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에서 세 번을 이사하는 동안 

꽃장화는 언제나 들어오는 입구에 놓여 나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했다.

 

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꽃장화를 보고 반색하며 말했다.

“어머 한국에서 여기까지 장화를 들고 왔어요?”

 

인천 공항에서 짐 무게가 넘어 가방을 하나 줄여야 했을 때 배웅 나 온 사람들의 시선이 꽃장화에게 쏠렸을 때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 속 더 깊숙이 넣어 꽃장화를 들고 왔다.

 

내가 동티모르에 들어오던 그때는 우기가 막 끝나고 건기가 시작 되던 때라 지금까지 비다운 비가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언제나 햇볕은 쨍쨍이다.

 

그러나 12월부터는 우기가 시작 된다고 했다.

나는 꽃장화에 먼지를 닦으면서 비를 기다렸다.

이제 12월도 중순이 되었으니 곧 비가 오겠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우기엔 비가 많이 내리나요?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나요?“

 

학생들은 “정말 많이 내려요.” 

하면서 어린아이들처럼 팔을 활짝 들어 비 내리는 모습을 했다.

나는 꽃장화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꽃장화는 친구가 동티모르에 들어오기 전 날 거기는 우기에 비가 엄청 온다는 내 호들갑을 듣고 사준 분홍색 바탕에 하얀 꽃무늬가 있는 장화다.

 

우리는 장화를 사러 시내를 돌아 다녔지만, 생각처럼 장화를 파는 곳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골목길에서 발견한 신발가게에서 장화를 그것도 꽃장화를 본 것이다.

 

나에게 꽃장화를 사 준 그녀는 내 초등학교 1학년 6반 친구다.

그러니 우리의 우정은 반백년의 세월을 지켜온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숙제를 하고, 소공녀를 읽고, 공기놀이를 하면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남학생들이 타고 온 자전거를 몰래 타고 나가 논둑에 쑤셔 박아 놓기도 하였고, 머리를 잘라 준다며 몽실이 머리를 만들어 놓기도 하면서 사춘기를 함께 보냈다.

 

고등학교를 그녀는 머리를 땋아 내리는 여고를 다녔고, 나는 단발머리를 해야 하는 여고를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학교가 달랐기에 주일에 교회에서 만났다.

교회에서 우리는 집사님들의 수없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목사님의 설교 시간을 이용하여 일주일 동안의 학교생활을 쉴 새 없이 이야기 하였다.

 

그녀는 지금 중고등부 학생회 교사를 하고 있다는데 설교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로 권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목사님 설교 시간에 그렇게 내내 떠들었던 그 교회에서, 그때 그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결혼 선물로 무엇을 해줄까?

나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거침없는 주문에 그때까지 자신을 위하여 그만한 돈을 써 본 일이 없는 그녀는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교사 월급으로 내 웨딩드레스 비용을 충당하느라 한동안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웨딩드레스를 특별한 날에 입다가 딸아이에게 물려주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나는 웨딩드레스를 살살 입고 다닐 만 한 집에서 살지도 않았을 뿐더러 결혼하고 엄청나게 늘어 난 체중 때문에 웨딩드레스는 한 번도 다시 입어도 못보고 수없이 다니 던 이사 짐 속에서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웨딩드레스는 사라졌지만 나만의 독특한 드레스를 입고 내 평생에 누릴 수 없는 호사로움을 기꺼이 안겨준 그녀에 대한 마음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의 보따리 속에 곱게 들어있다. 더 세월이 흘러 염색도 지친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내 꽃장화에 대한 추억도 이렇게 끄집어 내 보겠지.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본다.

오늘도 딜리에 하늘은 여전히 맑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