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가도 혼자 있어 슬플 때가 있다. 혼자 있어 슬픈 건 다른 게 아니다. 온 하늘을 곱게 물든 노을을 볼 때나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고 있을 때 그럴 때 혼자 있음이 슬프다. 또한 이렇게 몇 날을 시름시름 앓아누워 있을 때도 혼자 있음이 슬프다.

 

동티모르에 들어와서 평소에 약했던 부분들의 중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집에서 할 수 있는 물리치료를 하던지 스트레칭을 하면서 약한 부분을 다스렸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열이 나며 온몸이 아팠다.

 

더운 나라에 살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돌림병처럼 배앓이를 앓거나 열병을 앓기도 했다. 배앓이는 그렇다 해도 열병을 앓을 때는 뎅기열이나 말라리아가 먼저 의심되는 것은 당연하다.

 

방학을 했으니 그동안 긴장이 풀려서 오는 감기 몸살이지 뎅기열은 아닐 거라고, 말라리아는 더구나 아닐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기운을 쉽게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에서 “카톡”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것은 한국에서 며느리가 보내 준 동영상이었다.

 

인터넷 요금이 비싼 나라에서 살다 보니 동영상은 언제나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호텔 뒷마당에서 열어 본다. 몸이 이러니 호텔까지 가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동영상을 보았다.

 

화면 속에서 세 살 된 손녀가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하면서 작은 팔을 들어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나는 누운 그대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수도 없이 동영상을 열었다. 동영상이 열릴 때 마다 손녀는 나에게 “사랑해요, 사랑해요”를 지치지 않고 말해 주었다.

 

“사랑해요”라는 손녀의 말에 힘을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나가 쌀을 씻었다.

 

중국에 있을 때 내가 할머니가 될 거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며느리가 출산을 하러 병원에 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강의를 하려고 막 집을 나서려던 참에 그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하며 학생들이 물었다.

 

 

나는 할머니가 된단다.

 

손녀가 태어나고 한국에서 몇 개의 이름을 보내왔다.

 

JEAN : 하나님의 선물

載仁 : 사랑을 나르는 사람

 

우리 가족은 재인이라는 이름으로 생각을 모았다.

 

나는 그렇게 재인이 할머니가 되었다.

 

노동절 연휴를 맞아 한국에 들어와서 비로소 재인이를 품에 안아 볼 수 있었다. 태어난 지 백일이 된 재인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너의 할머니란다.'

 

재인이 첫 번째 생일에도 재인이 와 함께 하지 못했다. 다음 달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가서 양가가족이 모여 그때야 재인이의 첫돌을 축하하며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중국에서 이글을 쓰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재인이를 축복했다.

 

재인이는 태어난 지 4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여 이제 어린이집 3년 차인 고참 원생이다.^^ 지난 학기부터는 집 앞으로 다니던 어린이 집을 옮겨 엄마가 다니는 학교 안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그래서 모녀는 손을 잡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가양동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을 오간다. 이 씩씩하고 부지런하고 대견스러운 모녀에게 나는 이곳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구할 뿐이다.

 

할머니가 되고 나니 세상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에 관한 기사 한 줄이라도 관심 있게 읽게 되었다.

세상 속에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주여 

바라옵나니

어린 아이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