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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강학지 주어사 터, 가톨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이병두 칼럼>
이병두 | 승인 2015.12.29 11:48

- 가톨릭이 갈등을 주도하는 상황 만들지 말아야

   
▲ 천진암 강학회 (사진출처=천주교 천진암성지 홈페이지)

몇 년 전부터 한국 가톨릭 최초의 강학(講學) 장소인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소재 주어사(走魚寺) 터를 둘러싸고 이곳에 성지(聖地)를 건립하겠다는 가톨릭 측과 불교계 사이의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가톨릭 측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어사 주변 땅을 매입하거나 소유주인 산림청에서 장기 임차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업 추진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불교계(대한불교조계종 전체 입장이 아니라 주어사 소재지 관할 교구인 용주사 신도회와 청년회 등)가 “본래 절이 있었던 자리가 확실하고, 이곳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천주교도들을 숨겨주었다가 폐사(廢寺)까지 당한 곳이므로 당연히 주어사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정상적인 불교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이곳에 설치한 연등 철거를 요구하는 가톨릭과 불교계 사이에 긴장이 흐르기도 하였다.

주어사 강학터 성지 조성에 본격 나서고 있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이하 ‘수도회’)는 지난 12월 4일 산북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주어사강학과 그 의미>(강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요셉 신부)라는 제목으로 ‘여주시 산북면 역사 알리기 강연회’를 열어 지역 주민들의 개발 욕구를 부추겨 성지사업을 추진하려는 본심을 드러냈다. 이날 강연회가 형식상으로는 ‘산북성역화위원회’와 ‘주민자치위원회’ 및 ‘바르게살기운동산북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만 보아도 수도회의 속내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지난 2009년 7월 9일 《불교포커스》에 <종교 갈등과 한국 가톨릭의 역할-천진암 성지 사업과 관련하여->(기사보기)을 써서 주어사 터에 비석을 세워 어려운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선조 가톨릭 교도들에게 강학 장소를 제공해준 불교에 감사를 표현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그 중의 일부를 옮긴다.

“잘 알지만, 한국 가톨릭의 발상지는 경기도 광주 퇴촌면 천진암과 여주 산북면 주어사가 자리 잡고 있는 앵자봉이었다. 이 깊은 산중의 절에서 천주교를 공부하는 이른바 ‘강학회(講學會)’가 이루어지면서 이 땅에 가톨릭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가톨릭교도 - 서학(西學)쟁이’들을 바라보는 권력층과 일반인들의 시각은 마치 최근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를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냉혹했을 것이다.

그들을 숨겨 주고, 그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사람은 그들과 똑같이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였을 것이다. 당시 천진암과 주어사의 승려들은 그야말로 ‘죽음’을 무릅쓰고 이들을 받아들이고 학습 장소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시대 이른바 팔천민(八賤民)의 하나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서울 도성 출입까지 제한되며 국가와 양반 관료들에게 수탈을 당했던 승려들의 동병상련(同病相憐)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죽음’을 무릅쓴 천진암과 주어사 승려들의 행동은 용기라는 말로는 수식이 모자랄 정도의 일이었고, 종교 갈등이 심각한 오늘의 상황에서 이웃 종교에 대한 ‘관용’의 훌륭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역사가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가톨릭은 저들이 처음으로 서학(西學) - 가톨릭 서적 공부를 했던 천진암을 이 나라 최대의 성지로 바꾸는 거대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남아 있던 천진암은 가톨릭 측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본래의 자리를 떠나고, 폐허가 된 주어사에 있던 <해운당 대사비>는 서울 합정동의 가톨릭 ‘절두산 성지’로 옮겨져 있다.

한국 가톨릭에 당부한다.

한국 가톨릭은 천진암·주어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그야말로 ‘작은 비석’이라도 세워서 당시 한국 불교계와 승려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톨릭교도들을 숨겨주고 강학회를 열게 하였던 행위에 감사를 표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현재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종교 갈등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될 것이고, 극단적인 개신교를 포함한 다른 이웃종교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엄연한 역사 사실을 무시한 채, “천진암은 절이 아니라 천문 관측소였다”는 식으로 오도하며 “우리만 옳다”는 견해를 고집한다면, 가톨릭 또한 일부 극단적 개신교들이 받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작은 비석의 문안은 다음과 같다.

“한국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 선조 교도들을 숨겨주고
강학 장소를 제공해주었던
천진암과 주어사 스님들,
한국 불교계의 용기 있는 행위에 감사드립니다.”

한국 가톨릭에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절두산 순교성지로 옮겨간 해운당 대사비석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주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여기에 더하여 생명까지 위협받던 시절 자신들을 숨겨주고 교리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던 곳, 주어사 터에는 가톨릭이 앞장서서 기금을 마련해 절을 옛 모습대로 복원해서 불교계에 돌려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달라.

과거 ‘개신교와 불교 등 이웃종교 들과의 갈등’이 주된 흐름이었던 우리 사회에서 이제 그 갈등을 가톨릭이 주도하는 상황을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 필자 이병두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불교계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였으며, 최근 경력은 문화체육관광부 불교 담당 종무관으로 5년 근무하고 2015년 5월 말 퇴직한 뒤 현재는 자유롭게 글 쓰기와 번역으로 소일하고 있다.

역저서에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영어로 읽는 법구경』, 『북한산성과 팔도사찰』 및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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