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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이수호 칼럼>
이수호 | 승인 2015.12.10 17:27
   
▲ 사진출처 : 뉴스원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의 최대 쟁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였고, 그 다음이 박근혜 표 노동개악과 쌀값 인상이었다. 그런데 광우병 쇠고기 촛불 이후 가장 많은 13만이나 모여, 광화문과 종로 일대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들썩였는데, 대회가 끝나고 오히려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여론에서 사라져버린 가운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추진되고 있다. 저자들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깜깜이로 가고 있는데도, 문제제기할 의지도 힘도 없어 보인다. 
 
노동 문제도 이미 임금피크제도는 공기업에는 완전히 폭력으로 관철시킨 가운데, 더 쉬운 해고와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일괄처리를 위해 수순을 밟고 있다. 농민 문제도 쌀값 인상은 메아리조차 없는데, 농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한중 FTA도 소리 없이 국회를 통과하고 있다.
 
오히려 수도 없이 많은 언론 매체에서 떠드는 건, 시위의 폭력성뿐이다. 차벽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엄연한 위법임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 세워지고, 그 차벽을 치우기 위해 밧줄을 걸고 끌어내려 했다고, 시위자들은 폭도로 몰리고 있다. 규정 위반의 살인적 물대포에 의해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데도, 사과는커녕 복면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며 ,복면방지법을 만들겠다고 으르대고 있다.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쳐놓은 폭력의 그물에, 국민이 걸려 버둥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의 목적은 정의를 세워나가기며 질서와 안전을 확립하는 것인데, 박근혜 정권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정권이 공권력(국가권력)의 우월적 지위와 물리력을 동원하여, 오히려 질서와 안전을 무너뜨리고 있다. 미개한 국가의 초라한 모습이다.
 
사실 권력이란 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힘으로, 어느 주체가 상대방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강제하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권력이란 말 자체가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 말을 쓰려면 공인된 힘 즉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란 우리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서처럼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권력은 권력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국민을 등에 업은 국가권력이, 권위와 통제를 잃어버리고 제 멋대로 날뛴다면, 그 모양이 어떻겠는가? 요즘 검찰과 경찰이 보여주는 태도가 바로 그러하다.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모든 권력은, 결국 폭력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폭력은 제거나 기피의 대상이지 수용이나 용인의 대상이 아니기에, 결국 갈등과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의 폭력사태는, 결국 국가권력의 남용에서 비롯된 거대한 폭력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현장이었다. 부도덕한 정권이 국민의 질서나 안전을 외면한 채, 국민의 뜻에 반한 정책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국민을 겁박하기 위해 저질러진 위법행위였다. 민주의식이 낮은 정권이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권력을 빙자해 저지르는 악행이다. 이러한 국가수준의 폭력행위는 정부 권력기구인 검찰을 통해 나타나는데, 그 하부 기구인 경찰에 의해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 참사와, 그해 여름 저질러진 쌍룡자동차 파업 폭력진압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다. 용산 참사는 그 전해 5월부터 타올랐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잦아들기 시작하며, 강제철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철거민들의 생존권투쟁으로 옮겨 붙으려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 국민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경찰에 의해 저질러진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태였다.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옥쇄 저항에 나선 철거민들에게, 살을 에는 영하의 추위임에도 물대포를 쏘아댄다든지, 여러 가지 위험물이 있는 걸 알면서도 야간에 무리하게 경찰을 진입시켜 검거작전을 편 것은, 분명한 미필적 고의의 살인행위였다. 재판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현장 지휘경찰의 판단이 무시된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경찰이라는 이름의 공권력(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었다. 
 
그러나 경찰을 지휘했던 검찰에 의해 조사되어 법원에 기소된 이 사건은, 우습게도 불타 죽거나 겨우 살아남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실제 당시 중상을 입고 겨우 살아남은 철거대책위 위원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하였고, 법원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법부도 이 학살의 방조자나 미필적 공동정범이 된 것이다. 청와대가 지휘부가 된 거대한 국가폭력이었다.
 
그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공장 내부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되었고, 헬기에서 유해한 화학물질을 무차별 살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장 지붕으로 침투한 특공 경찰들에 의해 자행된 폭력은, 전투행위를 방불케 하는 참혹한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사고는 없었으나, 그 트라우마 등으로 그 뒤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고 해고상태가 길어지면서, 26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비슷한 상황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건이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폭력을 가한 국가폭력의 대표적 사례인데, 특징적인 것은 두 사건 모두 신문 방송에 의해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공공연히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그것을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시위함으로, 국민들에게 겁을 줘서 꼼작 못하게 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국민을 대상으로 펼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의 경찰의 물대포 정면발사도, 위의 사례와 유사한 점이 많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더 악의적이고 뻔뻔스럽다. 실험에서도 드러났던 것처럼 경찰이 동원한 물대포는,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발사할 경우, 거의 살인무기의 위력을 갖는다. 그것을 알면서도 경찰은 사용 규칙마저 무시하고,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허약한 노인에게 조준발사를 한 것이다. 첫 직격탄을 맞고 뒤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조준 사격은 계속됐고, 구출하기 위해 달려 나온 시민들을 향해서도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가 하면, 심지어 긴급후송 앰뷸런스에까지 집요하게 물을 퍼부었다니, 이것이야 말로 명백한 살인행위이다. 그런데 경찰 최고책임자는 사과조차 당당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산에서의 학살도 쌍용자동차에서의 난동도, 당시 경찰 최고책임자는 책임을 지기는커녕 퇴임 후 자리까지 보장받는 특혜를 누리고 있으니, 권력의 개 노릇을 자임하는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를 잠깐 돌아보자. 4.19혁명은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체가 기름을 부었고, 87년 6월 항쟁은 이한열이 피 흘리며 죽어간 거리에서 촉발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을 앞세운 국가폭력에 의존한 정권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그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
 

   
▲ 필자 이수호.

 

 

 

그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이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전 박원순 서울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 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로 활동 중에 있다.

이수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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