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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 승인 2015.12.18 11:28

함석헌과 윤형중의 대논쟁

윤형중 신부로부터 대반격을 받은 함석헌은 그 분을 삭일수가 없었다. 논쟁이 논리의 대결이 아닌 비난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더욱 그랬다.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쓸 때도, 그 이후의 “할 말이 있다”를 쓸 때도 함석헌은 윤형중을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그 만큼 함석헌의 글은 공정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헌데, 윤형중의 사상계 기고는 전혀 그 방향이 달라있었다. 윤형중은 그야말로 가톨릭을 변호하는 변리사로 자임하고 있다. 가톨릭을 (거의) 절대의 종교로 확신하고 있는 윤형중에게 함석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반동이었다. “상스러운 자”요, 반동이었다. ‘불신자는 지옥으로 간다’고 확신하고 있는 그에게 함석헌은 ‘지옥 가야할 자’여야 했다.

더군다나 그는 이상스럽게 ‘천국, 지옥’을 말하면서도 철저하다하리 만큼 현실수호론자(現實守護論者)로 나타나고 있다. 함석헌의 윤형중에 대한 반론이 파격일 수밖에는 없었다. 함석헌은 현실부정의철학(現實否定哲學)을 살고 있는 자였으니...!

그랬다. 함석한은 ‘현실은 전적인 부정에 의해서만 구원된다’라고 흔들림 없이 믿는 자였다. 그 ‘현실’에는 예외가 없었다. 어떤 ‘유일신 종교’라는 것도 함석헌에게는 ‘만’(only)일 수 없었다. 함석헌의 반론이 제기된다. 그 반론은 누가 봐도 ‘파격’이었다.

필자가 윤형중에 대한 함석헌의 반론을 ‘파격’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함석헌의 반론이 분명히 옳았다거나 윤형중의 논리보다는 월등 우월했다는 의미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떤 조직의 신성(神性)을 주장하려 했다는 사실만을 제외 한다면 함·윤 두 사람의 어투는 상당부분 쌈질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윤형중이 아닌 함석헌의 편에 서서 함석헌을 힘주어 변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함·윤 양인의 현실구원의 역사관의 상이(相異)함을 주목하고서이다. 함석헌의 그 파격의 언동은 여기에 기인한다.

   
 
함석헌은 여기서 윤형중과의 분기점을 이룬다. 윤형중은 앞의 글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에서 함석헌을 향해 “지독한 불평과 불만을 품고 있는 함 선생”이라 하면서, “종교가이면, 복음서를 손에 들었으면 공산주의는 아니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말았다. … 함 선생이 복음서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런데 (1) 천당, 지옥은 믿지 않는다. (2) 지금 공산주의와 가장 맹렬히 싸우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는 물론하고, 건설적 의견은 그림자도 없이 파괴적 태도로 종시일관 한다. (3) 영혼 건져주마 하는 대신 이 세상에선 개, 돼지 같은 살림에도 만족하고, 정신적으로 거세를 하여 이리 같은 압박자들이 맘 놓고 해먹도록 해주는 대신…” 이런 것은 공산당이 종교를 공격하는 말이 조금도 변색되지 않은 그대로이다.

(4) “‘노동자의 피를 빨고’ 이것도 공산당이 쓰는 말 그대로이다”라며 공산당 운운하면서까지 함석헌을 공격하고 있고, 함석헌 글 역시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는 글 제목은 그렇다 해도 사실은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는 윤형중 신부에 대한 공격으로 쓴 것이었다는 것은 읽어본 사람이면 훤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함석헌은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면서 엉뚱하게도 <민중>을 자신의 글의 수신인으로 불러낸다. 민중아, 민중이여!

