들, 나 중학교 다닐 적의 일은 용케도 기억하신다. “너희 김장했냐?” “네.” “얼마나?” “서른 포기요.” “그걸 김장이라고 했냐? 난 200포기까지도 했다.” “그걸 누가 다 먹어요?” “너희가! 찌개도 하고 두드려 짜서 만두도 만들고 학교선생들 점심에 갖다 먹고...” 엄마 혼자서 다 했어요?“ ”가사 실습시간에 애들도 도왔지...“ 그러다 조금 뒤 다시 물으신다. ”너희 김장했냐?‘부터 ’난 많이 할 땐 200포기까지 했는데...‘라는 레페토리가 열 번도 더 반복된다.

밥만 잡수시면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 엄마... 얼굴색도 보얗고 말잘 듣는 아기, 아주 귀여운 아기가 되어있다. 너무 고요하고 평화로운 얼굴이다. 내 친구 하나는 산소마스크에 영양제로 연명하는 엄마를 몇 해 째 지켜보며 사는 게 비참해져 자기가 죽을 것 같았단다.

미국에 있는 누나는 일주일 간격으로 전화를 해 와 그 산소마스크 뽑아버리라고 성화였단다. “누나, 누나가 와서 빼라. 난 꿈에 나타나실 까봐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아닌 누가 그 생명을 정리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더란다. 이젠 다 지나간 얘기지만 부모의 코에 씌워진 산소마스크는 절대 못 뗀다고, 아예 씌우지 말아야지 한 번 씌운 것은 절대로 못 뗀다는 게 그 친구의 조언이다. 병원도 한도 끝도 없이 ‘중환자 치료’라는 명목으로 돈을 벌면서 절대 못 떼게 만들고...

세류동성당 크리스마스트리는 세월호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11시 세류동성당 11시 미사에 보스코의 ‘대림절 특강’이 있어 찾아갔다. 12월의‘인권주일’을 맞아 보스코는 우리 신앙인에게는 항상 자기 신앙생활을 재검토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대림절 내내 “회개하라!”는 성경말씀을 들으면서 ‘판공성사’를 보면서 성탄절을 준비한다고, “제3차 세계대전은 야금야금 이미 시작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국제정치까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느라, 아랍세계를 상대로 미국과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 벌이는 전쟁과 학살의 인권유린을 누가 책임져야겠느냐고 장장 50분간 열강하였다.

보스코를 초빙한 프란치스코회 유이규 신부님은 보스코가 무척 존경하고 함께 활동한 분으로, 지난 60년간의 군사독재하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시국사범들의 인권을 위해서 동분서주하시던 ‘인권변호사’ 고(故) 유현석 변호사님의 아드님이다. 우리 우이동집 골목을 법정시비에서 지켜주신 분도 유변호사님이다. 역사 속에 우뚝 선 분의 아드님답게 사제단의 시국미사에는 반드시 유신부님의 얼굴이 보인다.

수원교구청에 들러 새로 나온 「삼위일체론」 한부를 (지난 여름 ‘신앙과경제’ 시리즈 책을 보내주신 답례로) 이주교님께 전해드리고, 그곳에 가까이 사는 승우씨가 마중을 나와 그 집에 잠시 들렸다.

로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찬이와 시영이는 어른을 대하는 품이 자연스럽고 성숙하다. 우리 풍토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안녕하셔요' 꾸벅 인사만하고 방에 들어가버리지만 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끝까지 함께 담소하며 대화를 나눈다. 저 먼날의 어린이들이 자라서 아빠와 붕어빵인 시찬이는 벌써 고3(요샛말로 ‘원로(元老) 고딩’)이 된단다. '원로'의 학습을 방해할까봐 식구들은 집안에서도 숨을 죽이고 발끝으로 걸어야 하고, 엄마는 직장을 쉬고 아이에게 올인해야 하나 고민까지 하는데 아들은 행여 그럴까봐 오히려 걱정이다.

여하튼 아이들은 저렇게 자라 어른이 되고 그만큼 우리는 늙어 가는 세월을 절감하며 그 집을 나와 대전 코스트코를 들러(파네토네를 발견하는데 성공!) 휴천재에 오니 밤 10시.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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