“나는 할 말이 있다면 민중에게 있다. 나는 돈도, 감투도, 이름도 없는 무식한 민초의 하나다. 무연한 들의 풀들이 바람이 불면 춤을 추어도 같이 추고, 비가 오면 울어도 같이 울듯이 나는 씨ᄋᆞᆯ(民衆)의 하나로 울고, 웃고 하고 싶은 사람이지, 말할 것이 있다면 그 하느님의 씨ᄋᆞᆯ, 역사의 씨ᄋᆞᆯ에 대해서이지, 어느 개인과 무슨 문제 있는 것 아니다. 나, 내 맘이 가을하늘 반 공중에 솟은 달 같이 밝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분한 일이요. 망망 바다의, 억만 파도의 가슴, 가슴을 뚫어 비치고 거기 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슬프고 속 타는 일이지 더러운 골목에 썩어진 찌꺼기를 다투어 먹는 청삽사리, 홍삽사리가 짖거나 말거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달 보고 짖는 개라고, 온 세상의 강아지도 나와서라도 밝도록 이라도 짖으라 하라. 짖는 개를 미워하는 마음이 털끝 만큼도 있는 달이 아니요. 그렇다고 그것으로 제 빛에 한때나마 흐림이 올까 두려워하는 달도 아니다.”

함석헌의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면서, 민중을 향해하는 말은 계속된다. 역시 함석헌의 말은 윤형중이 지적한대로 ‘험구’요, ‘독설이었다. 가톨릭의 교황을 “하느님의 벌을 받아 그렇게 된 존재”라고 후려 버렸으니, 가톨릭의 신분인 윤형중이 더구나, 가톨릭의 대변인격인 서울교구 문화부장인 그가 좌시할 수 없었던 건 당연지사였다.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 천하의 신부가 다 떠들어도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들은 다 교회라는 제도 밑에, 교황이라는 낮도깨비 앞에 제 인격의 자존성을 내놓고, 의지의 자유를 빼앗기고 판단의 자유를 팔아버린 사람들이니 <제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제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무슨 종교, 진리가 무슨 진리일까? 그들과 썩둑 깍둑할 필요가 없고, 말을 한다면 그 꼭지 되는 교황과 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로마교황더러 와서 말하라 하라. 그러면 답하리라. 아니, 그가 와도 말하지 않는다. ‘천형지(天刑之)이니 안가해(安可解)리오’(莊子德充符). 하늘의 벌을 받아 그렇게 된 존재인데….”

   
 
윤형중으로서는 실로 열불 날 일이었다. 세계의 가톨릭 수장이요, 무흠·무죄의 신장(神長)을, 그 교황좌를 하늘의 형벌을 받아 된 것이라니...! 함석헌이 그 글로 사회가 들썩대자 함석헌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특히 건실하다고 소문난 무교회의 지도급 인사들까지도 그 ‘교황 비난’은 지나친 것 아니냐며 논란이 있었지만 함석헌에겐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았다.

그처럼 지독한 불평과 불만을 품고 있는 함 선생이라면 “현행질서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공산당에 본격적으로 입당함이 여하 … 만약 함 선생이 그 괴상한 처지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나아간다면 아무리 복음서를 들고 있을지라도 경찰당국으로부터 공산당의 5열(五列)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게 되리니…”한 윤형중을 향해 함석헌은 “… 그가 나를 마지막에 공산당의 5열이라고까지 몰 때는 신부로써의 자기의 명예를 걸고 하는 행위다. 그런 일은 내가 사실 공산당이고, 아니고를 물을 것 없이, 즉 다시 말하면 거짓고발이 아니고 사실을 말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사도로서 그의 인격에는 치명적인 자상(自傷)으로 … 불신자의 도덕으로도 그것은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는 일>이었다.”면서, 그것은 곧 “정신적 자살”이라 퍼부었다.

그러면서 함석헌은 크게 주목할 만한 그의 <사회구원론>을 역설한다. 윤형중 신부가 그렇듯 함석헌을 제거해야할 공산오열로 보는 것은 윤형중 신부의 잘못된 사회제도관(社會制度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를 그렇게 부득이 ‘정신적 자살’을 하게한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ㄱ 같은 정신적인 자살을 하게 햇을까? 그것은 이 사회를 죄악적인 것으로 보느냐, 긍정적인 것으로 보느냐에 있다. 이것은 결국 그와 나의 인생관의 차이다. 나는 인생(현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자리에 서는데, 그는 어느 부분은 부정하며, 어느 부분은 긍정하자는 자리에 선다.”

함석헌의 윤형중의 현상긍정 태도의 분석은 계속된다. 윤형중의 현상긍정 태도는 성서의 몰이해 내지는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에 대한 해석이 다른데서 나온다. 이 싸움은 벌써 옛날부터 되풀이 해오는 것이다. 창세기 처음부터 모든 예언자들을 통하여 신약에까지 뻗쳐있는 순 히브리적인 인생관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절대로 설 수 없는 것. 구원은 인간이 자기를 완전히 죄악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전능자의 은총에 매달려서만 된다 주장하는 것이 그 골자다”(「사상계」 1957년 6월호)

이 사회제도(社會制度)의 전적인 부정

“나는 이 사회를 전적으로 죄악적인 제도로 본다.” 함석헌! 정말 그는 문제의 사람이었다. 제도권의 인물(?)들에겐 더욱 그랬다. 그 제도 때문에 존재하고, 그 제도가 있어 힘을 지닐 수 있고, 그 제도의 혜택을 온전히 입고 사는 사람들, 큰소리 치고, 으스대고 사는 사람들, 마땅히 공중의 것으로 공유해야 할 것을 천연한 자세로 갈취하며, 독점해도 아무 해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제도를 전적으로 부정한다”는, 끊임없이 이 제도는 혁(革, reform)해야 한다는 놈! 정말 그는 용서할 수 없는 자였다. 그러나 그렇거나 말거나 함석헌은 그의 말을 이어간다.

함석헌을 두고 ‘독설가’ 운운한 것은 결코 비난만은 아니었다. 종교학자, 심리학자들이 뭐라 하거나, 주변의 여론이 어떻거나 그는 그의 속에 있는 말, 하고 싶은 말,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말은 한마디 가감 없이 퍼대는 사람이었으니, ‘험구가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 해야할 말의 값은 함석헌에겐 분명히 말한다면 <생명> 같은 것이었다. ‘할 말’, ‘해야 하는 말’이 상처를 입게 될 때의 함석헌의 저항은 필자가 이미 표현한대로 죽기 살기로였다.

장준하에게 보내진 함석헌의 절필선언(絶筆宣言)

함석헌은 이 할 말이 있다·없다의 논쟁 중에 윤형중의 비난보다도 정말 섭섭함을 피치 못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함석헌으로서는 윤형중 신부야 제도의 사람인 터에 그럴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동지로 여겼던 장준하에게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도록 섭섭하고 서럽기까지 했다.

바로 전의 글 ‘할 말이 있다’의 원고에서 상당한 분량의 글이 잘려버린 것이었다. 함석헌은 장준하에게 이후 사상계에의 절필을 선언한다. 함석헌은 당시의 과정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 <할 말이 있다>라는 제목 하에 내 속에 있는 소리를 써보았다. 될수록은 민중이 하고 싶은 소리를 해보려 했다. 그러나 글은 원고대로 발표되지 못하고, 중요한 부분이 잡지사의 부분으로 깎음을 당하였다. 그대로 내면 혹시라도 당국의 비위에 거슬려 사(社)로서 손해를 보지 않겠나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리 의논도 없이 그 일을 당한 나는 분하고, 그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다 나와 친분이 있으니 어디까지나 나를 믿어서 한 일 인줄 알지만 일은 사사(私事)가 아니고 공적인 문제다. 나는 내 사상, 내 인격을 상품화하여 맘대로 처분하려는 자본주의, 배금주의에 대한 프로테스트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 앞으로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을 사(社)에 통고했다. 모가지를 짤리면 짤리었지, 말을 짤리우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남의 돼지 같은 살점을 아끼기 위하여 차마 참의 살점, 민중의 말의 살점을 깎고 싶지는 않았다. 민중이 내게 명하는 것은 <있는대로 바로 말해라> 하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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